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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남용’, 문체부의 ‘모범’...공공기관 외국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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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남용’, 문체부의 ‘모범’...공공기관 외국어 사용

[고운 우리말, 쉬운 경제 38] 공공기관, 우리말 해치는 ‘헤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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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지난 3일 서울 국방컨벤션에서 ‘2021 화이트햇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시상식과 컨퍼런스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 행사의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외국어 남용은 아쉬웠다.
제목에서 보이는 화이트햇(white hat)은 화이트햇 해커(white-hat hacker)로도 불리는데 모의 해킹이나 취약점 점검 등을 하는 보안 전문가인 ‘착한 해커’다. ‘나쁜 해커’인 블랙햇(black-hat hacker) 또는 크래커(craker)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화이트햇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착한 주인공이 흰색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나온 것에서 유래했다. ‘블랙햇’이란 말은 악당들이 쓰는 검은색 카우보이모자에서 나왔다.

국방부 ‘화이트햇 콘테스트’ 누리집에 들어가 봤다. 정보통신 분야답게 순화되지 않은 전문용어가 곳곳에 보인다.

접속 후 첫 화면에는 콘테스트, 컨퍼런스(콘퍼런스의 오기), 시그니처, 국방트랙 등이 보인다. 콘테스트는 경연 또는 경연 대회, 콘퍼런스는 학술대회 또는 학술회의로 쓰면 된다. 시그니처는 요즘 많이 쓰는 외국어다. 일반적으로 ‘서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그니처 제품’ 등으로 사용될 때는 대표성을 띤 제품 즉 ‘대표 제품’이란 의미가 된다. 국방트랙은 보기 드문 단어 조합이다. 현역 장병과 군무원 참가하는 경연 대회로 여기서 트랙은 ‘경기장’ 또는 ‘경기’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국방부의 외국어 남용과 반대로 우리말을 사용에 모범을 보여주는 부처도 있다. 바로 문화체육관광부다. 문체부는 3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부산콘텐츠마켓(BCM) 2021’ 보도자료에서 공공기관의 우리말 사용 정석을 보였다.

“참가자들이 비대면 상황에서도 더욱 생생하게 전시부스를 관람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확장 가상 세계(메타버스) 공간을 활용한다. 참가자들은 가상인물(아바타)로 대화를 나누고...”

“콘텐츠를 해외 구매자에게 소개하는 투자 설명회(피칭)... 최신 제작 경향 등을 알려주는 강연(아카데미)도 만나볼 수 있다.”
문체부 보도자료다. 메타버스를 ‘확장 가상 세계’로, 아바타를 ‘가상인물’로, 피칭을 ‘투자 설명회’로, 아카데미를 ‘강연’으로 표기했다.

문체부의 우리말 사랑은 사례 더 있다. 지난 2일 나온 ‘2021 한복상점’ 보도자료에서 에코백을 ‘친환경 가방’으로, 해시 태그를 ‘핵심어’로 순화된 우리말을 썼다.

지난달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단체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청와대를 우리말을 해치는 ‘으뜸 헤살꾼’으로 선정한 바 있다. 헤살꾼은 훼방을 놓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면서 “국어기본법을 지켜야 할 공공기관들과 공무원들이 국민에게 알리는 글에 외국어를 섞어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공기관의 우리말 남용과 파괴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이들이 내놓는 보도자료는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공기관부터 쉽고 고운 우리말 쓰기에 앞장 서자.

감수 : 황인석 경기대 교수


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