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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일감 풍년 현대重 울산조선소 ‘희망의 오케스트라 콘서트’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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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일감 풍년 현대重 울산조선소 ‘희망의 오케스트라 콘서트’ 한창

여의도 3배 크기 면적에 49척 선박 건조 중
10~11주면 배를 ‘찍어내는’ 건조 공정 한창
1위 조선소 위상 회복…2.9만 임직원 분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현대중공업
지난 22일 김포국제공항에서 탑승해 울산공항으로 가는 항공기 안. 울산광역시 쪽으로 진입하자 아래에는 현대미포조선 조선소가 보였고, 조선소가 마주한 동해 바다 앞에는 몰려 있는 다수의 선박이 목격됐다. 이들 가운데에는 접안을 위해 대기하거나 출항을 시작한 선박들도 있지만 시운전을 하는 갓 건조한 선박들도 많다고 한다. 시운전 선박은 마무리 공정을 거쳐 명명식 후 선주에게 인도된다. 글로벌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10년대 초반, 선주가 찾아가지 않은 많은 선박을 기약 없이 바다 위에 정박시켜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10여 년 만에 찾아온 울산 조선산업 부흥의 첫 풍경은 이렇게 눈앞에 들어왔다.

10여 년 만에 개방…도크‧안벽에 선박 꽉 들어차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어쨌건 대한민국 사회에는 “장남이 잘돼야 집안이 살아난다”라는 전통이 있다. 이 말은 산업에서도 통한다. 1위 업체의 위상이 굳건해야 2, 3위 업체의 경쟁심을 촉발해 전체적인 승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대한민국 1위 조선소이자 세계 1위 조선소다. 글로벌 조선산업의 패권을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온 주인공이자, 중국의 물량 공세를 기술 초격차로 대응하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K-조선산업’의 온상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등도 건재하지만, 울산조선소가 흥하거나 침체한 모습은 보여주는 신호는 상징성이 크다.

이런 울산조선소가 10년여 만에 언론에 문을 열었다. 기자가 이곳을 찾아간 것은 지난 2011년 이후 12년 만이다. 일감이 급감으로 인한 조선산업이 불황의 늪에 빠졌고, 이에 따라 회사의 경영이 악화했으며, 노사 갈등도 심화한대. 따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조선소의 상징인 선박 탄생의 자궁이라 불리는 ‘도크(Dock)’가 비어있는 모습을 공개하기를 꺼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빈 도크는 조선산업의 불황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날 찾아간 울산조선소 도크에는 건조 중인 선박들이 빽빽이 들어가 있었다. 여의도 면적 3배에 달하는 635만㎡(역 192만평) 규모의 조선소가 매우 좁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총 2만9200여명(임직원 1만2800여명‧협력업체 직원 1만6400여명)이 사업장 곳곳에서 건조작업에 한창이었다.

울산조선소의 시작점으로 1974년 2월 15일 현대중공업이 처 수주한 26만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애틀랜틱 배런호’가 진수된 1도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배가 빠지지 않자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을 포함한 전 직원이 로프를 달아 끌고 나갔다는 바로 그곳이다. 2도크는 물론 상선 건조용 도크로는 가장 큰 3도크도 마찬가지였다. 1위 조선소가 보여줘야 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선소 내의 안벽에는 진수 후 마무리 공사를 하는 선박들로 즐비했다. 이들 선박은 조만간 선주들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안벽에 진수한 선박들이 정박해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안벽에 진수한 선박들이 정박해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배를 찍어낸다”라는 말을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선박 수주가 조선소의 건조 능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넘쳐나자. 좁은 조선소 도크에 최대한 일정을 맞춰야 하니 선박은 크기와 관계없이 10~11주면 건조하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선박을 빨리 건조하면 조선소는 인건비와 조선소 운용 비용을 절감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선주는 일찍 사업에 선박을 투입해 예상외의 수입을 거둘 수 있어 윈-윈이다. 현재 울산조선소가 선박을 “찍어내고” 있었다.

엔진 등 기계를 시운전하면서 들리는 기계음과 바쁜 건조 일정을 맞추기 위해 블록공장에는 철판을 자르고, 용접하는 소리가 들렸고, 완성한 블록을 실은 특수차량 트랜스포터도 분주하게 운행하고 있었다. 울산조선소의 또 다른 상징은 ‘스쿠터’를 타고 이동하는 직원들이다. 출퇴근 시단마다 벌어지는 스쿠터와 자전거를 탄 직원들의 모습은 울산조선소의 또 다른 장관이기도 하다. 사업장마다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직원들도 눈에 띈다.

누군가 본다면 이러한 소리를 ‘소음’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울산조선소 임직원들에게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협주곡’을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10여 년 만에 찾아온 일감 풍년이 만든 그들만의 흥겨운 콘서트는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었다.

1993년 국내 첫 LNG선 건조…연내 100척 넘을 듯


수치를 보면 울산조선소의 활기찬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월 말 현재 152척의 수주잔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날 설명을 담당한 이영덕 현대중공업 문화부문 상무는 “현재 울산조선소에는 100척의 선박이 건조 작업(엔지니어링)을 진행 중이며, 이 중 49척은 야드(조선소)에서 건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라면서, “이 중 20여척은 선박 모양을 갖췄고, 나머지는 블록 형태로 제작하고 있다”라고 했다.

설립 후 현재까지 누적 건조 척수 2272척을 기록 중인 세계 1위 울산조선소는 선박 기자재 생산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53개국 330개 선주사로부터 선박을 수주했다.

이날 누적 2억 마력 생산 기념식을 가진 선박 대형엔진이 대표적이다. 이 기록은 워낙 경쟁사를 압도하는 것이라 현대중공업이 엔진생산을 중단해야만 추월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선박용 프로펠러와 그룹에서 계열분리 됐지만, 선박에 의무적으로 탑재하는 구조정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자재의 국산화율도 높다. K-조선의 위대함은 선박 건조뿐만 아니라 조선산업을 구성하는 가치망을 한국이 구축했다는 게 더 강조된다. 그 중심에 현대중공업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2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열린 대형 선박엔진 누적 생산 2어마력 돌파 기념식에서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대형엔진이 공개됐더. 사진=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2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열린 대형 선박엔진 누적 생산 2어마력 돌파 기념식에서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대형엔진이 공개됐더. 사진=현대중공업
한편, 이날 오후에는 3도크에서 진수를 마치고 1안벽에 정박해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17만4000㎥급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승선할 수 있었다. 길이 230m, 높이 35.5m, 넓이 46,4m인 이 선박은 지난해 카타르를 비롯해 다수 국가 선주와 오일 메이저들이 발주하는 LNG운반선의 표준형이다. 지난 2020년 하반기 수주했고, 올해 상반기에 선주에 인도될 예정이다.

이만수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사업부 조선 PM(책임 매니저)은 “17만㎥의 액화천연가스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사용하는 1.5일치 용량”이라면서 “현대중공업 전체 수주잔량 152척)중 LNG선은 53척이며, 회사가 창사 이래 건조한 총 선박 중 LNG선은 95척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올해안으로 누적 LNG선 건조 100척을 넘을 전망이다.

2023년은 현대중공업이 국내 조선사 가운데 최초로 LNG운반선을 건조한 지 30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991년 모스 타입 LNG운반선 국적선 1호선을 수주해 1993년2월 2일 진수식을 1도크에서 거행했고, 1994년 6월 취항했다. 이 선박이 당시 현대상선(현 HMM)이 운영한 ‘현대유토피아호’다.

한영석 부회장 “2~3년 내 정말 좋은 회사 될 것”


대형엔진 누적 생산 2억 마력 돌파 기념식이 열린 이날에 앞서 21일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의 22주기였고, 하루 뒤인 23일은 현대중공업 창립 51주년이었다. 그만큼 대형엔진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룹명을 ‘HD현대’로 바꾸고 CI도 교체했다. 울산조선소에는 아직 과거의 CI가 남아있었는데, 조만간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룹명과 CI가 바뀌었고, 매출 규모에서는 계열사 현대오일뱅크에 뒤졌고,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의 설립으로 대표성은 낮아졌지만, 그룹 출범의 모태로서 현대중공업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울산조선소의 중요성도 절대로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7만4000㎥급 LNG선 조타실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7만4000㎥급 LNG선 조타실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도 기자들을 찾아와 이러한 의지를 전했다.

한 부회장은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제도를 인력(외국인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으니, 이제 일할 맛 나는 회사를 만드는 건 제 책임이다”라면서, “사람들을 많이 모셔 와 일하는데, 잘해서 그분들이 우리 사람들이 일하는 것 이상으로 잘하게 만들면. 아마 2~3년 이내에 제2의 조선산업 (부활에서) 아주 꼭대기까지 갈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와 함께 “우리는 스마트 조선소를 만들고 있고, 준비를 착착 해나가고 있다”라면서, “2~3년 내로 정말 좋은 HD현대그룹이 될 것 같으니 여러분들도 응원을 많이 해달라”고 당부했다.


채명석 (울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