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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워치] ESG경제의 함정, 커지는 '그린플레이션'의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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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워치] ESG경제의 함정, 커지는 '그린플레이션'의 경고음

이혜주 국가ESG연구원 공동원장
이혜주 국가ESG연구원 공동원장
친환경적 ESG 산업 패러다임은 지구오염이 해결되어 장밋빛으로 물들여진 그린 지구촌을 꿈꾸게 한다. 최근 지구 곳곳에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재앙이 잇따르면서 유엔이 지구온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한국 ESG 분야에서 리스크 관리에는 비교적 관심이 적었다.

수출 중심 제조업이 기반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ESG를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당연하나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거대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대가가 요구된다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주요 투자자들은 큰 틀에서 그린플레이션이 감내해야 할 리스크라고 지적했고 독일 유니온 인베스트먼트는 탄소 가격이 에너지 전환을 이끌 수 있을 만큼 높은 수준으로 책정될 것이기 때문에 물가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으나 깊이 체감하기 어려웠다. 얼마 전 중국의 정전사태 발생으로 초래된 아비규한의 모습과 유럽·아시아를 동시에 덮친 전 세계적인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려는 세계경제에 그늘을 드리우자, 그 대가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글로벌 원자재·에너지 가격 급등의 원인에는 복합적 이유가 있겠지만 큰 줄기로 보면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그린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그린플레이션(green+inflation)이란 기존 석탄·석유 발전의 전통적 화력생산 체계로부터 태양광·풍력 등 불안정한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서 관련 원자재 수요는 늘지만, 생산은 줄어들면서 역설적으로 나타나는 자원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재생 에너지 시설의 구축이나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의 폭등을 뜻하지만 일반 생활용품으로 파급된다.

올해는 기후변화에 의해 이례적인 풍력 발전량 부족으로 유럽권 국가들의 화석연료 발전 가동률이 상승했다. 지난 9월 인베스팅 닷컴에 따르면,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알루미늄, 구리, 니켈 가격은 각각 47.8%, 20.7%,15.9% 상승했다고 보도했듯이 올해 영국은 바람이 약하게 불어 풍력 기능의 저하에 따른 천연가스와 석탄발전이 증가되어 전기료 폭등과 주유난 사태를 경험했다. 미국 LA항 해상에서는 수입품을 가득 실은 선박 수십 척이 연일 줄지어 장사진을 펼치는 등 물류대란의 실체를 보여줬다.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어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반도체에서 출발한 세계 산업계의 공급망 차질이 원자재와 해상운송, 전력, 식품 등 다방면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그린플레이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특히 중국의 정전 사태는 대표적인 악순환으로 발생하는 그린플레이션의 좋은 사례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래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상품생산과 조립을 담당해 온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적 영향이 지대하다. 2019년 수입통계를 보면 한국 시장에서 중국제품의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상품 수가 1985개로 나타나며 미국(31%)을 제외하고 주요국의 중국제품 의존도가 40% 이상이어서 중국의 재난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모건스탠리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민간소비는 2030년 우리나라 총 소비의 약 17배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에 해당하는 무려 1경4000조 원으로 예상할 정도로 거대 시장인 셈이다.

그동안 많은 언론은 중국의 정전 사태에 대해 단순히 호주와 극단의 대립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로 보도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복합적 요인이 존재한다. 먼저 중국의 정전은 전력 부족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송전의 제한 때문에 발생했다. 화력발전이 70%를 차지하는 중국의 화력발전용 석탄은 대부분 국내 생산으로 충당한다. 중국 석탄 소비 중 수입은 10~15%이고 그중에 호주산이 50%로 전체적으로는 7~8% 수준으로 매우 낮다. 호주와 마찰을 빚은 이후 중국은 석탄 수입선을 인도네시아(62%) 및 러시아 등으로 다변화했다. 2021년 8월 현재 호주산 수입은 0%로 자충수가 된 것은 맞지만 전체적으로는 10.9%밖에 줄지 않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단지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주요 화력·수력발전이 몰려있는 서부지역에 가뭄과 홍수로 인해 전력생산이 줄었을 뿐 아니라 바람조차 적게 불어 풍력의 역할 또한 미미했던 것이다.

그 다음 요인으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탄력적인 소통의 괴리로 인해 발생하는 일방적인 ‘계획경제’ 폐단의 문제이다. 중앙정부가 결정한 강력한 친환경정책에 따라 규정한 탄소저감 목표를 지방정부가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한편 단순 복종하는 지방정부와의 체제적 한계가 드러났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4차산업의 대표적 주자로서 전자화폐, 자율주행차, AI, 첨단테크 그리고 친환경 테크를 선도할 선진 중국으로의 인식전환을 위해 야심찬 친환경 정책을 발표했다.

2020년 9월 유엔에서 206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zero)’의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했다. 이 공약에 따라 매년 3%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기준에 맞추도록 30여 성(省)·시(市)·자치구 등 30개 지방정부에 에너지 및 탄소배출의 저감 목표를 하달하는 한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매해 분기마다 '에너지 소비 강도·총량 통제 방안' 등 행정평가 등급을 발표해 통제한다. 더욱이 지방정부의 지표 조작이 횡행한 가운데 세분화된 관료 평가(KPI)를 추가해 지방자치단체장을 압박했으며 지방정부 또한 이미 기준점을 맞추기 위해 전력 공급 배급제를 시행해 왔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9~12월 중국의 철강 생산량이 전년 동월 대비 9% 감소하는 동시에 알루미늄은 7%, 시멘트 공급량은 29%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올해는 19개 성이 강력한 경고를 받았기에 주로 탄소발생률이 높은 제조업 중심지인 장쑤성·저장성·광둥성 등이 기준점을 맞추기 위해 일방적으로 전력 송전을 중지시킨 것이다.

중국발 전력난이 발생하자 중국내 글로벌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중국 소재 애플·테슬라의 핵심 부품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했으며 부품을 공급하는 대만 업체들의 조업이 멈추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쳤다. 탄소배출이 많은 철강·시멘트·건자재·화학 생산을 제재하니 공급망이 원활하지 않았고 동시에 화석연료의 사용이 감소하니 대신 원유·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이로써 에너지 수입 비중이 큰 한국 경제를 흔들 만큼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자재 가격 정보를 보면 1일 현재 전력용 연료탄은 전년 대비 125.5%(1t당 206.3달러), 액화천연가스의 한국 수입가는 68.4%(1t당 534.6달러) 올라 고공행진하고 있다.

ESG 전략이 활발히 논의되는 과정에서 최초로 그린플레이션을 경험한 전 세계가 에너지 수급 불안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유럽에선 관련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럽의회는 교통수단과 난방에까지 탄소세를 부과하는 지난 7월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놨다. 한국의 전경련은 7일 '제3회 K-ESG 얼라이언스 회의'를 개최해 탄소중립 정책이 산업계에 미치는 부작용을 낮추기 위해 속도조절을 요청했다. 탄소중립 등 ESG경제가 나가야할 방향은 공감하나 시장에 지나친 충격을 주는 부작용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속도는 이대로 괜찮은지, 그리고 국가와 공기업의 역할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ESG 경제라는 새 패러다임은 기업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이자 '복잡계' 시대에 대응하는 리스크 관리 도구이다. ESG의 새로운 진화를 위해 단순히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다시 한번 지속가능한 발전(SDGs)의 가치를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이혜주 국가ESG연구원 공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