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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들이 무슨 죄"…상호금융권 과당경쟁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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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들이 무슨 죄"…상호금융권 과당경쟁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

남해축협, 10%대 적금 팔아놓고…"직원 실수, 해지해달라" 읍소
상호금융권, 특판 경쟁 과열…"대출할 곳 못 찾으면 부실 위험 커져"

사진=남해축산농협 홈페이지 캡쳐.
사진=남해축산농협 홈페이지 캡쳐.
최근 금융당국의 수신금리 과당경쟁 자제 요청에도 고금리 특판 경쟁을 벌였던 상호금융권이 돌연 고객에게 예적금 상품 해지요청을 하거나 이자지급 포기 선언에 나서면서 가입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남해축산농협(남해축협)은 지난 1일 최고 연 10.35% 금리를 적용하는 정기적금 상품 'NH여행적금'(12개월 이상 24개월 미만)을 출시했다. 아직 시중은행의 정기적금 상품이 대부분 연 5%를 넘지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2배가 넘는 이자를 지급하는 셈이다.
한도가 없는 고금리 상품이 나왔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온라인 제테크 카페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비대면으로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객이 순식간에 몰렸다. 상품 판매가 시작된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당초 예상 목표 금액인 10억원의 100배가 넘는 1000억원이 예수금으로 들어왔다.

남해축협은 "원래 이 상품은 인터넷·모바일 등 비대면 판매가 계획된 상품이 아니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업점을 방문해야 가입할 수 있었던 상품인데 직원의 실수로 비대면 판매가 개시됐다는 게 남해축협의 설명이다.

적금은 매월 입금액에 남은 만기를 반영해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라 예금보다는 고객에 지급해야 하는 이자부담은 적은 편이다. 예컨대 만기 1년·이자 10% 상품의 경우 1200만원을 12개월 간 예치했다면 세전 기준 예금 이자는 120만원이지만 매월 100만원씩 12개월간 1200만원을 적립하는 적금의 이자는 65만원이다.

이에 따라 이번 특판 판매로 남해축협의 1년 이자 부담은 60억원을 웃돌것으로 예상된다. 남해축협의 지난해 말 출자금이 73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자를 모두 지급했다가는 경영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남해축협은 조합원이 673명에 불과하며 남해읍 본점과 창선지점, 하나로마트, 가축시장, 방역사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 가입자에게 전화와 문자 등으로 계속해서 가입 해지 요청을 하고 있다. 남해축협에 따르면 8일 오전 10시 기준 상품 가입자 중 40% 정도가 해지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높은 금리를 받으려고 팔품을 팔아온 소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부 재테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조합 실수인데 왜 가입자들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거냐"는 지적들이 이어졌다. 또 법적으로 계약이 이미 계약이 성립됐기 때문에 해당 상품 가입을 취소하거나 해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가입 해지를 꺼리는 고객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상호금융권 과열된 예금 유치 경쟁에 따라 이러한 유형의 소비자 피해 사례는 늘어나는 추세다.

합천농협은 지난 5일 최고 연 9.7% 특판적금을 내놨다가 이자지급 포기를 고객들에게 알렸고 동경주농협도 지난달 25일부터 판매한 최고 연 8.2%짜리 정기 적금을 고객들에게 해지 요청을 한 상황이다. 신협 중에서는 제주 사라신협이 12~23개월 만기 자유적립식 적금에 연 7.5% 제공하는 특판을 실시했다가 돈이 몰리자 해지 요청에 나섰다.

고객이 선의로 해지 요청에 동의하더라도 새 상품 가입에 발목이 묶이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대다수 금융사가 한 은행에서 수시입출금통장 개설하면, 영업일 기준 20일이 지나야 다른 은행에서 새 수시입출금통장 만들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이번 사태에 피해를 본 고객들은 통장 개설 이력 때문에 20일 이내에 새 상품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남해축협은 해지 고객에 대해 연 5% 금리를 주는 농협정기예탁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보상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고금리 특판 경쟁으로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될 수록 상호금융권 전반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금 유치 경쟁에 소비자 피해 발생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경쟁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상호금융권에 고금리 특판 판매를 자제해달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금융권 자금흐름 점검·소통 회의'에서도 업권 간뿐만 아니라 업권 내에서 자금조달 경쟁을 자제해달고 당부할 정도다.

특히 각 지역 농업인이 출자해 세운 지역 단위 농협 같은 상호금융은 특성상 해당 지역 외 대출이 제한적이다. 예·적금 수요가 쏟아질 경우 이자를 지급할 여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현행 규정상 상호금융 예대율은 지역 조합원보다 비조합원 대출 비중을 낮게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수신은 이러한 규제가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호금융권은 높은 예적금 금리로 고객을 모아도 대출할 곳이 마땅히 없을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고객에 지급해야 할 이자비용이 커지면 부실에 대한 가능성이 커질 수 있어 최근 상호금융업권에 과도한 금리 경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