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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이 반도체 칩 공급망 데이터 요구한 배경과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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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이 반도체 칩 공급망 데이터 요구한 배경과 후유증

'중국 공급망 데이터 정보' 심층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
단기적으로 美 업체들에게 이익…장기적으로는 美 업체들 경쟁력 상실

반도체 칩 부족 사태가 기판 부족까지 파급되고 있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DB이미지 확대보기
반도체 칩 부족 사태가 기판 부족까지 파급되고 있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DB
지난 9월 말 미 상무부는 TSMC, 삼성 등 글로벌 칩 제조업체 20곳 이상에 칩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칩 패닉을 제어하자는 명분으로 칩 공급망 데이터 제공을 요청했으며, 마감일은 11월 8일까지였다.

일련의 진통 끝에 관련 회사들은 미국 정부의 압박에 마지 못해 마감일 전에 데이터를 제출했다. 이 데이터는 글로벌 칩 제조의 모든 사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이슈를 두고 중국의 현대 국제관계연구소와 기술 사이버 보안 연구소는 일반적으로 시장이 보는 공급망 해소 관점이 아니라 색다른 진단을 내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술 패권 경쟁에 함몰되기 보다는 협력을 통해 공생 경제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론적으로는 분명 옳은 주장인데 그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중국도 미국과 협력하는 자세로 나가야 한다.

칩 부족이 초래한 세계 경제 왜곡현상


이 이슈의 시발은 글로벌 칩 공급망의 부족이 심화되기 시작한 2020년 말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12월 폭스바겐은 핵심 부품과 칩 부족으로 생산 차질 위험에 직면했음을 알렸다. 이에따라 독일, 일본, 미국 및 여타 정부에서 2021년 1월 대만 당국에 반도체 생산 증가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대만 정부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와 세계 4위 UMC에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는 등의 대책을 촉구했다. 자동차 산업이 겪고 있는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사태는 심각한 양상이었다.

글로벌 칩 공급망 부족의 원인은 복합적인 것으로 진단되었다.

우선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중국의 기술 회사를 제재하여 자유 시장 경쟁에서 글로벌 칩 공급망의 균형을 교란했다. 그 결과 칩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가격이 상승했고, 전 세계의 기업과 투기 자본이 칩을 사서 비축하기 시작했다.

애플 같은 최고의 빅테크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충분한 칩을 확보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주문을 해야 했고, 칩 하나를 구매하려면 3배 가격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편, 칩 부족 현상은 모든 중간 제품의 생산에 영향을 미쳤고, 이에 따른 시장 패닉은 공급 부족이 아닌 구매로 더욱 확산되었다.

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회사들은 향후 몇 개월 또는 심지어 몇 년 내에 생산에 필요한 칩을 구매하는 가수요도 뒤따랐다.

칩 부족 현상은 점차 LCD 화면, 리모콘, 네트워크 카드 등으로 확산되어 휴대폰,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등 거의 모든 소비자 가전제품에 영향을 미쳤다.

제품 부족 현상은 관련 생산 라인의 모든 부분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전 세계 169개 산업이 칩 부족 사태에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6월 미국 상무부는 칩 수출 통제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해 모든 미국 기업이 28나노미터 미만의 공정을 가진 칩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여 28나노미터 미만의 고급 공정 칩 부족을 초래했다. 글로벌 공급망에 미친 영향은 앞으로 1~2년이 지나야 완전히 드러날 수 있을 정도다.

미국의 ‘데이터 요구’와 힘의 작용


칩 공급망 부족으로 인한 혼란에 직면한 미국 정부는 해법 찾기에 급히 나섰다.

지난 9월 24일 지나 레이몬드 상무장관은 바이든 행정부가 냉전 시대의 방위산품 생산법을 발동하여 반도체 공급망의 기업들이 칩 재고 및 판매 정보를 45일 이내에 미국 상무부에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자동차의 유휴 생산과 소비자 전자 제품의 부족으로 이어진 병목 현상을 파악하고 잠재적인 비축을 결정한다는 명분이었다. 이에 즉각 전 세계는 긴장했다.

TSMC는 9월 30일과 10월 6일 두 차례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TSMC는 “미국이 요구하는 데이터를 완전히 넘겨주는 것은 아니며 고객의 기밀을 보호하는 조건”으로 제출했다.

네덜란드 ASML이 생산하고 있는 최첨단 반도체 제작에 필수인 노광장비. 사진=ASML이미지 확대보기
네덜란드 ASML이 생산하고 있는 최첨단 반도체 제작에 필수인 노광장비. 사진=ASML

삼성의 입장도 난처했다. 10나노 이하 최첨단 칩을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시장 점유율은 8% 정도다. 삼성은 중국 시장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고객의 기밀 데이터를 보호해야 했다. 삼성이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중국의 주문이 줄어들 수 있었다. 한편, 삼성은 미 상무부 기업 목록에 포함될 경우 칩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제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미국 기업에서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목록에 포함되면 최악의 경우 사업을 접을 수도 있었다. 결국 삼성도 자료를 제출했다.

이 외 독일 대기업 인피니언, 이스라엘 반도체 등도 미 상무부 요구를 수용했다. 미국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칩 데이터 제출’ 이슈가 향후 글로벌 칩 산업 체인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한다.

1970년대 미국은 국제협력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산업 체인을 구축하고 제조장비, 기초재료 및 생산은 한국, 대만, 유럽에 아웃소싱 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칩의 대부분을 제조하지 않지만 공급망과 산업체인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데이터에 따르면 글로벌 칩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 시장 점유율은 54%, 삼성 점유율은 18%다. 미국은 10나노미터 미만 기술 노드에서 반도체 제조가 없다.

이것이 미국이 글로벌 칩 산업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칩 제조 산업 장비의 핵심 소스는 미국의 손에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최신 극자외선 노광기도 네덜란드 ASML사에서 제조하고 있지만, 노광에 사용되는 광원은 미국 제품이다. 노광기는 직경이 1미터가 넘는 거대한 렌즈군과 초고광도 정밀 연마도 미국 제품이어야 한다. 장비와 소프트웨어, 칩에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의 회로 연결을 설계하는 데 사용되는 전자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도 미국의 승인 없이 실행할 수 없다.

TSMC나 삼성과 같은 글로벌 최고 거대 기업들이 미국 앞에서 눈치를 봐야하는 이유다.

칩 제조 공정은 극도로 정밀하다. 현재 글로벌 칩 부족은 주로 28나노 이상 공정 칩에 집중되어 있다. 폭스바겐과 포드가 생산 차질 위험에 직면하게 만드는 것은 ESP 칩, ECM 칩, MLCC 칩이며, 일반적인 제조 공정은 약 40나노다. 미 상무부에서 요청한 주요 기업 목록에서는 TSMC, 삼성, 인텔 등 첨단 공정 제조사들만 포함되었다.

미 상무부 웹사이트 정보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요청한 데이터에는 지난 3년 간 회사의 주문 배송, 재고, 고객 정보, 기술 노드, 생산 계획, 수율, 자재 및 장비 구매의 26가지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3년 전은 바로 미국이 기업 목록을 사용하여 중국 기술 회사를 본격적으로 견제할 때였다.

이런 의도를 보면 한 가지 짐작이 가는 측면은 결국 미 상무부가 관련 회사에 칩 생산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하고 목록을 통해 파악하려고 한 것은 ‘중국 공급망 데이터 정보’를 보다 심층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이를 통해 미국 관련 기술 기업에 대한 비대칭 정보 이점을 모색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칩 종류, 기술 노드, 수율 등은 칩 제조사의 핵심 비밀이다. 일단 공개되면 같은 업계에서 이를 사용하여 2, 3세대 칩에 대한 전략적 레이아웃을 볼 수 있다. 전장에서 상대방의 전투 계획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미 정부가 이 정보를 자체 기업에 공개하면 향후 칩 경쟁에서 큰 이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번 미국의 ‘데이터 요구’는 단기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글로벌 시장을 더욱 교란시킨다.

칩 재고 및 수율과 같은 정보는 칩과 같은 대량 상품의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IT 빅테크 혁신 투자에 피드백 효과를 주는 글로벌 IT 시장에 매우 민감한 영향을 준다. 시장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업 재고 정보는 항상 매우 상업적인 비밀이었다.

미국이 요청한 일련의 데이터에는 공개된 적이 없는 대량의 비즈니스 기밀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확대하여 투명성과 희소성의 악순환을 형성할 수 있다.

TSMC가 칩 가격을 인상하면 주가에도 긍정적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TSMC가 칩 가격을 인상하면 주가에도 긍정적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사진=로이터

둘째, 미국이 전 세계 국가의 ‘분리’를 가속화한다.

20세기에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R&D 생태계 덕분에 인터넷, 가정용 컴퓨터, 스마트폰 및 기타 신기술 응용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업계의 정상에 설 수 있었다. 바로 이 R&D 생태계가 어떤 국가나 기업도 배제하지 않고 전 세계 기술 기업의 신뢰를 얻고 기술혁신 체인을 구축하고 한 세대의 공동 노력으로 성과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미국은 이 자유롭고 개방된 생태계의 가장 큰 수혜자다. 그러나 현재 미국 상무부의 접근 방식은 이 생태계에 완전히 반대되며 여러 국가의 정부와 기업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혁신 체인과의 협력 위험을 확실히 재검토할 수 있다.

셋째, 칩 제조를 미국으로 반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로벌 칩 공급망은 미국이 만들었지만, 여러 나라의 장기적인 시장 경제 협력 속에서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된 지 오래다. 현재 디지털 혁신이 점차 아시아로 옮겨가는 추세는 정부가 의도한 것이 아니며, ‘정부 보조금’ 때문도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칩 업체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업체들에게 만성적인 독극물이 될 수 있다. 점차 핵심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끝으로 ‘기술 침체’ 가능성에 직면한 미국의 무력감과 패닉이 나타날 수 있다.

글로벌 칩 제조 분야에서 ‘무어의 법칙’은 한때 “칩에 있는 반도체의 수가 약 2년마다 2배가 된다”는 불변의 진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칩의 회로가 계속 축소됨에 따라 생산 경험에 기반한 이 법칙은 점점 지속 불가능하게 되었다.

TSMC, 삼성 등 유수의 칩 제조사들이 개발한 가장 앞선 칩 제조 공정은 2나노에 이르렀는데, 더 이상의 발전은 ‘양자 터널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 효과는 파동성이 있는 전자가 원자를 뚫고 지나가는 현상이다. 반도체 칩 안정성을 저해한다. 이 문제에 솔루션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난관에 봉착해 있다.

미국은 물리학 한계를 돌파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 한계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상대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제어할 경우 글로벌 기술 발전의 속도가 느려지고 미국 자체의 혁신 속도도 느려진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