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글로벌 거시경제의 흐름과 산업의 흥망성쇠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시가총액 역전은 단순한 기업 간의 순위 바꿈이 아니다. 쇳물과 기계음으로 상징되는 '올드 이코노미(Old Economy)'의 시대가 저물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뉴 이코노미(New Economy)'로 자본주의의 거대한 축이 완전히 이동했음을 알리는 극적인 선언이다.
손정의가 오늘날 일본 자본시장의 가장 높은 곳에 꽂은 깃발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AI 클러스터나 조 단위의 투자금 너머를 보아야 한다. 그 깃발의 깃대는 100여 년 전 대한해협을 건너온 한 가난한 이방인의 뼈와 살로 만들어졌으며, 그 깃발을 물들인 것은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결코 스러지지 않았던 한 가문의 처절한 눈물이기 때문이다. 손정의의 이야기는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 할아버지 손종경이 대구에서 짐 보따리 하나를 쥐고 현해탄을 건너면서 시작된다. 1914년, 식민지 조선의 가혹한 빈곤을 피해 더 나은 삶을 찾아 밀항선에 몸을 실었던 18세의 청년 손종경이 도착한 곳은 규슈 후쿠오카현의 지쿠호(筑豊) 탄광이었다.
당시 지쿠호는 일본 근대화의 동력이었던 석탄을 캐내던 곳이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에게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안전장치 하나 없는 막장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포와 싸우며 석탄을 캤다. 그들이 살던 곳은 번지수조차 없는 무허가 판자촌이었다. 철길 옆 국유지에 버려진 목재와 슬레이트를 주워다 엉성하게 엮어 만든 집은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요동쳤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었다. 겨울이면 칼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일본인들은 그 빈민가를 가리켜 '조센징 부락'이라 부르며 멸시했다.
손정의의 아버지 손삼헌과 어머니 이옥자의 삶 역시 가난과의 처절한 사투였다. 1957년 사가현 도스시의 무허가 판자촌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난 손정의의 유년기 기억은 온통 돼지 분뇨의 악취와 흙먼지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 손삼헌은 밑바닥에서 탈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돼지를 키우고, 생선을 팔고, 심지어는 불법으로 막걸리와 소주를 빚어 파는 밀조주(密造酒) 사업까지 손을 댔다. 경찰의 단속을 피해 숨어 지내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벼랑 끝의 삶이었지만 아버지 손삼헌은 결코 자식들 앞에서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특유의 호탕함과 긍정으로 아들 손정의의 뇌리에 맹렬한 자존감을 심어주었다. 아버지의 이러한 자세는 날 손정의가 글로벌 비즈니스 정글에서 수십조 원의 자본을 베팅할 수 있게 만든 야성의 근원이었다. 세상 모두가 '조센징'이라 손가락질하며 짓밟으려 할 때, 아버지가 걸어준 '천재의 최면'은 소년의 마음속에 그 어떤 차별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견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손삼헌은 훗날 파친코 사업과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어 가족을 빈곤에서 구출해 냈지만, 손정의가 물려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은 돈이 아니라 바로 이 '무한한 긍정과 담대함'이었다.
가정 내에서는 '천재'로 불렸지만, 문밖을 나서는 순간 소년은 '조센징'이라는 잔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길을 가다 일본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린 적도 있었고, 자신의 진짜 이름인 '손정의' 대신 '야스모토 마사요시(安本正義)'라는 일본식 통명을 쓰며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굴욕도 감내해야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손정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도, 재일교포 신분으로는 교사도, 공무원도, 정치인도 될 수 없는 닫힌 사회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리 천장이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그 짙은 안개 속에서 소년의 운명을 바꾼 것은 일본의 국민 작가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였다.
막부 시대의 낡은 틀을 깨부수고 근대 일본의 새벽을 열었던 혁명가 사카모토 료마. 소년 손정의는 번(藩)이라는 출신의 굴레를 과감히 끊어내고(탈번)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던 료마에게서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 "나 역시 재일교포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세계로 나가겠다.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혁명가가 되겠다."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16세의 당돌한 소년 손정의는 일본 맥도날드의 창업자 후지타 덴을 무작정 찾아간다. 비서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수십 번 전화를 걸고 결국 도쿄까지 찾아가 면담을 얻어낸 그는 묻는다. "제가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합니까?" 후지타 덴은 답했다. "과거를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 앞으로는 컴퓨터의 시대다." 이 한마디는 손정의의 인생 항로를 완전히 결정지었다. 미국 UC버클리 유학 시절, 과학 잡지에서 인텔의 마이크로칩(CPU) 확대 사진을 본 그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정보 혁명'의 거대한 해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손정의는 1981년 소프트뱅크를 창업한다. 귤 상자 위에 올라서서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앞에 두고 "우리 회사는 5년 뒤 100억 엔, 10년 뒤 500억 엔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사자후를 토하던 청년은, 모두가 그를 미치광이 취급했을 때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는 평생을 자신의 뿌리에 당당했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법무성이 "일본에는 '손(孫)'이라는 성씨가 없으니 통명을 쓰라"고 강요하자, 아내의 성을 먼저 '손'으로 바꾸는 기지를 발휘해 기어코 자신의 본래 성씨를 관철해 냈다. 굴복이 아닌 정면 돌파였다. "손(孫)이라는 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귀화할 이유가 없다"는 그의 고집은, 자신을 멸시했던 주류 사회에 대한 통쾌한 반격이었다.
소프트뱅크가 도요타를 꺾고 일본 열도의 정점에 선 장면은 그 모든 서사의 완결판이다. 일본 경제가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의 수렁에 빠져 변화를 두려워하며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고 있을 때, 지쿠호 탄광의 흙먼지를 마시며 자라난 이방인은 혁신의 최전선에서 단 한 번도 안주한 적이 없었다. 차별을 피하지 않고 오직 압도적인 실력과 비전으로 세상을 굴복시킨 손정의. 그의 시가총액 1위 등극은 전통 제조업 시대의 황혼과 AI 패러다임의 찬란한 여명을 알리는 경제적 이정표이자, 무허가 판자촌 돼지우리에서 시작된 한 자이니치 가문의 피 끓는 투쟁이 마침내 역사를 이겨낸 위대한 승리극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