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서방의 금융 제재로 국채 쿠폰(약정 이자)을 갚지 못해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도 일단 빗나갔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만기가 도래한 채권 상환금을 차질 없이 갚았다. 그렇지만 달러 결재권을 쥔 미국 재무부가 오는 25일로 끝나는 송금 차단 유예 조처를 연장할지 결정할 예정이어서 러시아가 디폴트 위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무역 흑자가 늘면 달러화 또는 유로화 등 외화가 러시아에 차곡차곡 쌓이고, 이 돈이 우크라이나전 전비로 사용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이미 실패했거나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
루블화 가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 회복
그러나 미국 정부와 경제 전문가들은 제재 효과가 단기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깊은 내상을 입었고, 그 후유증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최근 의회 증언에서 "러시아 인플레이션이 올해 20%에 달할 것이고, 경제는 10~15% 이상 위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옐런 장관은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 기업들은 국제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고, 러시아의 주요 방위산업체들은 국제시장에서 칩과 부품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도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단기적으로 버틸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빠질 것으로 분석했다. 루블화 가치가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은 러시아가 사실상 '금본위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금을 팔아 억지로 루블화 가치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라고 미국의 언론 매체 '스펙테이터'가 지적했다.
"제재 단기적으로 버틸 수 있으나 시간 흐르면 심각한 경제난 직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방어를 위해 금리를 20%까지 올렸다가 이를 14% 낮췄으나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있어 올해 18~23%가량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했다. 러시아 주요 기업의 주가도 지난 2월 이후 대체로 3분의 1 또는 4분의 1 가량 폭락했다.
러시아 항공기의 국제선 운항도 대부분 중단됐다. 러시아 민간항공기가 대체로 미국의 보잉사 제품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로 부품을 구할 수 없어 민간항공기를 정비하기가 어려워졌다. 러시아의 자동차생산업체도 극심한 부품난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의 소비재 생산도 원활하지 않다. 러시아 의류회사가 단추 대부분을 유럽에서 수입했고, 몇 개월이 지나면 단추가 없어 옷을 만들 수 없게 된다. 산업 생산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이어서 러시아는 수입 난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제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