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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가상화폐, 美 소수 인종과 저소득층에 '득'인가, '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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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가상화폐, 美 소수 인종과 저소득층에 '득'인가, '독'인가

WP, 백인 젊은층의 전유물이었던 가상 화폐 시장에 소수 인종과 저소득층 쇄도

미국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 거래 시장에 소수 인종과 저소득층이 '대박' 꿈을 꾸며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 거래 시장에 소수 인종과 저소득층이 '대박' 꿈을 꾸며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에서 인종 차별은 건국 이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핵심 이슈이다. 흑인과 히스패닉을 비롯한 소수 인종은 인종 차별에 시달릴 뿐 아니라 여전히 빈곤층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 계층 사다리를 걷어찰 기회를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소수 인종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가물거리고 있다.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가 그것이다. 미국에서 첨단 기술에 정통한 백인 젊은 층의 전유물이었던 가상 화폐가 흑인과 히스패닉을 비롯한 소수 인종의 꿈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가상 화폐에 투자해 수천 달러를 번 한 히스패닉 자매의 ‘성공’ 스토리를 상세히 소개했다. 미국에서 2조 달러로 추산되는 글로벌 가상 화폐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려고 소수 인종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고 WP가 전했다.
미 시카고 대학이 지난 여름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인의 13%가 지난 12개월 사이에 가상 화폐를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 44%를 차지했다. 또 여성이 41%를 점했으며 가계 소득이 연간 6만 달러 (약 7,062만 원) 이하 계층이 35%에 달했다. 가상 화폐 거래자의 다수가 40대 이하 연령층에 속하고, 고졸 이하의 학력자라고 이 대학 측이 발표했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저소득, 저학력의 젊은 소수 인종 출신이 가상 화폐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 출신이 미국의 일반 은행에 계좌를 오픈하지 못하는 사례도 상당수에 이른다.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조사에 따르면 흑인의 13.8%, 히스패닉의 12%가 은행 계좌를 열지 못하고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계좌가 없는 백인은 2.5%에 그쳤다. 미국에서 백인과 소수 인종의 거주 지역이 다르기 마련이고, 은행은 거주지 주소만 확인한 뒤 소수 인종 밀집 지역 주민에게는 계좌 개설을 허용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고 WP가 지적했다. 은행 계좌가 없으면 신용 카드를 만들 수도 없고, 신용 점수를 올릴 수단도 없다. 이렇게 되면 은행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히게 된다.

가상 화폐는 골목 상점을 운영하는 이민자 출신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상 화폐를 결제나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면 은행 거래에서 발생하는 결제 수수료를 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민자들이 고국에 있는 가족과 친지에게 송금하는데도 가상 화폐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WP가 지적했다.

그렇지만, 가상 화폐가 소수 인종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아직 판명이 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상 화폐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볼 수 있고, 저소득층 소수 인종이 재기 불능의 위기에 처할 위험성이 있다. 미 의회 블록체인 코커스(CBC) 회원인 다렌 소토 하원의원(민주, 플로리다)은 WP에 “지역구 주민들에게 가상 화폐를 사라고 해야 할지, 사지 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미 정부와 의회는 최근 가상 화폐 거래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미 통화감독청(OCC)은 내년부터 미국 은행이 가상 화폐 사업을 하려면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OCC는 가상 화폐 보관, 스테이블 코인(달러 등 기존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시킨 가상 화폐)을 뒷받침하는 달러 예치금 보유, 중앙에 집중화된 거래 장부를 두지 않은 분산원장(DLT, Distributed Ledger) 기술을 사용한 가상 화폐 거래 등을 처리하기 전 은행이 당국의 사전 승인받도록 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