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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부사장도 방 없어요"…직원 천국 HD현대 판교 GRC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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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부사장도 방 없어요"…직원 천국 HD현대 판교 GRC 가보니

현대그룹 계열 분리 후 처음으로 지은 자체 ‘사옥
모든 공간 네트워크로 연결돼 단절없는 업무 가능
모든 임직원에게 동일한 업무 공간‧집기‧시설 제공
전무 이하 임원도 자율근무공간서 직원과 같이 업무
피트니스 센터도 이용 못해…물리적 환경 차별 없어

지난 6일 찾아간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GRC 근무공간에서 직원들이 자신이 예약한 자율좌석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HD현대 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6일 찾아간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GRC 근무공간에서 직원들이 자신이 예약한 자율좌석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HD현대
“부사장 미만 임원은 방이 없습니다. 심지어 방을 얻지 못한 부사장도 있습니다.”

지난 8일 찾아간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판교 글로벌 R&D(연구개발) 센터(GRC)를 둘러보던 중 자율근무공간에 도착하자 박수근 한국조선해양 GRC운영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자율근무공간은 GRC 8~19층에 층별로 입주한 17개사 HD현대 계열사 임직원이 근무할 수 있게 책상과 의자 등이 놓인 곳이다. GRC에서 근무하는 5000여명의 임직원이 층마다 약 4463㎡(1350평)에 이르는 사무공간에서 450명씩 임직원이 근무한다.

자율사무공간만 있어서 부서 또는 팀 방과 같은 전통적인 사무실이 없다. 매일 임직원 개인이 정한 자리를 골라서 앉아 일하면 된다. 이런 공간에 팀장이 “내 자리 주변으로 모여라”라는 지시도 할 수 없다. 팀장이 필요하다면 팀원이 일하는 자리로 가야 한다.

전무 이하는 모두 직원과 같이 자율사무공간에서 자리를 예약하고 일한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이 임원들도 직원들과 더 가까이 가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회장, 부회장, 사장 방이 있긴 하지만 면적은 약 43㎡(13평)으로 최소화했다. 임원들로서는 다소 서운할 만하다. 박 팀장은 “GRC의 최우선 목표는 직원들이 천국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곳 시설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공정하다”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임원들은 되도록 안쪽에 조용한 자리에서 일하라고 직원들이 스스로 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D현대 미래 100년 내다본 결과물


GRC는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된 지 20년 만인 지난해 문을 연 HD현대의 첫 자체 사옥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었던 2016년 그룹 전 계열사가 모이는 통합 R&D센터 건립안이 결정됐고, 2018년 성남시와 업무협약(MOU)을 체결, 2020년 1월 건립을 시작해 지난해 11월부터 입주했고, 그해 12월 26일 새 사명 ‘HD현대’ 선포식을 했다.

지상 20층, 지하 5층으로 총 연면적은 역 17만6291㎡(5만3328평)이다. 건물 부지 약 2만3802㎡(7200평)은 성남시로부터 20년간 임대해 이용료를 내고, 후에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옵션을 포함했다.

박 팀장은 건물을 특징을 △스마트 큐브 △스마트 보이드 △스마트 그리드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 큐브는 가장 안정된 정육각형 블록을 모아서 만든 것을 뜻하며, 건물 중간을 통째로 비워 중심으로 갈수록 소통과 협업이 활성화되도록 한계 스마트 보이드다”라면서, “스마트 그리드는 기둥을 건물 외부로 노출해 내부 공간 활용을 극대화했다”라고 했다.

HD현대 GRC 위에서 내려다 본 보이드 공간 사진=HD현대이미지 확대보기
HD현대 GRC 위에서 내려다 본 보이드 공간 사진=HD현대
1~5층은 공동시설, 6~7층은 그룹의 심장부인 실험실이다. 8~19층은 층별로 17개 계열사가 입주한 TF협업 및 상주 협력사 근무공간이다.

정육각형의 GRC는 외부는 내부도 동서남북 어디나 똑같은 구조‧비율을 갖고 있다. 박 팀장은 “이러다 보니 방향감각이 둔해져서 층마다 A‧B‧C‧D로 공간을 나눠 다른 색깔을 칠해놨다”고 설명했다.

GRC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같다. 책상, 의자, 캐비닛은 물론 이들 사무용 집기가 자리한 공간 면적도 같고, 직원 모두에게 똑같이 제공한다. 극단적인 표준화로 앞서 언급했듯이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물리적 근무환경의 차이 때문에 일의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박 팀장은 “세팅한 근무 공간을 변경할 때 누구는 더 넓고, 누구는 더 좁다고 생각하는 직원도 있으므로 모든 임직원에게는 같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모든 것 지원


사무공간 동일화와 함께 GRC는 ‘개인화’를 보장하되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건물 전체가 무선 네트워크화 되어 이동 중에도 일을 할 수 있는 ‘스마트 워크플레이스’를 구축했다.

사무공간의 책상은 위아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다. 컨디션에 따라 앉아서 또는 서서 일할 수 있다. 고정된 책상보다 10배는 비쌌지만, 업무 편의를 위해 도입했다고 한다. 책상엔 대형 모니터가 있다.
USB C타입 케이블을 꽂으면, 모니터 연결과 노트북 충전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의자는 200만원이 넘는 허먼 밀러의 제품을 제공한다. 허리 보호에 도움을 준다고 했는데, 앉아보니 뭔가 다르다는 느낌은 있었다. 참고로 지난 2003년 잡코리아 조사 발표에 따르면, 그해 현대중공업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은 2600만원 선이었다.

오로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했다. 권역별로 나눠 운행하는 통근버스와 주변 지하철역을 수시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도 있어 접근성을 높였다.

GRC 4층에는 심리 상담실, 모성보호실, 헬스케이존과 같은 복지시설과 우편, 은행, 베이커리, 식음료 같은 편의시설, 도서관 역할을 하는 더 라이브러리가 있어, 긴급한 사적 민원을 해결할 수 있다.

구내식당은 조식 4종, 중식 8동, 석식 2층으로 다양한 메뉴를 직원들이 선택할 수 있으며, 조식과 중식은 2종의 간편식을 추가 운영한다. 신세계푸드와 현대그린푸드가 동시에 입점해 경쟁을 유도한 점도 흥미롭다. 세 끼 모두 무료다.

사무공간 전 층에는 4곳의 탕비 공간인 캔틴을 두고 있는데, 박 팀장은 캔틴은 직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인 만큼 자신이 직접 이를 꾸미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 강조했다. 냉장기, 전기 오븐을 비롯해 얼음 정수기, 커피 머신 등이 완비돼 있으며 각종 에너지 음료와 커피를 비롯해 견과류, 시리얼 바, 스낵류 등을 구비하고 있다. 박 팀장은 “전담 큐레이터가 2800여가지의 과자‧식품‧음료를 토대로 직원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선별하고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찾아간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GRC내 탕비 공간인 캔틴에서 직원들이 음료와 간식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HD현대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6일 찾아간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GRC내 탕비 공간인 캔틴에서 직원들이 음료와 간식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HD현대

1층 피트니스 센터는 1000명이 운동을 즐길 수 있는데, 이 또한 임원은 이용할 수 없다. 박 팀장이 웃으며 “임원들은 월급 많이 받으니 외부 피트니스 센터로 가라고 했다”고 했지만 직원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회사 측의 결정이었다. 아산홀은 컨퍼런스, 세미나 외 공연, 전시, 영화 상영은 물론 좌석을 모두 접으면 연회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음달 개원하는 어린이집(드림보트어린이집)은 1~2층에 걸쳐 조성됐다. 만 0세부터 취학 전까지에 해당하는 직원 자녀 중 3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무료로 운영되며, 영어 교사가 상주해 교육하고, 간식 포함 하루 4끼가 제공된다.

부서‧사내 넘어 계열사 간 융합 추구


직급‧부서를 넘어 계열사 간 협업‧융합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엿보인다. GRC 4층의 보이드 공간에 마련된 계단 겸 의자에는 누구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사무공간 내에는 총 700여곳의 회의실이 운영되고 있다. 20인이 가능한 대회의실과 8인, 12인의 중회의실은 물론 5명 규모의 G큐브와 1인 회의실까지 회의실이 없어서 모임을 못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전 회의실은 전국의 사업장과 화상회의가 가능하며, 무선통신, 전자칠판 등 첨단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지원이 소속되어 있는 층의 사무공간에서 근무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사업 부문이 묶여 있는 계열사의 경우 타 계열사 사무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건설기계장비 부문 중간 계열사인 현대제뉴인과 현대두산인프라코어, 현대건설기계가 입주한 11~13층에서는 3사 직원이 자신이 원하는 층의 좌석에서 근무하면 된다. 별도의 공용 근무 공간도 마련돼 있어서 다양한 계열사 직원이 한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에 멈춘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GRC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다른 부서, 다른 계열사 사람들과 근무를 할 수 있을까? 직원과 근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걸까? 혼란스럽다”라는 인상까지 풍긴다.

비결은 앱을 통한 모바일 관리 시스템이다. 카카오와 함께 구축한 앱을 통해 통근버스 탑승과 자율근무좌석 또는 회의실 예약, 근무 시간 체크 등 모든 것을 모두 할 수 있다. 각 지점에 퍼져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의 위치와 좌석에 있는지 여부는 물론, 구내식당 이용자들의 밀집도, 심지어 화장실에 자리가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떨어져 있지만 모여 있을 때보다 더 가까운 관계’로 이어졌다는 게 HD현대 측의 설명이다.

이러한 GRC는 일반 오피스에 비해 운용비용 부담이 클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HD현대는 이를 비용이 아닌 투자라고 보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HD현대 관계자는 “한 명의 직원이 만들어낸 창의적인아이디어 하나가 그룹 전체의 부를 키워냈다는 사실은 구글이나 애플 등 해외 유명기업을 통해 증명됐다”라면서, “직원들이 창의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최고의 근무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GRC의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GRC 전경. 사진=HD현대이미지 확대보기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GRC 전경. 사진=HD현대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