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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일 한글학회장 “쉬운 우리말쓰기는 가장 잘하고 있는 국어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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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일 한글학회장 “쉬운 우리말쓰기는 가장 잘하고 있는 국어정책”

황인석 경기대 교수와 한글학회 113돌 맞아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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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일 한글학회장
우리나라 대표적 한글학자이자 언어학자인 권재일 한글학회장을 황인석 경기대 산학협력교수가 한글학회 113돌을 맞아 한글학회 회장실에서 만났다. 권재일 회장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 국립국어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 임기 3년의 제60대 한글학회장으로 선임돼 현재 연임 중이다. 황인석 교수는 언론인 출신으로 외래어표기심의위원을 역임하고 한글운동 공로표창, 한국어문상 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본지 ‘고운 우리말, 쉬운 경제’ 진행을 자문하고 있다.

황인석 경기대 교수; 우리나라 최초의 학회인 한글학회 회장으로서 연임에 성공해 5년째이시죠.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권재일 한글학회장: 네. 그렇습니다. 1908년 8월 31일 주시경 선생이 제자들과 국어연구학회로 출발해 올해 113돌입니다. 학술단체로서 그 정도 긴 역사를 가진 곳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별로 없습니다.

황 교수: 한글학회가 국어 발전에 많은 훌륭한 업적을 낸 것으로 압니다.

권 회장: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가 1933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하는데 지금 우리가 쓰는 맞춤법의 근간이 됩니다. 1936년에는 표준말사전을 발간합니다. 한글 표기법을 통일하고 지역별 사투리를 넘어 표준말을 정립했다는 것은 현재의 언어생활의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표준말이나 표기법도 정립하지 않은 상태로 분단되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완전히 서로 다른 말을 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황 교수: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분단 70년이 지났지만 남북이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군요. 자칫 간과하기 쉬운 점이군요. 재미있는 사실은 조선시대 일부 사대부들이 비밀 편지로 한글을 이용했다고 하던데요.

권 회장: 예. 그뿐 아닙니다. 암호문으로도 쓰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알지 못하도록 한글로 된 문서를 돌렸다고 합니다. 특히 선조는 두 왕자와 교신을 위해 한글 서신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황 교수: 한글이 공문서에 쓴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권 회장: 1894년 고종이 공문서는 국문, 즉 한글을 쓴다고 발표합니다. 이때 국문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됩니다. 그전에는 주로 언문이라고 했는데 국문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황 교수: 드디어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글자로 인정이 된 거군요.

권 회장: 공문서는 국문으로 쓰는데 단, 어려움이 있으면 한문으로 번역하거나 한자를 섞어서 쓴다고 했습니다. 국한문 혼용이 시작됐습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국문 대신 조선글을 쓰라고 하지만 한글이라는 말을 씁니다. 1926년 한글이라는 잡지가 나오고 1926년 제정된 가갸날을 1928년 한글날로 개칭해 기념을 하게 됩니다.

◇ 공공기관·언론 외국어 오남용 심각한 수준


황 교수: 화제를 좀 돌려서 문화체육관광부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권 회장: 지난해 국어심의회에 가서 가장 잘 한 일이 언론과 함께 이런 사업을 펼치는 일, 정말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우리말이 외국어, 외래어로 인해 많이 오남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공공기관과 언론입니다. 이렇게 비판받던 언론사들이 쉬운 우리말 쓰기에 동참을 하는 것은 훨씬 가치 있고 국민들에게 전파하는 효과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황 교수: 쉬운 우리말 쓰기는 언어적 의미 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 회장: 그렇습니다. 쉬운 우리말 쓰기는 사실 온 국민이 평등하게 언어생활을 하는 근거입니다. 현대사회가 정보사회라고 하는데 정보를 아는 계층과 모르는 계층이 나누어져 있다면 제대로 된 민주 사회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쉬운 말, 쉽지만 정확한 개념을 담은 말을 써야 국민 모두가 똑같은 정보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시대에 방역, 건강 정책이야말로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데 국민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쓰게 되면 자칫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부스터샷만 해도 처음부터 알아듣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권재일 한글학회장(왼쪽)과 황인석 경기대 산학협력교수.이미지 확대보기
권재일 한글학회장(왼쪽)과 황인석 경기대 산학협력교수.


황 교수: 추가접종이라고 하면 바로 알아듣는데 너무 새롭고 어려운 말들이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정보의 격차가 커지는 상황이죠.

권 회장: 기본적으로 이는 행정부처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행정부처에서 새로운 정책 이름을 만들거나 보도자료를 낼 때 그런 의식 없이 그냥 자신들이 아는 용어를 쓰고 모르면 국민들이 알아내라는 자세가 가장 큰 문제죠. 게다가 언론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고민 없이 쓰죠. 우리말 쓰기만 잘 되어도 모든 국민들이 쉽게 정보 접근이 가능할 것입니다. 보건 의료 용어, 산업 관련 용어들은 요즘 참 문제가 많습니다. 처음에 발표할 때 제대로 해야 합니다. 위드 코로나도 처음부터 코로나 일상 등 쉬운 우리말로 썼다면 될 텐데 말입니다. 조그마한 정책 용어라도 우리말로 쓰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황 교수: 말이란 한번 굳어지면 바꾸는 게 쉽지 않죠. 우리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외국어를 쓰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권 회장: 사실 그게 멋있어 보일 수도 있고 좀 더 자극적인 것일 수 있어서 언어적 필요성 때문에 쓴다고 하지만 우리말 용어가 있는 것은 우리말로 쓰야 합니다. 쉽고 정확한 우리말 쓰기에 정부부처, 언론, 일반 시민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글학회만 해서도 안되고 국립국어원만 해서도 안됩니다.

◇ 중국 공자학당에 비해 세종학당 현실 척박


황 교수: 국어정책과 관련이 있는 문제죠. 그 외에 역점을 두어야 할 국어정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권 회장: 현실에 맞는 우리말 규범 관리가 중요합니다. 국립국어원장 시절인 2011년 짜장면, 손주, 내음, 나래, 먹거리, 손주 등 39개 단어를 표준어로 인정을 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짜장면이라고 하는데 자장면만 표준어로 고집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현실과 규범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하는 열린 언어정책이 필요합니다.

황 교수: K팝 등 한류의 인기로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대단합니다.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대회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경쟁률이 100 대 1이 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어 확산 보급 정책은 어떤 방향이 돼야 할까요?

권 회장: 어떤 나라의 문화에 대한 수요도 경제력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 경제와 문화가 우뚝 솟아 있어야 제대로 된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어 교육은 정부 차원에서 국가 차원에서 지원이 절실합니다.

황 교수: 중국의 공자학당에 비하면 세종학당의 현실은 척박합니다.

권 회장: 공자학당 예산이 지역에 따라 세종학당에 비해 5~10배 정도 많습니다. 예산이 제대로 투입이 돼야 교육의 질도 높아집니다. 파견 한국어 교원들에게 보수를 충분히 줘야 우수한 인력이 한국어 교원으로 갈 것입니다. 사명감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교재입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서 보급하는 것도 좋지만 표준 교육과정을 만들어서 현지에 보내 현지 실정에 맞게 교재를 제작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표준교육과정과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자체 제작을 하지 못하는 곳은 특화된 교재를 만들어서 지원하는 등 유연성 있게 양질의 교재를 보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시설, 조직 문제입니다. 세종학당 숫자도 당연히 늘려야겠지만 공자학당만큼은 안되더라도 예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됐을 때 한국어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 교수: 외국의 세종학당 학당장이나 교원의 경우 자격조건이 정해져 있는데 학당장 같은 경우 전공을 제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생을 국어를 전문적인 업으로 일하는 어문기자들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권 회장: 세종학당장과 교원, 사전편찬, 어문생활에 대한 감수와 같은 분야는 언어 문자를 실제적으로 오랫동안 다뤄온 사람들을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자리 확대라는 측면과 그분들이 고도의 지식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주노동자·외국인 한국어 교육, 표준화 필요


황 교수: 이주노동자나 외국인 등에 대한 한국어 교육도 문제입니다.

권 회장: 외국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외교부, 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각 부서에 흩어져 있어서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황 교수: 한국어 교육은 세종학당 중심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뭉치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권 회장: 국어정책에서 예산을 가장 많이 들여야 할 것은 말뭉치인데요. 일반 대화, 방송, 소설. 신문, 학술 서적 등 모든 자료를 모아 큰 뭉치를 만들어 놓아야 정보산업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자동번역은 물론 요즘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는 음성인식도 성공 여부가 말뭉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 국외 보급 활성화, 규범의 현실화 등 국어정책 측면에서 정부가 잘하고 있지만 결국 예산과 인력에서는 항상 문화가 순위가 밀리고 그중에서도 국어가 더 밀립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황 교수: 한글학회장으로서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권 회장: 방송을 통해 한글문화 실천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평소 방송이 우리말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을 하니까 연결이 잘 안됐습니다. 특히 오락 프로그램이 언어를 어지럽게 하는 바탕이 되는데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고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요란스럽게 행사를 벌이지는 않았지만 국어실천운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말이 파괴 내지는 더 어지러워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 : 황인석 경기대 산학협력교수


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