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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주고 패자에겐 굴욕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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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주고 패자에겐 굴욕을 준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44)] 익을수록 머리 숙이는 벼

단 두 명의 수강생들을 위해 2시간을 달려와 강의를 하며 학문하는 사람의 소중한 자세를 몸소 보여준 찬드라세카르 교수. 그의 이름을 딴 천체 망원경이 우주의 별자리를 발견했다.이미지 확대보기
단 두 명의 수강생들을 위해 2시간을 달려와 강의를 하며 학문하는 사람의 소중한 자세를 몸소 보여준 찬드라세카르 교수. 그의 이름을 딴 천체 망원경이 우주의 별자리를 발견했다.
최근 한 언론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밤 10시 30분쯤 20대 중후반의 한 남성이 음료가 든 일회용 컵을 들고 버스에 탑승하려는 것을 버스 기사가 제지하자 버스에 올라탄 후 큰소리로 항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제보 영상에 의하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나요? 컵을 갖고 타는 게?"라며 "제가 명문대학교 대학원생이다. 나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라고 말하고 "어떻게 소송 걸까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아저씨 이거 들고 타지 말라는 법적인 근거를 이야기해 달라"며 기사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버스에 컵을 들고 타지 못하게 제지하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의 여부는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필자가 안타깝게 여긴 부분은 "내가 명문대 대학원생이다. 나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 말에는 명문대학에 다닌다는 '자긍심(自矜心)'보다 오히려 '자만심(自慢心)'이 더 강한 마음이 담겨있다. 명문대학에 다니는 것은 분명 자랑할 만한 것이고, 자긍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사실이 자만심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2014년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명저로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는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또 한 번 한국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돈의 가치로 직업과 대학을 서열화함으로써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능력주의는 승자에게는 오만(傲慢)을 주고 패자에겐 굴욕(屈辱)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능력이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배분에 아무 역할도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능력이 직업과 사회적 역할 배분을 맡되, 대중들에게 굴욕감을 선사하는 '너의 성취는 너의 능력 덕분이다', '당신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능력주의적 미덕(美德) 가치관 자체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능력이 남들보다 우수해 경쟁을 통과한 엘리트들 또한 조금의 실수도 허용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통제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해지는 정신적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완벽주의'라고 한다. 이 습관은 그들이 승리자가 된 이후에도 그들을 괴롭히며 한편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삶에 대한 불안감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우울증에 빠지게 만든다.

심리학적으로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가 아닌
결과 받아들이는 개개인 심리적 성숙도 중요
'하면 된다' 능력주의적 미덕 가치관 바꾸어야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능력주의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심리적 성숙도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능력과 성숙도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하고, 능력보다 성숙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샌델이 지적하는 능력주의적 성공 개념의 핵심은 교육과 직업이라는 두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필자가 만난 뛰어난 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에 어울리는 겸손하고 성실한 분들이었다. 21세기 들어와 심리학은 '긍정심리'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분야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두 분의 심리학자 중 한 분이 필자의 지도교수이셨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1934-2021) 교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그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40년 넘게 모교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오랫동안 인간의 창의성과 행복에 대해 연구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 자신 헝가리계 유대인으로서 고등학교는 로마, 대학은 파리, 대학원은 미국 시카고 등에서 공부한 그는 낯선 외국에서 외롭게 공부하는 한국인 제자를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주셨다. 그 덕분에 필자는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교수로서 삶을 살 수 있었다. 필자가 미국에서 계속 지내기를 원하셨던 그는 귀국 인사를 하려고 만났을 때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무사히 잘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셨다. 2007년 12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소식이 끊겼던 무심한 제자에게 첫마디가 "요즘 지내기 괜찮은가?"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할아버지와 같은 온화한 미소를 띠우며 "그럼 됐다"라고 해주셨다.

또 한 분은 시카고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 1910-1995) 교수이다. 천체물리학 전공인 그분의 강의를 필자는 직접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교정에서 오고가는 모습을 뵌 적은 있다. 그분의 일화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인도 태생인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44년 시카고대학교 교수가 된 후 사망할 때까지 50여 년을 봉직했다.

1947년 젊은 천체물리학 교수 시절 대학 당국으로부터 겨울방학 동안 고급물리학에 대한 특강을 의뢰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며칠 후 대학 측은 단 두 명의 학생만 수강신청을 했기 때문에 강의를 취소해야겠다고 연락해왔다. 그는 그래도 상관없으니 강의를 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강의했다.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은 그 당시 그는 시카고대학교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져 있던 여키스(Yerkes) 천문대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여키스 천문대는 시카고대학교에서 운영하고 있었지만, 시카고에서 고속도로로 두 시간 정도 달려야 도달하는 위스콘신주에 위치하고 있었다. 즉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두 시간 이상 고속도를 직접 운전하고 와서 단 두 명의 학생을 위해 성실히 강의했던 것이다. 시카고 지역의 겨울 날씨를 경험한 사람은 한겨울에 두 시간씩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단 두 명의 학생을 위해 강의를 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찬드라세카르에게 강의를 들은 단 두 명의 수강생들은 바로 중국에서 유학 온 양전닝과 리정다오였다. 이들은 그로부터 10년 후 소립자론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당시 그들은 "저희가 이런 큰 상을 받게 된 것은 10년 전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열성적으로 강의하셨던 찬드라세카르 박사님 덕분입니다. 그때 박사님의 강의는 저희에게 물리학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습니다. 이 모든 영광과 기쁨을 찬드라세카르 박사님과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그 뒤 1983년에 찬드라세카르도 자신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을 듣기 위해 아침 일찍 자택을 방문한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학교에 가 후배 동료교수가 진행하는 아침 특강에 청강생으로 참석하여 강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업적을 기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X-선 우주 망원경에 그의 이름을 붙여 '찬드라엑스선망원경'이라 명명하고 그가 사망한 지 4년 후인 1999년 9월에 지구 궤도로 발사했다. 예상 수명이 5년에 불과했던 찬드라엑스선망원경은 지금까지도 멀쩡하게 블랙홀 등과 관련한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의 한정된 경험 외에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예는 많다. 20세기의 성자(聖者)라고 존경받는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1875~1965)나 성녀 테레사(Teresa, 1910~1997)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의 아름다운 미담(美談)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능력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능력에 비례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면 사람들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는 이유가 단지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타주의가 가장 성숙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능력의 결과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능력의 현실적 결과를 사용하는 방식은 개인의 심리적 성숙도에 달려 있다. 성숙한 사람은 나보다 너를 우선시하며, 미성숙한 사람은 너보다 나를 우선시한다. 남보다 뛰어난 자신의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이유가 된다면 능력의 유무에 관계 없이 미성숙한 사람일 뿐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