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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할리우드 천하통일 데이비드 엘리슨...오라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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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할리우드 천하통일 데이비드 엘리슨...오라클의 그림자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최대주주/ 사진=엘리슨 이미지 확대보기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최대주주/ 사진=엘리슨
[김대호 인물] 할리우드 황태자 데이비드 엘리슨...파라마운트 천하통일

파라마운트와 워너를 집어삼킨 새 황제 데이비드 엘리슨

세계 문화 산업의 심장부 할리우드가 전례 없는 지각변동을 맞이하고 있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워너 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와의 합병 추진 과정에서 미국 12개 주 법무장관과의 반독점 소송 합의를 이끌어내며, 총 기업가치 1,100억 달러에 달하는 매머드급 미디어 제국의 탄생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워너 브러더스의 유서 깊은 스튜디오와 HBO, CNN, 그리고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미국 시청률 1위 방송망 CBS가 단일 지붕 아래 결합하는 이 역사적 거래는, 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스튜디오 체제의 종언이자 미디어 패권의 단일화를 상징한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마저 긴장시키는 이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골리앗의 조종간을 쥔 인물은 다름 아닌 40대의 젊은 승부사,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이다.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 그리고 할리우드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리고 있다. 그는 세계적 테크 기업 오라클(Oracle)의 창업주이자 세계 최상위권 부호인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의 장남이다. '실리콘밸리의 해적'으로 불리며 냉혹한 M&A와 기술 독점으로 제국을 건설했던 래리 엘리슨의 막대한 자본과 기술적 배경이 아들의 손을 거쳐 할리우드의 심장부로 침투한 것이다. '빅테크의 자본을 등에 업은 금수저 상속인'이라는 세간의 손쉬운 꼬리표 뒤편에는 20여 년간 영화 산업의 최전선에서 흥행 공식을 집요하게 학습하고 체득한 노련한 제작자의 궤적이 숨어 있다.
파라마운트를 손에 넣은 데 이어 마침내 워너 브러더스마저 품에 안으려는 데이비드 엘리슨. 실리콘밸리의 기술 패권과 할리우드의 스토리텔링이 만나는 분기점에서 그는 어떻게 미디어 왕국의 새로운 패권자로 군림하게 되었을까? 1983년생인 데이비드 엘리슨은 유년기부터 기술 혁명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피부로 호흡하며 성장했다. 부친 래리 엘리슨은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의 절대 강자 오라클을 세워 천문학적인 부를 일구던 인물이었다. 무자비한 경쟁심과 화려한 사생활, 그리고 요트와 전투기를 수집하는 기행으로 유명했던 아버지의 그늘은 거대하고 짙었다.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전산학이나 경영학에 매달리지 않았다. 그가 청소년기부터 심취했던 분야는 창공과 스크린이었다. 10대 시절부터 조종간을 잡은 그는 공인 곡예비행사 자격을 취득했다.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급강하하고 회전하는 조종석 안에서 그는 공포를 통제하고 즉각적인 결단을 내리는 감각을 체득했다. 이 극한의 비행 경험은 훗날 그가 리스크가 극에 달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판돈을 던질 때 냉정을 유지하는 정신적 자산이 되었다. 남가주대학교(USC) 영화예술학부에 진학한 데이비드는 연출과 연기에 매료되었다. 대학이라는 상아탑은 그의 야망을 담아내기에 너무 좁았다. 그는 학업을 중도에 접고 영화 제작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2006년,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전투기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라파예트》(Flyboys)에 직접 주연 배우로 출연함과 동시에 자금을 조달했다. 실제 곡예비행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찍은 이 작품은 그러나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남겼다. 수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허공으로 날아갔고, 언론은 그를 "아버지의 돈을 탕진하는 또 한 명의 철없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치부했다. 그 뼈아픈 첫 실패는 데이비드 엘리슨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스크린 앞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가 아니라, 카메라 뒤편에서 자본과 인재를 조율하고 리스크를 정밀하게 분산하는 시스템 구축자로서의 '제작자(Producer)'가 자신의 길임을 자각한 것이다.

스카이댄스 미디어의 태동

스카이댄스 미디어를 설립하며 재기전에 나선 데이비드 엘리슨은 기존 할리우드 제작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감이나 예술적 직관에만 기대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의 DNA를 수혈받은 그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검증된 글로벌 프랜차이즈 IP(지식재산권)의 가치에 주목했다. 그의 전략적 돌파구는 당시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맺은 파트너십이었다. 파라마운트가 보유한 막강한 라이브러리와 제작 배급망을 활용하되,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자신이 유치한 사모펀드 자본과 지분 투자로 분담하는 '공동 파이낸싱' 모델을 택했다. 스튜디오의 재무적 리스크를 덜어주는 대가로 제작에 대한 발언권과 글로벌 수익 배분권을 확보한 것이다.
이 시기 데이비드 엘리슨의 눈에 들어온 결정적 파트너가 바로 톰 크루즈(Tom Cruise)였다. 두 사람의 조우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생산적인 파트너십 중 하나를 낳았다. 스카이댄스는 위기에 처했던 《미션 임파서블》 프랜차이즈를 부활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2011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을 시작으로 《로그네이션》, 《폴아웃》, 《데드 레코닝》에 이르기까지, 스카이댄스는 현실적인 스턴트 액션과 스케일을 결합하며 시리즈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이어 《스타트렉 다크니스》, 《월드워Z》,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 SF와 액션 블록버스터에 집중하며 스카이댄스는 실패를 모르는 흥행 제조기로 자리 잡았다.

데이비드 엘리슨은 단순한 자금 공급책이 아니라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시각효과(VFX), 세트장 안전,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에 치밀하게 관여하는 테크노크라트형 프로듀서로 진화해 있었다. 이러한 여정의 정점은 2022년 개봉한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이었다. 36년 만에 돌아온 속편의 제작을 밀어붙인 이가 바로 데이비드 엘리슨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붕괴되자 넷플릭스와 애플 등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이 영화를 수억 달러에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엘리슨과 톰 크루즈는 "이 영화는 스크린에서 상영되어야만 한다"며 극장 개봉을 고집했다. 결과는 전 세계 흥행 수익 15억 달러라는 경이적인 대성공이었다. 할리우드의 노스탤지어와 최첨단 항공 촬영 기술을 절묘하게 결합해 극장 산업의 부활을 알린 이 사건으로, 데이비드 엘리슨은 할리우드 기득권층으로부터 '진정한 메이저 플레이어'로 공인받았다.

세기의 연쇄 빅딜

파라마운트를 넘어 워너 브러더스까지스카이댄스의 성공 가도와 대조적으로 전통 미디어 공룡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케이블 TV 시청자의 이탈(코드커팅)과 스트리밍 플랫폼의 출혈 경쟁으로 재무 위기에 봉착한 파라마운트 글로벌을 두고 사모펀드와 빅테크들이 각축전을 벌였으나, 최종 승자는 데이비드 엘리슨이었다. 그는 레드버드 캐피털과 부친 래리 엘리슨의 막강한 자본을 결합해 파라마운트를 전격 흡수 합병하며 '뉴 파라마운트'의 수장에 올랐다. 하청 제작 파트너로 출발했던 청년이 14년 만에 본사의 최고 권좌를 차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엘리슨의 야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파라마운트의 깃발을 꽂자마자 곧바로 부채와 구조조정으로 흔들리던 워너 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를 위한 초대형 베팅에 나섰다.

1,100억 달러 규모의 이 초거대 합병은 독점 논란을 야기하며 12개 주 사법당국과 미국작가조합(WGA)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으나, 엘리슨은 노련한 협상력을 발휘했다. 향후 5년간 영화 제작에 15억 달러 투자, 연간 최소 30편 이상의 극장 영화 개봉 보장, 뉴스 조직인 CBS와 CNN의 보도 독립성을 위한 독립 편집위원회 설치 등 파격적인 양보안을 제시하며 반독점 합의를 이끌어냈다. 사모펀드의 단순 자산 매각식 인수와 달리, 그는 '콘텐츠 생산과 극장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규제 당국의 빗장을 풀어낸 것이다.

테크 하이브리드 제국의 탄생

오라클의 인프라와 콘텐츠의 결합 데이비드 엘리슨이 구축 중인 거대 미디어 연합체는 단순한 외형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레거시 미디어'가 '테크 하이브리드 미디어'로 진화하는 중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의 무기는 파라마운트와 워너가 보유한 방대한 IP 라이브러리(DC 코믹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스타트렉, 탑건, 미션 임파서블)에 부친 래리 엘리슨의 오라클이 보유한 최첨단 AI 및 클라우드 인프라를 이식하는 데 있다.제작 공정의 혁신: 오라클의 고성능 컴퓨팅 파워를 활용한 생성형 AI와 가상 제작(Virtual Production) 시스템을 구축해 특수효과(VFX)와 후반 작업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한다.통합 스트리밍 아키텍처: 파라마운트+와 맥스(Max)의 기술적 통합을 추진하며, 초개인화 AI 알고리즘과 클라우드 효율화를 통해 만성 적자를 기록하던 스트리밍 사업을 흑자 구조로 전환한다.

스카이댄스가 강점을 보여온 게임 개발 역량을 결합하여, 하나의 지식재산권을 실사 영화, TV 시리즈, 콘솔 게임,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무한 확장한다.결국 데이비드 엘리슨은 애플과 아마존 같은 빅테크 공룡들이 막대한 플랫폼 자본으로 영화 산업을 잠식하려는 시대에, 강력한 스튜디오와 지식재산권을 손에 쥔 채 기술력을 역으로 흡수하여 반격하는 새로운 방식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황태자'의 칭호를 벗고 새로운 세기의 거인으로서의 데이비드 엘리슨의 등장은 할리우드에 팽팽한 긴장감과 거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부친의 천문학적인 자금력을 등에 업었다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쇼비즈니스의 법칙은 냉혹하다. 대중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극장과 안방극장의 관객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막대한 자본도 한순간에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지난 20년간 피비린내 나는 박스오피스의 전쟁터에서 자신의 안목과 배짱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전투기 조종석에서 중력가속도를 견뎌내듯 참패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마침내 백년 전통의 파라마운트와 워너 브러더스를 한 손에 쥐는 지배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제 '오라클의 상속인'이라는 안전한 타이틀을 뒤로하고 전례 없는 미디어 제국의 설계자로 섰다.

실리콘밸리의 차가운 연산력과 할리우드의 뜨거운 상상력을 결합해 탄생할 그의 제국이 과연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황금기를 열 수 있을지, 전 세계 금융과 문화 산업이 그의 다음 결단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