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이 바꾼 글로벌 투자 지형
깊어지는 개발도상국 소외 골짜기
깊어지는 개발도상국 소외 골짜기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 열풍이 글로벌 자금 흐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지난해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을 가까스로 회복했으나 인프라와 첨단 기술을 선점한 일부 선진국으로 자금이 쏠리는 양극화 현상은 한층 심화했다. 전통 제조업 중심인 개발도상국 투자가 위축되면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가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가 주도한 자금 회복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간한 세계투자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세계 FDI는 전년보다 6% 늘어난 1조 6240억 달러(약 2445조 원)를 기록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의 1조 5000억 달러(약 2259조 원) 안팎을 웃도는 수치로 완연한 회복세다.
이 자금 지형 변화는 반도체와 배터리를 축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진입한 한국 기업의 투자 전략에도 직접 변수가 됐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지난 8일(현지시각) 발표한 조사에서도 무형자산 투자가 사상 처음으로 10조 달러(약 1경 5060조 원)를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같은 무형 투자는 조사 대상국 국내총생산(GDP)의 13%에 이르며 유형 투자보다 3배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AI 인프라 투자가 무형자산 폭증을 견인하며 투자 수익의 중심이 유형에서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조금 장벽에 가로막혀 갈 곳 잃은 개도국
문제는 자금 흐름의 극심한 편중이다. 지난해 미국은 2770억 달러(약 417조 원)를 유치해 세계 최대 투자 유치국 자리를 지켰다. 상위 20개국이 전 세계 투자액의 80% 이상을 독식했다.
AI 인프라는 막대한 전력 공급력, 고도로 숙련된 인재, 대규모 정부 보조금 삼박자가 맞는 선진국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개도국은 유인책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미국이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수천억 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하며 자금을 빨아들인 결과다. 선진국의 보조금 규모는 2016년 190억 달러(약 28조 원)에서 최근 1740억 달러(약 262조 원)로 9배 이상 치솟았다. 연간 글로벌 FDI 증가분을 웃도는 수준의 정책 자금이 특정 산업에 집중되는 셈이다.
선진국들이 경제 안보를 이유로 투자심사 제도를 확대하면서 장벽은 더 높아졌다. 지난 10년간 투자심사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21개국에서 52개국으로 늘었다. 결국 노동집약형 전통 제조업에 의존해 온 개도국의 투자 기반은 빠르게 잠식됐다. 저소득국의 제조업 투자 규모는 수년 새 70%나 폭락하며 고용 창출과 수출 기반 약화라는 치명상을 입었다.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3대 체크포인트
글로벌 자금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 투자 타이밍과 리스크를 가르는 핵심 신호는 세 가지다.
첫째,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설비투자(CAPEX) 추이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핵심 기업의 CAPEX 증가율이 둔화하는 시점이 1차 인프라 사이클의 피크 신호다. 이후 소프트웨어 중심의 2차 무형자산 투자로 전환되는 속도를 계량화해야 한다. 반도체 부문에서 수혜를 보면서도 대규모 투자 부담을 안고 있는 국내 반도체·정보기술(IT) 기업들에 직접 이정표가 된다.
둘째, 선진국 안보 심사의 물리적 소요 기간이다. 심사 승인 거부율 자체는 1% 미만으로 낮지만, 대중국 견제 등으로 심사 기간이 평균 6개월에서 12개월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프로젝트의 내부수익률(IRR)에 직접 타격을 준다.
셋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국가별 제소 건수 추이다. 지난해 발생한 투자 분쟁의 80%가 개도국을 상대로 제기됐다.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개도국의 핵심 광물 채굴에 투자하는 배터리와 소재 기업들은 제소 급증국을 사실상 '투자 프리미엄 할인' 대상으로 분류하고 법적 안정성을 재평가해야 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