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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관계보다 수평적 문화가 환경 적응에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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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관계보다 수평적 문화가 환경 적응에 효과적"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53)] 수평적 문화와 나이

한국의 수직적 문화가 수평적 문화로 점차 바뀌고 있다. 수평적 문화에서는 나이보다 능력이 우선시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한국의 수직적 문화가 수평적 문화로 점차 바뀌고 있다. 수평적 문화에서는 나이보다 능력이 우선시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나이도 어린 놈이 건방지다.” 자신보다 젊은 사람들을 비난할 때 나이 든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언사(言辭)다. 비록 올바른 의견을 개진하더라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하면 건방지게 느끼는 것이 수직적인 우리 문화의 인간관계의 특징이다.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문화에서는 관계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 회사에서는 직급이 주요한 기준이 된다. 드라마를 보면 회사를 물려받은 나이 어린 회장에게 나이 지긋한 임원들이 깍듯이 존댓말을 하면서 모시는 것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군대에서는 군번, 즉 입대한 날짜가 중요한 기준이다. 하루라도 일찍 입대했으면 ‘고참’이 된다. 학교에서는 학번이 기준이고, 문중(門中)에서는 촌수가 기준이다. 수직적 사회에서는 모든 조직에서 상하를 가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상호 간에 상하 관계가 분명할 때 행동할 수 있는 사회적 규범이 확실하고, 그 규범을 따를 때 원활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가 쉬워진다.
수직적 문화가 우세한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제일 궁금한 것이 어떤 상하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이다. 이때 상하 관계를 맺는 데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나이다. 소위 ‘연장자’를 우대하는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상석(上席)에 앉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심정으로 마음이 더 불편한 사람이 “주민등록증 까자”는 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밝혀지면 결국 형·아우 관계가 형성되고, 그때부터 어떻게 행동할지 규범에 따르면 된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형님”으로 모시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우”에게 반말을 하고 술자리를 갖게 된다. 물론 술값은 형님이 사는 것으로 친근한 관계가 시작된다.

수직적 문화 상하구분 철저
권위주의적 태도 만연 문제
의사결정 제일 '윗분' 역할

상하 관계가 분명한 수직적 문화가 형성된 것은 그럴만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한 집단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제일 효과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행동 양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조직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이 살아온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만약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문화도 변하지 않는다. 반대로 환경이 변화하면 문화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만약 환경이 변하는데 문화가 변하지 않으면, 그 조직은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다. 한때 융성했던 많은 문화들이 지금은 흔적만 남고 사라진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환경은 변하는데 적응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20세기의 유명한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명언을 인용한다면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應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직적 문화가 과거에 효과적 적응 양식이었다는 것이 현재나 미래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수직적 문화가 효과적이었던 과거 몇백 년 동안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은 너무 다르다.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거칠게 말하면 이제는 수직적 문화보다는 수평적 문화가 적응에 더욱 효과적인 환경으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직적 문화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가장 ‘높은’ 사람이 하게 되어 있다. 물론 여러 구성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이 있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의사결정은 제일 ‘윗분’의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의 제일 윗분은 나이로 결정된다. 그리고 변화가 없고 안정적인 조직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사결정 과정의 좋은 점은 신속한 결정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조직에서는 수직적 문화를 지키고 있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의 의사결정은 신속해야 한다. 군대는 평화 시에도 항상 전쟁 중인 것과 같은 정신과 분위기에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치열한 전쟁 중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합리적인 결정보다는 신속한 결정이 전쟁 중에는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지연(遲延)된 결정은 전쟁의 패배를 의미할 뿐이다.
문화의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중의 하나가 말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하고 다른 점은 정교한 언어 구사 능력이다. 수직적 문화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구분이 철저하다. 따라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어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윗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쓰고 아랫사람에게는 ‘반말’을 쓴다. 대조적으로 수평적 문화는 모든 사람을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사용하는 말도 위아래 구분이 없다. 다만 공손한 표현이 있을 뿐이다. 공손한 표현과 존댓말은 엄연히 다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제일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존댓말과 반말을 정확히 구사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인도 틀릴 때가 있는 것이 존댓말과 반말의 정확한 사용이다. 물론 일본어에도 존댓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표현은 있지만, 우리말처럼 그 쓰임새가 다양하게 세분화되지는 않았다.

일단 상대에게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상대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조적으로 반말을 쓴다는 것은 상대보다 자신이 우위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직적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사회적 관계에서 언어 사용을 바꾸는 것이다. 즉 존댓말과 반말의 사용을 금지하고 모두에게 동등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적 대화에서 직급의 사용이나 경어(敬語)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다.

수평적 문화 모든 사람 동등
모두에게 동등한 호칭 사용
자유로운 의견 개진 활력소

수평적 문화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두려움과 간섭 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조직의 장(長)은 각자가 자신의 의견을 마음 놓고 개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최근 일부 회사에서 직급을 부르는 것을 지양(止揚)하는 것도 이런 환경을 마련하는 배려이다. 현대는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적응 방식으로는 효과적으로 ‘응전’할 수 없다. 모든 조직이 윗사람 한 사람의 결정으로 효과적으로 운영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조직원이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고 같은 비중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조직이 급변하는 환경에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상담자인 필자는 일 년에 몇 차례씩 집단상담을 촉진한다. 집단상담은 개인상담과 유사한 점과 다른 점도 있다. 제일 다른 점이 집단상담은 말 그대로 여러 집단원들이 동시에 참여한다. 집단원들이 동시에 참여하기 때문에 집단원들 간의 역동(力動)이 집단상담의 효과에 필수적이다. 역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집단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집단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수록 역동은 강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집단을 이끌고 가는 리더를 상담자라고 하기보다는 촉진자라고 부른다. 집단의 역동을 효과적으로 촉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뜻이다.

집단의 역동을 효과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모든 집단원이 자유롭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안전한 분위기가 돼야 누구에게도 꺼내 놓지 못했던 내밀한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 분위기를 잘 만드는 것이 바로 촉진자의 역할이고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상담에서 모든 집단원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어느 누구도 다른 집단원들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비난하거나 조언을 하지 못한다. 촉진자는 어떤 집단원들이라도 동일하게 취급하고 다른 사람의 윗사람 역할을 하려는 사람을 막는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아랫사람 역할을 하는 것도 막는다. 모든 사람은 집단상담 중에는 동등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집단상담을 시작할 때 모든 집단원은 자신의 본래 이름이 아니라 집단상담 중에 사용하는 별칭을 짓도록 한다. 그리고 모든 별칭 뒤에는 ‘님’자를 붙이고, 서로 존댓말을 하도록 한다. 물론 촉진자에 따라서는 모든 집단원이 서로 반말을 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존댓말을 사용하든, 반말을 사용하든 이 모든 조치는 모든 집단원이 동등하다는 것을 절감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필자의 별칭은 “잣나무”이다. 일단 집단상담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모든 집단원은 필자를 “잣나무님”으로 부른다. 제자들과 함께 하는 집단상담에서조차 필자는 제자들의 별칭 뒤에 ‘님’자를 붙이고 존댓말을 한다. 물론 제자들도 필자를 ‘잣나무님’으로 부른다. 집단상담은 철저한 수평적 관계에서 진행된다. 가장 모범적인 집단상담은 촉진자도 다른 집단원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 집단이다.

수직적 문화에서는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적인(authoritarian) 태도를 갖게 된다. 모든 권력이 나이나 지위 또는 신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나 신분이 높으면 능력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권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수평적 문화에서는 권위적인(authoritative) 태도를 가지게 된다. 수평적 문화에서 권위는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변화에 효율적으로 ‘응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