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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CEO] 열등생→입시 실패→삼륜차 운전수→알리바바 회장…마윈의 '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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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CEO] 열등생→입시 실패→삼륜차 운전수→알리바바 회장…마윈의 '기업가 정신'

영어교사에서 알리바바 성공 이끈 '인터넷시대의 총아'로

마윈 알리바바 회장. 이미지 확대보기
마윈 알리바바 회장.
중국 전자상거래 대기업 알리바바를 세우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뒤 지난 9월 회장자리에서 물러난 중국 최고갑부 마윈(馬雲·55, 일명 잭마)의 사업 성공기가 중국판 기업가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겐다이(현대)는 최근 노구치유키오(野口 悠紀雄) 히도츠바시(一橋)대 명예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학창시절 열등생으로 대학입시를 2번이나 실패하고 삼륜차 운전수와 영어교사를 거쳐 어떻게 알리바바를 세계적인 전자상거래기업으로 키운 마윈 전 알리바바 CEO의 성공기를 게재했다.
중국이 개방개혁 이후 많은 새로운 기업이 생겨났다. 특히 1992년 등소평(鄧小平,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이후 수출산업은 급성장했다. 다만 이들 기업은 기존 제조업 유형의 기업들이다. 미국으로 말하면 10세기 말, 일본에서는 고도성장기에 등장한 기업의 중국판이다.

그러나 1990년대말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중국에서도 실리콘밸리형의 신기업이 등장하고 급성장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알리바바다.

1999년에 기업간(B2B) 전자상거래를 지원하는 매칭사이트 ‘알리바바(阿里巴巴)’가 설립됐으며 이어서 2003년에는 개인 대 개인(C2C)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淘宝網)가, 2008년에는 T몰(天猫)이 세워지며 급성장했다.

최근 수년동안에는 전자화폐 등 금융분야에서 급성장해 세계 최첨단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새로운 중국을 상징하는 존재다. 알리바바를 설립한 것은 마윈이다.

학생시절에는 열등생이고 대학시험에서 2번 실패했으며 삼륜자동차의 운전수를 했다. 이후 사범학원의 영어과를 졸업한 뒤 고향인 항저우(杭州)에서 영어교사가 됐다.
1994년 통역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인터넷과 만났다. 33살에 처음 산 컴퓨터로 ‘맥주’라는 단어를 검색했는데 미국, 일본, 독일의 맥주는 찾았지만 중국의 ‘맥주’에 대해서는 검색결과가 없었다.

결국 중국에서는 이 당시 인터넷은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마윈 회장이 거대한 비즈니스 찬스를 포착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귀국한 이후 친구와 함께 아파트의 한방에서 ‘차이나 옐로페이지’를 설립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999년 수십명의 친구를 모아 중소기업용 전자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이것은 B2B전자상거래다. 중국의 중소기업세계에 수출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다만 중국 국내의 중소기업 무도 간단하게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품을 구입해주는 상대를 찾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래상대를 찾는 데에는 중국 상무부와 광둥(広東)성 정부가 개최하는 광저우(広州) 교역회 등 공식적인 박람회에 출품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많은 중소기업들은 이 박람회에는 출품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알리바바의 사이트에 출품하면 중소기업으로서도 대기업의 하청이나 계열사가 되지 않아도 외국기업과 거래할 수 있게 됐으며 세계적인 수평분업에 참가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기업과 거래하고 싶은 외국기업은 적절한 상대를 찾을 필요가 있다. 폭스콘과 같은 대기업이라면 누구라도 그 존재를 알 수 있지만 중소기업의 상황은 알수 없다. 분명 적절한 거래상대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일지도 모른다. 알리바바에서 조사하면 그러한 공급망도 접근가능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의 맥주’로 외국 수입업체가 입력한다면 중국 맥주 제조업체를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리바바의 B2B 사이트는 중국의 공급망과 전세계 바이어를 연결시켰으며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의 막대한 수의 중소기업으로서도 문자 그대로 ‘열려라 참깨’가 된 셈이다.

사이트는 누구라도 볼 수 있다. 중국어판 뿐만 아니라 영어판도 있다. 여기를 보면 중국 중소기업의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우선 제공되고 있는 상품의 가격이 싼데 놀란다. 일본 소매가격의 10분의 1이라는 사례도 늘려 있다. 유명메이커가 구입하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악한 상품만 있을 리 없다. 또한 기업수가 많은데다 제공되고 있는 상품수에도 놀라게 된다.

알리바바그룹의 성장은 이후 본격화한다.

2003년에 C2C를 전업하는 타오바오를 설립했다. 이 사이트는 개인이 출품해서 개인이 사는 네트워크숍 사이트다. 당초에는 작은 사이트였다. 마윈의 친구는 사이트를 요란벅적하기 보이기 위해 아파트에 있는 것을 끌어모아 플랫폼에 투고한 것같다.

2008년에는 T몰을 설립했다. 이 사이트는 라쿠텐(楽天) 시장과 같은 기업대 개인(B2C)형의 몰이다. 타오바오에는 개인명의로도 출품할 수 있지만 T몰은 중국 국내에서 등기된 법인만이 출점할 수 있다. 현재에는 나이키, 갭, 유니콘 등 유명브랜드도 출점하는 사이트가 됐다.

타오바오에서 팔리는 상품에는 조약한 제품도 많고 또한 복제품과 지적소유권을 침해하는 사유품도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반해 T몰은 고급화된 느낌이 든다.

1980년대에 중국에서 새로운 기업이 생겨났지만 그 경영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기득권층의 세계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소위 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고 창업할 때에 어느 정도 사업기반을 갖고 있었다.

통신메이커 화웨이 최고경영자(CEO)인 런청페이(任正非)는 중국인민해방군의 전 간부기술자였다. 가전전기기구업체 하이얼그룹의 CEO인 장루이민(張瑞敏)은 국유기업에서 파견된 인물이다.

PC메이커 레노버(聯想集団)의 창업자인 류촨즈(柳伝志)는 중국과학원 계산기술연구소의 과학자였다.

이들은 능력면에서도 그리고 인맥과 자금조달면에서도 경영자가 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마윈은 다르다. 마윈은 엘리트가 아니었다.

마윈 자신이 지나 2018년5월에 일본 와세다대에서 강연했을 때 “나와 같은 공부못하는 쓰레기는 어떤 회사에도 들어갈 수 없다. 때문에 스스로 기업을 만드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마윈과 같은 기득계층과 관련없어도 적극적이라면 찬스를 거머쥘 수 있는 사회가 형성돼 왔던 것이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수단에 의해 가능하게 됐다.

기업가정신에 가득찬 원맨경영자가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경영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16세기에 유럽에 주식회사가 나타나 리스크를 감수한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중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기업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고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젊은이들도 대기업에서 일하기 보다 창업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종전 직후 일본과도 닮아있다. 그 무렵 소니와 혼다와 같은 기업이 중국에서 다수 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원시적인 자본주의 경제에 가까운 세계다. 그것이 공산당 독재정권 아래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극히 흥미로온 현상이다. 러시아에서도 동유럽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요즘 미국에서도 인터넷을 둘러싸고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1992년에 브라우저 ‘모자이크’가 발표됐다. 1993년에 뒤에 야후가 된 사이트가 설립됐으며 1998년에는 구글이 법인체로 탄생했다.

중국에서도 알리바바와 비슷한 기업이 수많이 나타났다. 특히 중요한 것으로 검색엔진 바이두(百度), 텐센트(騰訊)가 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면서 인터넷과 중국의 성장이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박경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jcho101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