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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의 눈물, 모든 애환 한번에 보여주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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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의 눈물, 모든 애환 한번에 보여주는 감동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43)] '남성적' '여성적'이 아니라 '인간적'이어야 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그렇지만 가부장적인 시대에 덧씌워진 굴레에서 벗어나 남성적이라거나 여성적인 게 아니라 인간적이어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그렇지만 가부장적인 시대에 덧씌워진 굴레에서 벗어나 남성적이라거나 여성적인 게 아니라 인간적이어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태어난 지 40년이 된 한국 프로 야구에는 그동안 기라성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활약하였다. 그리고 금년에는 또 하나의 큰 별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조선의 4번 타자'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대호 선수이다. 올 시즌이 종료되면 그는 22년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다. 2001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든 이래로 2006년 타율 0.336으로 생애 첫 타격왕을 차지했다. 2010년에는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의 위업을 쌓았고, 같은 해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세계 신기록도 써냈다.

그는 일본과 미국의 프로야구에서도 활약했다. 일본에선 2015년 소속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한국인 선수 최초로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도 뽑혔다. 2016년에는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해 외국인으로서의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15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존재감을 알렸다. 그는 2017년 친정팀 롯데로 돌아왔고, 이제는 현역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40세의 은퇴시즌을 보내고 있는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현재 팀 내 최고 타자의 성적을 마크하고 있다. 최근에도 만루홈런을 펑펑 쏘아올리고 있다.
그의 경기 모습을 더 보고 싶어하는 팬들은 은퇴 결정을 번복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남자가 한번 말을 뱉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같이 있을 시간이 불과 6개월 밖에 없으니 궁금한 게 있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며 "부끄럽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와서 (노하우) 뽑아갈 것 있으면 뽑아가라고 했다"고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을 전했다.

이제 이대호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볼 기회는 별로 많지 않다. 2일 경기가 끝난 후 기자들에게 그는 "이제 24경기 남았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시간이 빨리 줄어드는 것 같다…. 무서운 선배가 없어서 좋아하는 후배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진짜 내년이면 제가 없다는 것이 함께 야구했던 후배들은 많이 아쉬워한다"라고 전했다. 이 말에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한평생을 보내면서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야구장을 떠나는 아쉬운 마음이 진하게 느껴진다. 왜 그라고 야구를 더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그는 마지막 은퇴경기 때, 롯데의 덕아웃이 눈물바다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미 올 시즌을 앞두고도 그는 "눈물이 많아져서 구단에 은퇴식도 안했으면 좋겠다"라는 걱정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모두 마지막 경기할 때는 내랑 눈 마주치지 마라"고 말했다. "서로 눈 마주치면 울 것 같으니까 선글라스를 끼든지 해서 눈을 안 마주치기로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라며 자신과 함께했던 선수들이 아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상황을 염려했다.

은퇴하는 날 왜 울면 안 되나? 존경하는 선배를 더 이상 덕아웃과 운동장에서 볼 수 없는 후배들이 아쉬워서 눈물 흘리는 것을 왜 굳이 막아야 하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대호 선수의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 글을 쓰는 목적에 제일 적합한 표본이기 때문에 예를 들고 있는 것뿐이다. 물론 집채 만한 몸집의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자신이나 보는 사람들에게 어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눈물은 한 인간으로서 그가 그동안 경험한 모든 애환(哀歡)을 한 번에 보여주는 감동일 수도 있다.

모든 문화에서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우리 문화에서 남과 여가 보여주어야 하는 태도에 큰 차이를 강조한다. 소위 남자는 '남자다움'을 요구받고, 마찬가지로 여자는 '여자다움'을 강요받는다. 남자다운 모습의 핵심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남자를 일컫는 '사나이'라는 단어는 군가(軍歌)에서 많이 쓰인다. 군대는 남자다운 용맹성과 강인함이 가장 요구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남성성을 잘 드러내 보이는 남자는 '진짜 사나이'라고 칭송받는다.

2010년 도루외 타격 7개 부문 1위 '타격 7관왕'
마지막 은퇴경기 때, 롯데 덕아웃 눈물바다 걱정
환호 받은 야구장 떠나는 아쉬운 마음 느껴져

대조적으로 '여성다움'은 배려하고 따듯하고 정서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이런 여성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행동으로 우는 것이 꼽힌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는 행동을 약함의 상징으로 꼽는다. 우리말에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밖에 울면 안 된다'라는 격언이 있다. 남자가 울어도 되는 세 번이 언제인지는 차치(且置)하고 이 격언이 의미하는 것은 남자와 눈물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는 것은 여자가 하는 행동이고, 유약함의 표시라는 것이다.

남자 어린이가 울 때 주위에서 "계집애같이 왜 찔찔 짜고 있냐?"라는 핀잔을 주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남자에게 제일 모욕적인 말은 "계집애 같다"라는 것이다. 과연 우는 행동이 약함의 표시이고 남자들은 피해야 할 행동일까? 사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사람이다. 생물학적으로 그럴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만약 다른 면이 훨씬 더 많다면 같은 종(種)인 '사람'으로 분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적' 혹은 '여성적'으로 분류되는 행동은 거의 대부분 문화적인 현상일 뿐이다.

우는 것은 여성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갓난아이와 어린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불편함과 감정을 우는 것으로 표현한다. 갓난아이에게는 남녀 차이가 없다. 남자 아이도 불편하면 운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행동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기는 각 문화에 맞는 남성적 여성적 행동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소위 '문화화'(文化化, enculturation) 되기 시작한다. 어느 문화에서도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가 충족되는 방식과 한계를 정하고 이를 가르친다. 그리고 비공식적·일상적인 활동을 통하여 그 사회의 성원이 공유(共有)하고 있는 문화를 익히게 된다. 덕분에 남자아이는 '남자답게', 그리고 여자아이는 '여자답게' 성장한다.

문화는 한 집단이 환경에 제일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생활양식의 총체이다. 한 집단의 '남자다움'과 '여자다움'도 문화일 뿐이다. 문화 상대주의를 주창한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의 뉴기니 세 종족의 연구는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서 미드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구분도 특정 사회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면서 모든 사회 현상은 그 사회의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에서 나타나듯이 남녀 차이를 강조하고, 남자에게 강함을 강요하는 것은 가부장적인 문화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가장의 권위를 강조하고, 남자만 호주(戶主)로서 가족을 주도적으로 통솔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강해야 하고,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남자에게 남자답게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효율적 방법은 여자다운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남자들에게 여성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이런 문화가 생성될 당시의 환경에서는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발달되었다. 하지만 이 문화 속에서 자신의 감정 표현, 그 중에서도 약함의 표시라도 인식되는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을 억제하도록 강요되는 남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 대사는 남자들의 정신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우는 것이 제일 건강한 것이다. 화날 때 화내고 기쁠 때 기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 살기 위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압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제는 남자답다는 미명하에 남자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문화는 더 이상 유지되면 안 된다. 상담실에서 남자 내담자들이 억눌렀던 감정을 표현하면서 거의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속이 후련하다"라고 말한다. 남자들이 "여자의 눈물에 약한 것"도 자신도 울고 싶은 데 참고 있기 때문에 눈물 흘리는 그 마음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인간답게'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