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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중앙은행들, 올해 3분기 동안 '금 400톤'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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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중앙은행들, 올해 3분기 동안 '금 400톤' 사들였다

9월 현재 총 3만6746톤…1974년 이후 최고 수준
튀르키예·중국 등 매수 주도…서방 경제재재 예방조치
환율방어·인플레 헤지 등 '달러화 의존' 탈피 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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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수단인 동시에 안전자산으로도 간주되는 금. 미국 중앙은행의 잇단 기준금리 인상 조치에 영향을 받아 ‘킹 달러’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어졌던 미국 달러화의 초강세로 국제 금 가격은 올 들어 줄곧 바닥을 헤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지난 3월 온스당 2000달러(약 260만원)까지 잠깐 오른 때를 빼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연말이 다가오면서 금값이 다시 꿈틀거리는 조짐이다. 달러화 강세가 한풀 꺾이면서 향후 금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금 가격이 내년 들어 온스당 3000~4000달러(약 390만~520만원)까지 오르는 ‘신고점’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4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강도 금리인상 조치를 이어온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인상 기조를 조정하고 달러화 강세가 더 누그러든다는 전제가 깔렸다.

그러나 금 가격이 다시 움직이는 배경에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최근 들어 금 사재기에 나선 것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3분기에만 무려 400t에 달하는 금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반세기 만의 최대 매수 규모다.

특히 신흥 경제국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고를 가장 적극적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나 그 배경이 주목된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동안 전 세계 주요 은행들이 사들인 금이 지난해 동기 대비 4배나 많은 400t에 달했다. 누적 순매수량 기준으로는 1967년 이후 연간 순매수량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전체적인 금 보유고도 지난 9월 현재 총 3만6746t에 달해 1974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 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8133t)이고 그다음은 독일(3355t), IMF(2814t), 이탈리아(2452t), 프랑스(2437t) 순이었다.

금 보유고 늘리기, 신흥국들이 주도


금 보유고 늘리기에 나선 나라는 서방권이 아닌 신흥 경제개발국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3분기의 경우 튀르키예(31.17t)가 가장 많은 금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고 우즈베키스탄(26.13t), 인도(17.46t), 카타르(14.77t)가 그 뒤를 이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도 지난 3분기 동안 금 보유고를 2019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WGC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은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금 매수세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특히 10월 기준으로는 아랍에미리트(UAE)가 31t을 추가로 매수해 최대 구매자로 파악됐다.

WGC는 “우리 측에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도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상당량의 금을 매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인민은행은 지난달 금 보유고를 전달과 비교해 32t 늘렸다고 최근 발표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의 이 같은 행보는 자국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표시 자산을 줄이고 금을 늘림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중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신흥국들, 지정학적 위기 대응하는 헤지 수단으로 금 비축 나서”


영국의 유력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표적인 헤지 수단인 금의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언제 있을지 알 수 없는 서방의 경제 제재 조치에 대한 예방적 대응 수단으로 신흥개발국 중앙은행들이 금 비축을 주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가 촉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가 자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행보인데, 특히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알려진 금으로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것.

금을 비롯한 원자재 전문 분석가로 유명한 덴마크 투자은행 삭소은행의 올레 한센 상품전략가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발 지정학적 위기가 자국 통화를 비롯한 자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즉 환율 방어의 필요성 때문에 외환보유고를 줄이는 대신 안전 자산으로 통하는 금 보유고를 늘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 이후 신흥국들, ‘달러화 의존’ 벗어나려 금 사재기


WGC의 존 리드 선임 시장분석가도 “현재 금 사재기에 나서고 있는 나라는 대부분 비서방권 국가들”이라면서 “달러화로 구성돼 있는 외환보유고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고를 늘리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 통화정책 여파로 미국 국채 금리가 높아진데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권의 고강도 경제 제재까지 겹치면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서방 사회에 속하지 않는 신흥국의 국채 매력이 기록적으로 낮아진 상황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신흥국들 입장에서는 금 보유고를 늘리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닛케이아시아도 “중국과 신흥국들이 서방의 고강도 러시아 제재 조치를 지켜보면서 달러화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다퉈 금 비축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달러화라는 기축통화의 패권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 러시아, 튀르키예 등은 이미 수년 전부터 중앙은행 준비금에 금을 상당량 축적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중앙은행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금 매입량이 1967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은 미국 기준으로 40년 만에 닥친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을 부추기면서 금 수요가 증가한 때문으로 분석했다.

WEF는 “WGC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 3분기 기준으로 전 세계적인 금 수요가 1181t에 달해 전년 대비 28%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확산으로 안전 자산을 보유해야겠다는 심리가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결과”라고 진단했다.

WGC “중앙은행 개입 수준, 금 시장에 변수”


WGC는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이라는 공통의 파고를 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중앙은행 차원의 개입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하느냐에 따라 금 시장의 향배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WGC는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침체가 심각하지 않은 수준에서 앞으로 닥친다면 그동안 금 시장의 역사를 근거로 볼 때 금 시장에 미칠 영향은 긍정적일 수 있고 △인플레이션 강도가 약화되고 달러화 강세가 지속적으로 꺾인다면 금 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위기가 당분간 지속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볼 때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서 금의 매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고 △글로벌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할 중국 경제가 내년 들어 호전된다면 금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WGC는 “인플레이션이 잦아들기 전에 성급하게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 기조를 접거나 인하 방향으로 돌아설 경우에는 오히려 글로벌 경제가 경기 불황 속에서도 물가가 계속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이런 상황이 도래할 경우에도 그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안전 자산으로서 금의 역할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