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기업 협의회 개최…인력난·자금난·행정 애로 해소가 경쟁력 좌우
현장 건의 19건 검토, 울산여성인력개발센터·산업은행 연계 추진
현장 건의 19건 검토, 울산여성인력개발센터·산업은행 연계 추진
이미지 확대보기경제자유구역의 성과는 더 이상 분양률이나 투자유치 실적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입주기업이 실제 현장에서 인력을 구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기술을 사업화하고, 지역 안에서 고용과 매출을 만들어내야 경제자유구역의 의미가 완성된다.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은 9일 3D프린팅벤처집적지식산업센터에서 ‘2026년 제1회 입주기업 협의회’를 열고 입주기업 지원사업 안내, 기업 건의사항 처리 결과 공유, 현장 의견 청취 등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날 협의회에는 이경식 울산경제자유구역청장과 테크노산단·HTV산단 입주기업 대표, 입주기관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한다.
이미지 확대보기경제자유구역의 본질은 유치보다 ‘정착’
울산경제자유구역은 울산 산업전환의 핵심 공간으로 조성됐다. 미래모빌리티, 미래화학신소재, 수소·저탄소에너지 등 울산의 차세대 전략산업을 끌어들이고, 기존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중심의 산업구조에 새로운 성장축을 더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울산경제자유구역은 수소산업거점지구, 일렉드로겐오토밸리, R&D비즈니스밸리, KTX 울산역 복합특화지구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 수소, 이차전지, 연구개발, 비즈니스 기능을 나눠 맡는 구조다.
그러나 산업지도를 그리는 일과 실제 기업이 성장하는 일은 다르다.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되고 기업이 입주해도, 기업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산업 생태계는 쉽게 두꺼워지지 않는다.
특히 기술 기반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입주 이후 더 큰 벽을 마주한다. 연구개발 인력은 부족하고, 설비투자 자금은 무겁고, 판로는 불확실하다. 지원사업은 많지만 기업이 제때 찾기 어렵고, 금융지원은 있어도 실제 문턱은 낮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경제자유구역청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기업을 유치하는 데서 끝나는 행정이 아니라, 입주기업이 성장 단계마다 부딪히는 문제를 관계기관과 함께 풀어주는 조정자 역할이 필요하다.
현장 건의 19건, 기업지원 행정의 민낯 보여줘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은 올해 입주기업 현장을 직접 방문해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베스, ㈜대경산전, ㈜엔코아네트웍스, ㈜삼기산업 등 4개 입주기업을 방문해 총 19건의 현장 건의사항을 접수했다.
기업 4곳에서 19건의 건의사항이 나왔다는 것은 입주기업들이 행정, 인력, 금융, 협력 체계에서 적지 않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기업 현장의 애로는 대부분 거창한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을 뽑기 어렵고, 운영자금이 빠듯하고, 지원사업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고, 행정절차가 느리고, 협력할 기업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누적된다. 작은 불편이 반복되면 기업의 성장 속도는 느려진다.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이 접수된 건의사항을 단순 민원으로 넘기지 않고 관계기관 협업으로 연결하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입주기업 지원의 핵심은 행정기관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기업이 필요한 자원과 제도를 빠르게 연결하는 데 있다.
인력난 해소, 산업정책의 가장 현실적 출발점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은 직원 채용을 위한 인력자원 활용 필요성에 따라 울산여성인력개발센터와 세부 협의를 완료하고, 업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채용 지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울산의 산업전환은 결국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래모빌리티, 이차전지, 수소, 첨단소재, 디지털 전환은 모두 전문인력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지역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인력을 찾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대기업과 수도권 기업은 임금과 복지, 브랜드 경쟁력을 앞세운다. 지역 신산업 기업은 기술력은 있어도 인력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
여성인력개발센터와의 연계는 활용 가능한 지역 인력풀을 넓히는 방식이다. 경력단절 여성, 직업훈련 수료자, 재취업 희망자와 입주기업을 연결할 수 있다면 기업의 인력난 완화와 지역 일자리 확대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단순 구인·구직 연결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요구하는 직무와 구직자의 역량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맞춤형 교육, 현장실습, 직무 전환 프로그램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입주기업 협의회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인력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사람을 연결했다”는 수준에서 끝내서는 안 된다.
자금난 지원, 협약보다 접근성이 중요
중소기업 금융지원도 이번 협의회의 핵심 의제다.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은 금융권 대출 협약이 필요하다는 기업 건의를 반영해 산업은행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관내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와 경영 안정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입주기업 금융지원은 이미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의 주요 지원 기능 가운데 하나다.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은 한국은행 중소기업 지원 자금을 활용해 입주 중소기업의 대출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에는 한국은행 울산본부와 입주기업 금융지원 협약도 체결했다.
이번에 산업은행과의 협약이 추가로 추진된다면 금융지원 체계는 한 단계 더 넓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 기반의 저리 자금 지원,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의 기업 추천과 현장 관리가 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지원은 이름보다 실제 접근성이 중요하다.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협약 체결 자체가 아니라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 얼마나 빠르게 받을 수 있느냐다. 기술력은 있지만 담보가 부족한 기업, 매출은 아직 작지만 성장성이 큰 기업, 설비투자가 필요한 기업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관건이다.
경제자유구역청이 금융기관과 손을 잡는다면 단순 대출 알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입주기업의 기술력, 고용 계획, 성장 가능성, 지역 기여도를 금융기관에 설득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정책금융은 숫자만 보는 금융이 아니라 산업의 가능성을 읽는 금융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있어도 현장을 모르면 힘을 잃는다"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은 입주기업을 위한 기업애로 해결추진단도 운영하고 있다. 세무·회계, 노무, 법무, 산업재산권 분야 전문가들이 입주기업의 전문분야 애로 해결을 지원하는 구조다.
이 제도는 입주기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은 기술 개발이나 생산에는 강점이 있어도 세무, 노무, 법률, 특허 대응에는 취약한 경우가 많다. 특히 신산업 기업은 지식재산권, 공동연구 계약, 투자계약, 인력 채용, 근로조건 문제에서 전문 자문이 필요하다.
문제는 제도의 존재와 체감 사이의 거리다. 지원제도가 있어도 기업이 모르면 없는 제도와 다르지 않다. 신청 절차가 복잡하거나, 담당 창구가 분산되거나, 처리 속도가 느리면 기업은 지원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입주기업 협의회가 중요한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협의회는 지원제도를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기업이 어떤 제도를 실제로 쓰고 있고 무엇을 쓰지 못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기업지원 행정의 성패는 예산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이 필요할 때 정확한 제도를 찾고, 담당자를 만나고, 빠르게 답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경제자유구역청이 입주기업을 상시적으로 관리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다.
테크노산단·HTV산단, 울산 산업전환의 압축판
이번 협의회에는 테크노산단과 HTV산단 입주기업들이 참여한다. 두 산단은 울산경제자유구역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울산은 오랫동안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세계 산업 질서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탄소중립, 공급망 재편, 전동화, 수소경제, 인공지능, 첨단소재 경쟁이 기존 제조도시의 생존 조건을 바꾸고 있다.
울산경제자유구역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산업전환의 장치다. 수소산업거점지구와 일렉드로겐오토밸리, R&D비즈니스밸리 등은 울산이 기존 주력산업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러나 선언만으로 산업전환은 이뤄지지 않는다. 신산업은 공장 부지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기술, 인력, 자금, 연구기관, 대기업 수요, 창업 생태계, 행정지원이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테크노산단과 HTV산단 입주기업의 성장은 울산경제자유구역의 실질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입주기업이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입주기업이 지역 안에서 매출을 만들고, 고용을 만들고, 다른 기업과 협력하며 산업 생태계를 두껍게 만드는 일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입주기업 협의회, 보여주기 행사가 되지 않으려면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은 2021년 출범 이후 매년 입주기업 간담회를 개최해 왔다. 지난해 7월부터는 입주기업 간 협력 강화와 체계적인 소통을 위해 ‘울산경제자유구역 입주기업 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간담회와 협의회의 차이는 후속 관리에 있다. 간담회가 의견을 듣는 자리라면, 협의회는 의견을 모으고 처리 결과를 공유하며 다음 과제를 다시 설정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행정기관 주도의 회의는 자칫 행사성으로 흐르기 쉽다. 참석자 명단, 기념사진, 지원사업 설명, 기관장 인사말로 끝나면 기업 입장에서 남는 것은 많지 않다.
이번 협의회가 의미를 가지려면 기업 건의사항 19건이 어떻게 분류됐고, 무엇이 해결됐고, 무엇이 남았고, 어떤 기관과 협의 중인지가 구체적으로 공유돼야 한다. 기업들은 추상적인 지원 의지보다 처리 속도와 결과를 본다.
또 협의회는 기업 간 협업의 장으로도 확장될 필요가 있다. 같은 경제자유구역 안에 있어도 기업들은 서로의 기술과 수요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연구기관과 스타트업, 금융기관과 기술기업이 만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청이 해야 할 일은 회의를 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업 사이의 연결망을 설계하고, 지원기관을 묶고, 금융과 인력을 붙이고, 규제 애로를 중앙정부에 전달하는 일이다. 기업이 혼자 뚫기 어려운 길을 행정이 함께 열어주는 것이 경제자유구역청의 존재 이유다.
울산경제자유구역의 다음 10년, 숫자보다 생태계가 중요
울산경제자유구역의 사업기간은 2020년부터 2030년까지다. 투자 목표와 일자리 창출 목표는 이미 숫자로 제시돼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평가는 더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자유구역이 커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안에서 성장하는 기업의 밀도다. 입주기업 수가 늘어도 기업이 지역 안에서 고립되면 생태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자유치 실적이 높아도 고용과 기술 이전, 협력 네트워크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제한된다.
울산경제자유구역의 다음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기업을 유치했느냐”보다 “입주기업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크게 키웠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이경식 울산경제자유구역청장은 “울산경제자유구역 민선 7·8기 성과를 바탕으로 기업지원시책 발굴과 행정지원 노력을 강화하고, 입주기업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앞으로도 기업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며 기업경영 활성화를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울산경제자유구역은 이제 성과의 기준을 새로 써야 하는 시점에 들어섰다. 기업을 유치했다는 숫자보다 기업이 성장했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산업단지를 채우는 행정에서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입주기업 협의회가 일회성 소통 창구에 머물지 않고 인력, 금융, 기술, 규제, 판로를 연결하는 실질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때 울산경제자유구역의 경쟁력도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