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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현의 교육단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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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현의 교육단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

엄상현 전 중부대 총장
엄상현 전 중부대 총장
정치의 계절이 왔다. 내년 2022년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온통 정치에 쏠려있다. 당연히 대선 후보들에게 시선이 모인다. 대부분의 논란들이 부정적이다. 합리적인 정책 토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반면 상대방 후보에 대한 비방, 진실 여부 공방 등으로 치열하다. 한 국가의 대통령을 뽑는 과정으로는 품위가 너무 부족해 보이고 자랑스럽지 않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두렵다. 내년 지방선거에는 광역자치단체별 교육감 선거도 포함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과 더불어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원칙들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하라고 한다. 이에 따라 법률은 몇 가지 제도를 설정하고 있다. 대학교수의 정당 가입을 허용함으로써 교육의 정치적 중립에서 대학은 제외되고 초중등 교육만 대상이 된다. 교육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후보 등록 1년 전부터는 정당에 소속되면 안 된다. 과거에 특정한 정당에서 정치 활동을 했다는 것도 선거 홍보에서 알리면 안 된다. 교사들의 정당 가입과 정치 활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사들이 정치적 선거에 후보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교직을 사퇴해야 한다. 교육감이나 교사들은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학생들에게 전파해서는 안 된다. 특히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해서는 안 된다. 이 내용들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우리 법률이 정하고 있는 제도의 전부이다.
한편 우리 교육계의 현실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교육감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특정 유권자들의 지지를 보다 분명하게 확보하기 위해 자신은 진보 후보임을 또는 보수 후보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정치적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고, 자신이 특정 정치 진영의 단일 후보임을 내세운다. 정치적 신념이 강한 교사들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학생들에게 은근히 또는 공공연히 주입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상황들이 현실적으로 고발되고 법적 다툼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정치적 신념은 물론 교육적 신념 또한 강한 교사들은 아예 집권 정치권력과 일체가 되어 제도권 내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교육정책에 직접 반영하고 있다.

학교 밖에서는 대통령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정치적 신념에 기초한 교육정책을 선거 과정에서 공약하고 자신과 정치적 신념이 일치하는 정치인 출신 교육부 장관을 임명해서 그 공약을 실행하게 하고 있다. 집권한 정치 세력들은 특정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고 저자의 동의 없이 특정 교과서 내용의 수정을 도모한다. 대통령이나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의 정치적 신념에 기초한 교육정책 실행을 교육행정 공무원들이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회에서는 다수당이 정부와 함께 파당적 교육 입법을 추진한다. 재판에서 판사들은 교육과 관련한 사건들을 자신의 정치적 양심에 따라 판결하고 유사한 사건들에 대하여 판사들의 서로 다른 정치적 양심은 서로 상충되는 판결을 만들어 낸다.

제도와 현실을 비교해보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다는 법률상의 제도들은 현실 상황에 비하여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설상가상 갈등과 혼돈에 휩싸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일반 교사들은 정작 정규적인 교육과정에 따라 가르쳐야 할 정치에 대한 교육도 회피하여 학생들의 건전한 정치관 형성에 지장을 초래한다. 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 형성이 학년별 교육과정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얼마나 도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공직 선거권 부여를 만 18세로 낮추었다. 만 18세의 약 20% 정도가 고3 학생들이다. 이미 정치 주체가 된 학생들이 자신들의 투표권을 얼마나 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지, 학교 내외에서 이들을 상대로 하는 편향된 선거 홍보 활동은 없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도 동시에 무너진다. 정치적 중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본질을 지키자는 자주성과 전문성 원칙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교육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재와 같은 소극적 방어 체제가 아니라 학교에서 정치에 대한 교육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하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정치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대안이 시급하다.


엄상현 전 중부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