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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금리 올려도 5000만원까지만··· 저축은행들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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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금리 올려도 5000만원까지만··· 저축은행들 '속앓이'

정기예금 평균 금리 5.43%에도 수신잔고 정체상태 '속수무책'
수신자금 확보 위해 금리 경쟁 결국 수익성 문제 악순환 지속
부동산 PF대출 사태 겹쳐 심각 업계, "부실공포는 과장" 주장

서울 시내 한 저축은행 앞을 시민이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시내 한 저축은행 앞을 시민이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대 예금 상품까지 등장하면서 몰리는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일부 저축은행의 경우 전산망까지 마비됐지만 막상, 예금자들이 5000만원 이상 맡기는 것을 꺼리면서 저축은행들이 수신 자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수신 확보를 위해 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고 수익성마저 악화되는 등 악순환만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한 저축은행 종사자가 던진 넋두리다.

은행권 예·적금 금리가 무섭게 상승하면서 저축은행도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수신 금리 인상에 나섰다. 하지만 자금 확보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금자들은 과거 저축은행에 목돈을 맡겼지만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면서 부실 저축은행들이 대거 폐업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나아가 예금자 보호한도(5000만원) 이상의 금액을 돌려받지 못했던 악몽 탓에 저축은행에 많은 돈을 맡기길 꺼린다. 최근 들어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에 대한 공포심 마저 커지자, 고객들이 저축은행에 고액을 예치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기준 79개 저축은행의 정기예금(12개월 기준)의 평균 금리는 5.43%다. 지난달 초 3.85%에 불과했던 예금 금리가 1개월 새 2%포인트 가깝게 오른 것.

최근 저축은행들은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수신 금리 인상 경쟁에 나서고 있다. 수신과 채권 발행을 통해 여신 자금을 조달하는 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은 수신으로 여신 자금 대부분을 조달한다. 수신 자금의 이탈 시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수신 고객을 잡기 위해선 예·적금 금리를 대폭 올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수신 잔고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기 못하고 있다. 8월 저축은행 수신잔액은 117조4604억원으로 전월(117조1964억원)대비 0.22% 증가에 그쳤다. 6월(3.3%)과 비교시 증가율이 급격히 낮다. 저축은행 수신 잔고는 지난 2년 동안 월 별 기준 1~5%대 증가율을 보였다. 하지만 7월 들어 0%대로 낮아졌다.

반면,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대형 은행의 예·적금에 돈이 몰리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808조2276억원이다. 이는 한 달 전보다 6.3%(47조7231억원) 늘고 지난해 말보다 23.4%(153조2917억원) 증가한 수치다

저축은행들이 자금 확보에 애를 먹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과거 부실 사태에 대한 트라우마가 가장 크다. 최근 저축은행의 건전성 지표가 후퇴하면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저축은행에 맡긴 돈을 빼거나 예금자 보호 한도인 5000만원까지만 맡겨야 한다는'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11년 발생한 저축은행 사태는 2000년대 초 부동산 시장 과열 속에 저축은행들이 고객들이 예금한 돈을 토대로 PF 대출을 과감히 늘리면서 발생했다. 사태 발생 10년이 지났지만 최근 과거와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면서 예금자들의 불안감만 증대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79개 저축은행이 취급한 부동산 PF 대출규모는 10조7856억원이다. 2018년 말 5조2000억이었던 것을 감안 시 5년 만에 2배 넘게 급증했다. 부동산 PF 대출은 부동산 개발 사업 시행사가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토지를 매입하고 개발 사업이 끝나면 분양 수익금으로 원리금을 갚는 구조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개발 사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자금을 미리 빌려주므로 부동산 호황기에는 사업성 검증이 부족해도 수익성과 안정성이 보장된다. 때문에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시장 호황기가 시작됐던 2018년부터 PF 대출 잔액을 급격히 늘렸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었을 때다. 부동산 PF 대출은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거나 경착륙시 돈을 빌려준 금융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최악의 경우 연쇄 도산이 나타날 수 있다.

부정적 조짐도 이미 나타났다. 지난 6월 말 기준 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1.76%로 6개월 전(1.21%)보다 0.55%포인트 급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 조달 시장이 경색되면서 저축은행들의 경영은 향후 더 악화될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와 관련, 저축은행업계는 '과거 부실 사태와 지금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저축은행 사태를 거치면서 충분한 안전장치들이 마련된 탓에 저축은행 부실 전망은 지나친 기우란 것이다.

금융당국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의 부동산PF 대출 한도를 전체 대출액의 20% 이내로 제한했다. 또 PF 대출과 건설업, 부동산업 등 3개 업종에 대한 대출이 전체 대출액의 50%를 넘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실제,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0년 저축은행업권의 전체 여신(64조6000억원) 중 부동산 PF 대출 비중(12조3000억원)은 약 19%였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 6월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비중은 9.4%에 불과하다.

전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 중 저축은행업계가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79개 저축은행이 취급하는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금융권 전체 잔액(112조2000억원)의 10% 남짓이다.

고객의 예금이 함부로 PF 대출로 흘러갈 수 없도록 한 규제도 있다. 부동산 PF 대출을 받으려는 차주는 사업에 소요되는 총 금액의 20%를 자기자본으로 보유해야 한다. 건 당 대출금액도 120억원으로 제한된다. 예금자가 맡긴 자금이 무작정 PF 대출로 흘러 들어갈 수 없도록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다.

한 대형 저축 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을 것을 예상치 못하고 부동산 PF 대출을 늘린 것은 맞지만 현재로선 부실에 대한 공포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법정 최고 금리에 막혀 있어 대출 금리는 더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예금 금리를 올릴 수도 없어 수익성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고 말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