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와의 전쟁 "디젤 갤런당 6달러 마지노선"
이미지 확대보기지정학적 파고와 인플레이션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은 단연 유가다. 화물 트럭과 물류 네트워크, 기간산업의 핏줄인 경유(디젤) 가격이 갤런당 6.50달러를 넘어서며 민생 경제를 옥죄던 국면에서, 미국 에너지 행정의 수장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장관이 마침내 마이크를 잡았다. "경유 가격은 머지않아 갤런당 6달러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단순한 관료적 희망 섞인 관측이 아니다. 수압파쇄법(프래킹) 기술을 현장에서 직접 다루며 미국을 세계 최대 산유국 반열에 올려놓았던 야전 사령관 출신의 선언이다. 그는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라는 난제를 뚫고, 에너지 현실주의라는 자신의 평생 신념을 정책 무대에서 증명하려 하고 있다.
흙먼지 날리던 콜로라도 소년,
크리스 라이트는 콜로라도주 덴버의 유년 시절부터 자연과 과학에 매료되어 성장했다. 로키산맥의 웅장한 지형을 마주하며 유년을 보낸 그는 단순히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거대한 대지 아래 무엇이 묻혀 있고 그것이 인간의 문명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탐구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그의 학문적 뿌리는 철저히 순수 과학과 실용 공학에 닿아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 진학한 라이트는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열역학과 유체역학 등 공학의 본질적 기초를 다졌다.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 버클리)에서 전기공학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학문적 지평을 넓혔다.
상아탑에 안주할 수도 있었던 엘리트 공학도였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산업 현장의 최전선을 향해 있었다. 실험실의 이론이 현장의 파이프라인과 시추공에서 어떻게 물질적 가치로 치환되는지를 목격한 그는 1990년대 초 본격적으로 에너지 산업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셰일 혁명의 개척자: 피너클 테크놀로지스에서 리버티 에너지까지
라이트의 경력은 미국 '셰일 혁명'의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 그는 피너클 테크놀로지스(Pinnacle Technologies)를 설립했다. 피너클은 지하 수천 미터 아래 셰일 암반층을 파쇄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을 매핑(Mapping)하는 혁신적인 수압파쇄 모니터링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는 눈먼 시추 작업에 첨단 레이더를 달아준 격이었으며, 미국 전역의 셰일가스 및 셰일오일 붐을 기술적으로 촉발한 기폭제가 되었다.
피너클을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 2011년 그는 수압파쇄 서비스 전문 기업인 '리버티 에너지(Liberty Energy)'를 창업했다. 라이트는 경영 일선에서 안전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한 독자적 펌핑 장비와 전동식 프래킹 시스템을 도입하며 리버티를 북미 셰일 업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정장 차림으로 본사 회의실에만 머무는 경영자가 아니었다. 방화복과 안전모를 쓰고 텍사스의 퍼미언 분지와 노스다코타의 바켄 유전을 누비며 노동자들과 호흡했다. 2019년, 친환경 단체들이 프래킹에 사용되는 화학 용액의 유해성을 공격하자, 직접 카메라 앞에서 프래킹 첨가 용액을 마셔 보이는 기행을 펼친 일화는 그의 기술적 확신과 현장 중심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너지 현실주의'와 빈곤 퇴치
크리스 라이트를 지탱하는 철학적 기둥은 '에너지 휴머니즘(Energy Humanism)'과 '현실주의'다. 그는 에너지를 단순히 거래되는 상품이나 환경 규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에게 에너지는 인류를 절대적 빈곤과 질병, 기아로부터 구원한 가장 강력한 문명적 도구다.
그는 저개발국 수억 명의 인구가 여전히 나무와 가축 배설물을 태우며 실내 공기 오염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다. 값싸고 신뢰성 높은 화석연료와 원자력 기반의 에너지가 보급되지 않고서는 인류의 기본적 인권과 번영도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따라서 그는 급진적인 탄소중립이나 '기후 비상사태'라는 구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준비되지 않은 성급한 탈탄소 정책은 에너지 비용을 폭등시켜 결국 서민과 취약계층의 삶을 파괴한다는 경고다. "에너지 전환은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열역학 법칙과 경제학 원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그의 지론은 그를 환경론자들의 표적으로 만들었으나, 동시에 에너지 업계와 노동자 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트럼프와의 연대: '드릴, 베이비, 드릴'의 사령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인연은 이러한 이념적 교집합에서 싹텄다. 트럼프의 핵심 경제 공약인 '에너지 패권(Energy Dominance)'과 규제 완화, 전통적 에너지 생산 확대('Drill, baby, drill') 정책을 이론과 실무 양면에서 완벽히 실행할 적임자로 라이트가 낙점된 것이다.
라이트는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 캠프에 현실적인 에너지 정책 로드맵을 제공하며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트럼프는 관료주의적 관성에 물들지 않은, 현장을 속속들이 아는 실물 경제인을 원했고, 거침없는 언변과 확고한 데이터로 무장한 라이트는 이에 부합하는 최적의 카드였다.
특히 대외 정책과 맞물린 에너지 전략에서 라이트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을 비롯한 적대적 지정학 세력에 대한 강경 압박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가격 통제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중대 과제다. 라이트는 이란과의 갈등 국면 이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단기적 유가 상승 충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대중에게 명확히 전달하며, 국가 안보적 결단과 에너지 정책의 호흡을 일치시키는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약 없는 생산과 실용적 다변화
에너지부 장관으로서 라이트의 정책 기조는 명료하다. 첫째, 연방 토지 및 해역 시추 인허가 규제를 전면 완화하여 미국 내 석유 및 가스 생산 능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둘째,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 승인을 신속화하여 동맹국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미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기술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과 차세대 소형 모듈 원자로(SMR), 심부 지열 발전에 대해서는 막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즉, 화석연료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대신 공급을 극대화하되, 기술 혁신을 통해 환경적 영향을 줄여나가는 실용적 다변화 노선을 걷고 있다.
"갤런당 6달러 밑으로"
현재 라이트 장관 앞에 놓인 최대 시험대는 단연 '경윳값 잡기'다. 농업용 트랙터부터 고속도로 화물 운송, 중공업 기계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을 움직이는 경유 가격의 안정이 곧 물가 안정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가 "머지않아 갤런당 6달러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자신한 배경에는 치밀한 수급 분석이 자리한다. 주요 7개국(G7)의 비축유 1억 배럴 방출 공조, 유럽 비축량의 탄력적 시장 공급, 그리고 미국 내 정유 공장 가동률 제고와 가을철 계절적 수요 둔화라는 삼박자가 맞물리고 있다는 계산이다.
향후 국제유가 전망에 대해 라이트는 단기적인 지정학적 프리미엄(이란 긴장,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 러시아 공급 차질)은 불가피하나,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측면의 복원력이 가격을 하향 안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한 비(非)OPEC 산유국들의 증산 여력이 충분하며, 수급 불균형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글로벌 원유 시장은 정밀한 시계장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중동의 군사적 충돌이 확대되거나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가 일어날 경우, 비축유 방출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또한 기후 위기를 우려하는 국내외 여론과 민주당 진영의 거센 반발을 조율해야 하는 정치적 무게감도 크다.
대지 위에 발을 딛고 선 에너지 사령관
크리스 라이트는 현장 엔지니어의 냉철한 계산과 문명사적 비전을 동시에 품은 독특한 관료다. 그는 유가라는 수치가 미국 서민 가정의 식탁 물가와 직결되어 있음을 뼛속 깊이 알고 있다.
"경유 가격을 잡겠다"는 그의 선언은 단순히 갤런당 몇십 센트의 숫자를 내리겠다는 기술적 약속이 아니다. 기술과 생산의 힘으로 지정학적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선언이자, 문명의 혈액인 에너지를 국민에게 가장 합리적인 비용으로 공급하겠다는 에너지 현실주의자의 결기다. 콜로라도의 거친 암반을 뚫어냈던 공학도가 이제 워싱턴의 복잡한 정치경제학 한가운데서 글로벌 유가 안정이라는 거대한 유정을 파내려 가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