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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경기장 밖 '10월 한일전' 언제 승전보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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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경기장 밖 '10월 한일전' 언제 승전보 울리나

노벨과학상 일본:한국=25:0...‘숙성의 학문’ 육성하는 사회 분위기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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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이 되면 전 세계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눈을 돌린다.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노벨상 시상식은 전 세계 학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축제다. 또한 과학 등 주요 학문의 발전 성과를 평가하는 준엄한 시험대다.

올해 노벨상도 여느 때처럼 ‘그들만의 파티’로 끝났다. 노벨상 수상자는 물론 후보 가운데 한국인 과학자나 학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또 있다. ‘25대 0’. 지금껏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일본과 한국의 성적표다. 과학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부해온 우리로서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노벨물리학상을 처음 받은 이래 지금까지 노벨상 자연과학 분야에서 25명 이르는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이 세계 최고의 과학 강국으로 우뚝 선 배경은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 일본은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5년에 한 번 정하는 과학기술기본법을 1995년 제정해 과학기술 예산을 늘리며 국가가 기초과학 육성에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일본 사회에 배어있는 ‘오타쿠’(オタク:특정 분야에 매우 밝은 인물)로 불리는 ‘장인(匠人)정신’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代)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고 혼을 실어 물건을 만드는 장인정신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노벨상 최강국 토양을 마련했다.

노벨상은 기초과학의 경연장이다. 기초과학은 하루아침에 큰돈을 벌지 못하지만 첨단제품을 만드는 응용기술의 터전이다. 메타버스,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산업혁명’의 총아는 기초과학 발전을 통해 얻은 결실이다.

또한 노벨상은 ‘숙성의 학문’이다. 고대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물이 넘치는 욕조에서 불규칙한 물체 부피를 알아내고 ‘유레카’(Eureka:알아냈어)를 외친 것처럼 노벨상은 뜻밖의 행운이나 천재성의 발현으로 얻을 수 없다. 답답하지만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연구가 쌓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을 홀대하고 장기 투자에 인색한 채 ‘빨리빨리’ 만을 외치는 게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책정되는 정부 연구비가 20조 원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기초과학 연구과제에 투입되는 돈은 고작 6%에 그친다.

이에 비해 첨단기술 세계 최강국 미국은 전체 정부 연구비의 47%를 기초과학에 투자해 부러움을 사고 있다.

때로는 정부가 국내 기초과학 연구 발전에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정부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그다음 해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로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한 ‘화학물질 등록·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내놨다.

정부가 화학물질을 엄격하게 관리하려는 취지는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화학·소재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 대못’을 박는 모습은 의아할 따름이다.

기초과학보다 응용기술에 주력하고 규제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기초과학에서 퀀텀점프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부와 재계, 학계가 기초과학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노벨상 잔치에서 조용히 박수만 치는 초라한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숙적 일본을 경기장 안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 분야에서도 극일(克日)의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한일전 경기 승리에 흠뻑 취해 한가롭게 축배의 잔을 높이 들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민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entlemin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