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버넘의 총리 취임은 영국의 국정 패러다임이 런던 시티(City of London) 중심의 금융 패권에서 벗어나 지방 분권과 실물경제 재건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중은 그를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 부른다. 판타지 드라마의 수식어를 빌려온 이 칭호는 단순한 미디어용 흥미성 타이틀이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극심한 경제적 불균형, 금융자본 위주의 기득권 체제 그리고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에 맞서 싸워온 한 정치인의 처절한 투쟁사가 응축된 결정체다. 앤디 버넘은 1970년 잉글랜드 북서부의 대표적 산업도시 리버풀의 노동자 계급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은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영국 북부의 제조업이 해체되고 지역 경제가 급격히 몰락하던 비극적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쇠퇴하는 공장 지대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삶을 목격하며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국의 계급 격차와 지역적 불평등을 피부로 체감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한 이후 그가 경험한 충격은 더욱 컸다. 런던과 남부 출신의 엘리트 기득권층이 주류를 이루던 캠퍼스에서 버넘은 북부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묘한 소외감을 느꼈으며, 이는 그에게 런던 중심의 엘리트 정치를 깨뜨려야 한다는 강력한 문제의식을 심어주었다. 대학 졸업 후 노동당 당직자로 정계에 발을 들인 그는 2001년 리(Leigh)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여정을 시작했다. 고든 브라운 내각에서 문화부 장관, 보건부 장관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엘리트 정치인의 코스를 밟는 듯했다. 중앙정부의 핵심부에서 목격한 웨스트민스터(영국 의회) 정치는 현장과 철저히 분리된 관료주의의 성채에 불과했다. 2017년 버넘은 당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앙정치의 기득권을 내려놓은 채 대머체스터 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파격적 선택을 감행했다. 중앙의 법안 제정보다 지방의 현장을 바꾸는 행정이 국민의 삶을 더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 선택은 그의 정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시장 재임 시절 그의 최대 치적은 40년 만에 단행한 대중교통의 공공 통제권 회복이다. 대처 정부 시절 민영화된 대머체스터의 버스 시스템은 민간 사업자들의 이윤 추구로 인해 노선 폐지, 요금 인상 등 시민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있었다. 버넘은 민간 운송업체들의 거센 법적 대응과 반발을 물리치고 버스 운영 권한을 광역시정부로 회수하는 '비 네트워크(Bee Network)' 개혁을 완수했다. 통합 요금제와 노선 재조정을 통해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 이 개혁은 영국 전역에서 지방자치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았다. '북부의 왕'이라는 별칭이 세계적으로 각인된 계기는 2020년 10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보리스 존슨 정부와의 충돌이었다. 중앙정부는 북부 지역에 일방적으로 최고 단계의 봉쇄령(Tier 3)을 내리려고 시도했다. 버넘은 런던의 중앙 관료들이 지방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생계 대책 없이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한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그는 거리로 나와 길거리 기자회견을 열고 "충분한 재정 보상 없는 일방적 봉쇄는 북부 주민들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행위"라면서 중앙정부의 폭주를 정면으로 저지했다. 런던의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사수한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의 대중과 언론은 그를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런던 중심주의에 맞서는 '북부의 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앤디 버넘 총리가 이끌 영국의 국정 방향은 '맨체스터주의(Manchesterism)'의 전국적 확장으로 요약된다. 이는 중앙집권적 런던 관료주의를 해체하고, 지방정부에 실질적인 재정과 권한을 넘겨 국토 전체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대혁신이다. 버넘 정부는 광역시장(Metro Mayors)·지방정부에 주택 공급, 직업 훈련, 복지 예산의 집행 권한을 대폭 이양할 예정이다. 지방의 문제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가 해결해야 한다는 소신에 따른 조치다. 금융업 중심의 런던 경제 의존도를 낮추고, 북부·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친환경 에너지와 제조업 기반의 재산업화를 추진한다. 교통·에너지 등 사회적 필수 인프라에 대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공공성을 강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내수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방침이다. 기존의 단순 최저가 입찰 제도를 전면 개편해 공공계약 체결 시 지역사회 기여도, 지역 주민 고용률, 국내 산업 육성 효과를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이는 공공 재정이 지역 경제의 선순환 고리로 작용하도록 유도하는 조치다.
그동안 영국의 경제정책은 런던 금융시장의 활성화가 전 국토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버넘의 등장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중앙집권적 경제 모델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선언한 것이다. 지방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찾고, 공공 인프라가 밑바탕이 되어 실물경제를 바닥에서부터 일으켜 세우는 '분수 효과'와 자치분권 정치가 새로운 국가 성장 전략으로 떠오른 것이다. 양복 대신 셔츠를 입고 현장을 누비며, 팔에 노동을 상징하는 일벌(Worker Bee) 문신을 새긴 이 새로운 총리가 이끄는 영국이 중앙집권의 그늘을 벗어나 대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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