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 산업현장 투입 본격화…美 '디짓' 10만개 처리·中 500대 납품

미국 오레곤주 로봇 기업 애질리티 로보틱스가 자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Digit)'이 실제 물류창고에서 토트(물류용 운반상자) 10만 개를 이동하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인터레스팅엔지니어링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시연용이 아닌 실제 산업현장에서 대규모 처리량을 입증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조지아주 플라워리브랜치에 있는 GXO 로지스틱스 시설에서 디짓이 10만 개 이상의 토트를 이동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물류창고에서는 통상 자율주행 이동로봇(AMR)이 물품을 창고 이곳저곳으로 장거리 운반하고, 고정형 로봇 팔이 정확한 위치에 물건을 쌓거나 내려놓는 작업을 담당한다. 하지만 AMR에서 물건을 꺼내 컨베이어로 옮기는 짧은 구간의 작업, 즉 '마지막 1미터'는 사람의 손재주와 판단력이 필요해 자동화가 어려웠다. 디짓은 바로 이 부분을 사람처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에 입증됐다.
이번 배치는 GXO가 추진하는 휴머노이드 인력 테스트 계획에 속한다. 앱트로닉과 리플렉스 같은 다른 업체들도 이 프로그램에 로봇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처리량 결과를 보고한 첫 업체가 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산업 현장 검증에서 한 발 앞서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성과는 경쟁사인 피규어가 자사 F.02 로봇 편대가 약 9만 개의 판금 부품을 처리했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애질리티 로보틱스가 10만 개를 넘는 처리량을 보고하면서 실제 작업 산출량에서 다소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디짓은 최대 16킬로그램을 들어 올릴 수 있으며, 배터리는 최대 4시간 지속된다. 키 175센티미터, 몸무게 65킬로그램 규모인 이 로봇은 인공지능 기반 시각·균형·물체 처리 능력을 갖춰 복잡한 실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2022년 DCVC와 플레이그라운드 글로벌이 주도한 시리즈B 투자에서 1억 5000만 달러(약 2200억 원)를 유치했으며, GXO와 서비스형 로봇(RaaS)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 로봇 기업 UB테크는 최근 산업용 휴머노이드를 자동차 고객사에 수백 대 규모로 납품했다고 밝혔다. UB테크는 올해 초부터 워커(Walker) 시리즈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8억 위안(약 1650억 원) 이상의 주문을 확보했다.
BYD·지리자동차·폭스콘·SF익스프레스 같은 주요 산업체들과 협력하면서 자동차 생산라인 곳곳에 워커 S 시리즈를 투입해 안전벨트 검사, 도어 잠금장치 점검, 헤드라이트 커버 검사, 차체 품질 검사, 유체 충전, 전방 차축 조립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UB테크는 올해 말까지 500대 납품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26년까지 연간 5000대, 2027년까지 연간 1만 대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워커 S2는 3분 내 자체로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24시간 무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어 신뢰할 수 있는 대량 처리 산업용 장비로 전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반복성과 일관성이 성공적인 산업용 로봇의 진정한 척도라고 강조했다. 대량의 토트를 이동하려면 다양한 조건에서 수천 번의 작업을 반복하면서도 성능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창고·물류·제조업 분야에서 100만 개 이상의 자재 처리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2024년 딜로이트와 미국 제조업연구소 공동 연구에 따르면 2030년까지 미국에서만 19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인력 부족으로 공석으로 남을 것으로 예측됐다. 이러한 노동력 부족 상황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반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상용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