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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젠슨황-최태원... 밴 플리트상(Van Fleet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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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젠슨황-최태원... 밴 플리트상(Van Fleet Award)

AI 동맹
젠슨황과 최태원 회장/사진=SK 하닉 제공  이미지 확대보기
젠슨황과 최태원 회장/사진=SK 하닉 제공
가죽 재킷과 데이터센터: AI 신(新)동맹과 한미 기술 패권의 미래

엔비디아 젠슨황이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한미 우호의 상징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밴 플리트 상(Van Fleet Award)’이 올해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에게 수여되었다. 젠슨황의 수상식에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에 이어 대를 이어 이 상을 수상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축하 연사로 나서 마이크를 잡았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70년 전 밴 플리트 장군이 전장에서 한미 동맹을 구축했다면, 오늘날 그 최전선에는 군복 대신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은 젠슨 황이 서 있다"고 일갈했다. 총검과 철모의 자리를 알고리즘과 반도체가 대신하고, 안보의 최전선이 38선에서 초거대 AI 데이터센터로 이동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선언이었다.

이 장면은 오늘날 한미 관계와 글로벌 산업 지형도가 맞이한 거대한 질적 전환을 웅변한다. 과거의 동맹이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자유와 주권을 지켜내는 방어적 군사 연대였다면, 2026년 오늘의 동맹은 인류 문명의 진화를 추동하는 연산 능력(Compute)과 데이터를 지켜내고 확장하는 기술·산업적 공존 동맹이다. 그리고 그 중심축에 바로 실리콘밸리의 설계 역량과 한국의 첨단 메모리 제조 기술이 결합한 불가분의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건배사에서 "엔비디아는 두뇌(Brain)를 설계하고, SK는 기억(Memory)을 만든다. 엔비디아가 번개처럼 빠르게 생각하면, SK는 그 기억이 절대 잊히지 않도록 보장한다." 이 건배사에는 현대 인공지능 컴퓨팅의 가장 치열한 병목(Bottleneck)과 그 해법이 담겨 있다. 아무리 뛰어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가속기가 존재한다 해도, 방대한 데이터를 초당 수 테라바이트 단위로 전달하고 기억해 내는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의 지능 폭발은 불가능하다. 엔비디아가 세계 AI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며 독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성능 메모리를 오차 없이 공급하며 '두뇌의 보폭'을 맞춰준 한국 반도체의 기술적 뒷받침이 있었다.

"젠슨이 무언가를 깜빡 잊어버릴 때마다, 그는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최 회장의 위트 넘치는 발언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공급망의 최정점에서 형성된 대체 불가능한 신뢰의 방증이다. 설계와 소프트웨어 스택(CUDA)에서 독보적인 해자를 구축한 빅테크 기업과, 초미세 공정과 첨단 패키징을 통해 물리적 한계를 돌파해 온 파운드리·메모리 제조사 간의 긴밀한 상호의존성은 이제 단순한 원청과 하청의 관계를 넘어섰다. 두 기업은 하나의 거대한 분산형 슈퍼컴퓨터를 함께 완성해 나가는 운명공동체로 묶여 있는 것이다.

이번 만남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른바 ‘젠슨의 법칙(Jensen’s Rule)’에 대한 언급이다. "더 많이 살수록, 더 많이 아낀다(The more you buy, the more you save)."이 역설적인 명제는 무어의 법칙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 포스트 실리콘 시대의 새로운 경제학을 함축한다. 과거에는 동일한 비용으로 트랜지스터의 집적도를 두 배씩 늘려왔다면, 이제는 가속 컴퓨팅을 전폭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와 물리적 공간, 그리고 연산 시간을 극적으로 단축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막대한 초기 설비투자(CAPEX)가 수반되지만,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국가는 AI 패권 경쟁에서 회복 불가능한 지체 현상을 겪게 된다는 냉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최 회장이 이 법칙을 긍정하며 "우리의 파트너십이 GPU 수요보다 훨씬 더 빠르게 확장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은, 향후 글로벌 테크 산업이 맞이할 ‘인프라 빅뱅’에 대한 확신에 기반한다. 일각에서는 AI 수익화 모델의 지연이나 설비투자 과잉에 대한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 현장의 최전선에서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이들은 전혀 다른 미래를 보고 있다. 전력망, 냉각 기술, 차세대 패키징, 그리고 초고성능 메모리가 결합된 AI 인프라는 향후 한 세대 동안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을 재편할 메가트렌드이기 때문이다.

밴 플리트 상은 그동안 양국의 외교관, 군인, 그리고 전통적인 정·재계 지도자들에게 주로 주어졌다. 그런 상이 세계 최고의 AI 칩 설계 기업의 수장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핵심 동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지정학적 갈등과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는 이미 전략 물자를 넘어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무기가 되었다. 미국의 혁신 역량과 한국의 초격차 제조 역량이 결합하지 않는다면 서방 진영의 공급망 안보는 단 하루도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즉, 한국의 반도체 공장과 연구소는 단순한 영리 기업의 생산 기지가 아니라, 자유주의 진영의 기술 주권을 수호하는 최전방 방어선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최 회장의 말처럼 70여 년 전 밴 플리트 장군이 포성과 피 속에서 맺었던 안보 협약은, 이제 실리콘밸리와 판교, 이천과 평택을 잇는 가치사슬로 진화했다. 과거 한국이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전후 복구와 산업화를 이루어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첨단 기술을 통해 미국 주도의 첨단 산업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대등하고 필수적인 전략적 파트너로 우뚝 섰다.

축배의 이면에는 엄혹한 과제 또한 가로놓여 있다. GPU 수요보다 더 빠른 파트너십의 확장을 꿈꾸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술적 초격차 유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은 영원하지 않으며, 글로벌 경쟁자들의 추격은 거세다. 빅테크 기업들 역시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칩 개발(ASIC)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