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나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막판 고위급 담판 테이블에서 허리펑은 시진핑의 눈과 귀이자 입으로 움직인다. 그는 시진핑의 머릿속에 있는 '안보 중심 자립 경제'의 마지노선을 철저히 수호하면서도, 미국의 초고율 관세 폭탄과 디커플링 공세를 완화해 낼 최소한의 숨통을 트는 최전선 조율사다. 정상 간의 악수가 이뤄지기까지 모든 지뢰밭을 걷어내고 실질적인 손익을 확정 짓는 '그림자 사령관', 그것이 오늘날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글로벌 지정학적 무대에서 허리펑이 맡고 있는 결정적 배역이다.
허리펑은 철저히 당의 규율과 국가 주도 경제 노선에 뼈를 묻은 '원칙주의 실행가'다.허리펑은 유려한 언변으로 서방을 달래기보다, 중국이 쥐고 있는 핵심 광물과 거대 제조 역량이라는 물리적 지렛대를 지렛대 삼아 버티는 강경한 협상 태도를 취한다.미국 고위 관료들이 허리펑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하는 것은 한 관료 개인의 유연성이 아니라, 시진핑 1인 지배 체제의 완고한 철학 그 자체다. 허리펑의 발언 하나, 서명 하나는 곧바로 시진핑의 직접적인 재가를 의미하기에, 그의 존재감은 미·중 정상회담의 사전 정지 작업에서 전임자보다 훨씬 더 무겁고 절대적이다.
푸젠(福建)의 40년 맹약
시진핑-허리핑의 운명적 결합은 1985년 시진핑이 베이징에서 샤먼시 부시장으로 내려왔을 때 시작되었다. 당시 샤먼시 재정국 부국장이었던 허리펑은 관용 숙소 생활을 시진핑과 함께하며 고락을 나눴다. 시진핑이 펑리위안(彭麗媛)과 검소하게 치른 결혼식 피로연에 초대받은 극소수의 관료 중 한 명이 바로 허리펑이었다. 이후 시진핑이 푸저우시 당서기, 푸젠성 성장을 거치며 권력의 사다리를 오르는 20여 년 동안, 허리펑은 샤먼시 재정국장, 시 부시장, 취안저우시 당서기, 푸저우시 당서기, 샤먼시 당서기 등 푸젠성의 핵심 요직을 도맡아 시진핑의 정책을 현장에 안착시켰다. 이 기나긴 세월 동안 축적된 신뢰는 단순한 관료적 충성을 넘어, 최고 지도자의 의중을 말없이도 읽어내는 텔레파시 수준의 정책적 일체감으로 승화되었다.
허대포(何大炮)'와 불도저식 인프라 드라이브
지방 행정가 시절 허리펑의 트레이드마크는 공격적인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거침없는 토목공사 추진력이었다. '허다파오(何大炮·허대포)'라는 그의 별명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도시 외형을 단기간에 탈바꿈시키는 그의 저돌적인 개발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2009년 톈진시 당위원회 부서기 겸 빈하이신구(濱海新區) 관리위원회 주임으로 부임했을 때 그의 공격적인 개발 수완은 정점에 달했다. 상하이 푸둥신구에 필적하는 북방 경제 허브를 표방한 빈하이신구에서, 허리펑은 은행 대출과 지방정부 융자기구(LGFV)를 풀가동해 마천루와 고속철도망, 산업단지를 단기간에 건설했다.이러한 불도저식 추진력은 단기적인 GDP 성장률을 견인하며 시진핑의 치적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무기가 되었다. 비록 훗날 유령 도시 논란과 막대한 부채라는 그림자를 남겼지만, 최고 지도부의 정치적 구상을 행정 현장에서 거침없이 돌파해내는 그의 실행력은 권력의 정점에서 그를 대체 불가능한 인물로 각인시켰다.
시코노믹스'의 제도화
2023년 국무원 부총리 취임 이후 허리펑의 위상은 전임자 류허의 권한을 훌쩍 넘어섰다. 그는 경제 총괄 부총리직에 머물지 않고 당 중앙재경위원회 판공실 주임, 중앙금융위원회 판공실 주임, 그리고 당 중앙금융공작위원회 서기직을 모두 한 몸에 틀어쥐었다.국무원 부총리가 당(黨)의 최고 금융 감독 기구의 서기를 겸임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권력 집중이다. 이는 형식상 리창(李强) 총리의 내각에 속해 있으면서도, 실질적인 거시경제 운용과 금융 시스템 통제에 있어서는 시진핑의 직속 대리인으로서 막강한 독립적 전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책의 입안부터 자금 배분, 금융 사정(司正) 작업에 이르기까지 중국 경제의 모든 동맥이 허리펑이라는 단일 창구로 수렴된 셈이다.
허리펑의 경제 방정식
허리펑이 설계한 현재 중국 경제의 생존 전략은 서구식의 무차별적인 통화 완화나 현금성 소비 부양책이 아니다. 그는 단기적인 내수 진작책이 비생산적인 인플레이션과 재정 누수를 부른다고 판단하며, 국가의 모든 자원을 첨단 제조업에 집중하는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New Productive Forces)'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전기차, 리튬 배터리, 태양광으로 대표되는 '신 3대 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과 정책 금융을 집중 투입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싹쓸이한 전략이 바로 허리펑의 작품이다. 나아가 미국의 수출 통제에 맞서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기술, 산업용 로봇 등 핵심 원천기술의 완전한 국산화를 밀어붙이며 중국 경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기술 요새'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허리펑이 미국의 통상 압박에 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뒷배경 역시, 이미 세계 제조업 공급망의 대체 불가능한 허브로 자리 잡은 이 강력한 실물 산업 기반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허리펑이 짊어진 현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과거 그가 성장의 엔진으로 삼았던 방식들이 현재 중국 경제의 목을 조이는 뇌관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첫째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디플레이션 압력이다. 헝다와 비구이위안 등 거대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도산 이후, 허리펑은 화이트리스트 제도와 정책 자금을 가동하며 수습에 나섰으나 내수 시장의 소비 심리는 얼어붙어 있다.
둘째는 지방정부의 은성부채(숨은 빚) 위기다. 과거 허리펑이 톈진 등지에서 밀어붙였던 인프라 드라이브의 이면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십조 위안의 부채가 누적되어 있다. 이를 질서 있게 구조조정하지 못한다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용 경색으로 번질 위험이 상존한다.
셋째는 글로벌 과잉 생산(Overcapacity)에 따른 전 세계적 통상 마찰이다. 내수가 소화하지 못하는 막대한 첨단 공산품이 헐값으로 전 세계에 쏟아져 나오자,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심지어 신흥국들까지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산 제품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허리펑은 시진핑 1인 지배 체제에서 국가 자본주의 노선의 정점에 오른 집행관이다. 최고 권력자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라는 이념적 청사진을 거대한 경제 플랜으로 구현해내는 추진력에 있어서 그를 넘어설 인물은 없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통상 포위망을 돌파해내는 외교적 담판과, 내부의 부동산·부채 위기를 수습하며 연착륙을 달성해야 하는 이중의 난제가 그의 두 어깨 위에 놓여 있다. 시진핑의 가장 오랜 벗이자 충직한 책사인 허리펑의 정책적 선택에 15억 중국 경제의 명운과 시진핑 3기 체제의 성패가 걸려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