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출산 선택이 개인 결정에 영향…저출생이 다시 저출생 부를 수 있어
롯데·TSMC 가족친화 환경은 반대 사례…“아이를 보이게 해야”
롯데·TSMC 가족친화 환경은 반대 사례…“아이를 보이게 해야”
이미지 확대보기세계 각국의 출산율 하락을 경제적 부담이나 주거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주변 사람들의 선택과 사회적 규범이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사회적 전염’ 효과도 살펴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각) 낸 심층기획 기사에서 최근 5년간 저출생 문제를 들여다본 결과 출산율 하락을 증폭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사회적 네트워크 효과를 주목했다.
이번 기획을 한 카밀라 카벤디시 FT 칼럼니스트는 “세계 3분의 2가 넘는 국가의 출산율이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여성 1명당 2.1명 아래로 떨어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FT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부양 자녀가 있는 가정의 절반이 외동자녀 가구다. 영국에서는 그 비중이 45%에 이르고 세 자녀 이상을 둔 가구는 14%에 그친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인도 타밀나두의 출산율도 독일보다 낮아졌고 멕시코는 미국보다 낮아졌다. 미국에서도 외동자녀 가구가 두 자녀 가구보다 많아졌다.
FT도 청년층의 연애·결혼 감소, 집값 부담, 경제적 불안정,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 등이 출산율 하락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카벤디시는 여기에다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까지 결합하면서 저출생이 스스로를 강화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주변 사람이 아이 낳으면 나도 출산 가능성 높아져
사람이 주변 집단의 행동을 따라가는 성향이 출산에도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근거로 제시됐다.
당시 인기 드라마에는 자녀가 적거나 없는 도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다. 1960년 브라질 여성의 평균 자녀 수는 6명을 조금 넘었지만 40년 뒤에는 2명을 조금 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드라마 속 여성 등장인물과 나이가 비슷해 강하게 동일시한 여성 시청자들에게서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났다는 얘기다.
직장 동료의 출산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0년 스웨덴 연구에서는 비슷한 직급의 동료가 아이를 낳은 여성의 출산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직급 동료의 출산에서는 같은 효과가 발견되지 않았다.
독일 기업 6500곳을 분석한 별도 연구에서는 직장 동료가 아이를 낳은 이후 여성 직원이 첫 임신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약 두 배로 높아졌으며 영향은 약 2년간 지속됐다.
친구가 부모가 됐을 때 부부의 자녀 출산 의향이 강해진다는 연구도 있다.
연구자들은 주변에서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접하면 부모가 되는 일이 덜 낯설어지고, 또래 집단의 사회적 규범도 출산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아이 없는 사회가 다시 아이 없는 선택 강화
반대 방향의 효과도 가능하다는 게 카벤디시의 분석이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주변에서 아이를 보기 어려워질수록 자녀가 없는 생활이 사회적 표준처럼 자리 잡고, 다시 다음 세대의 출산 의향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베가르드 스키르베크, 볼프강 루츠, 마리아 리타 테스타가 2006년 제시한 ‘저출산의 덫’ 가설도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한다.
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다음 세대 자체가 작아지고,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 것이 점차 일반적인 사회 규범으로 굳어져 반등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FT는 실제로 여성 1명당 출산율이 2명보다 크게 낮아진 뒤 다시 그 수준 가까이 회복한 국가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경우 출산율이 2024년 0.75명에서 2025년 0.8명으로 소폭 상승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지속적인 반등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FT는 평가했다.
가족을 시작하는 시기가 늦어지는 것도 여러 자녀를 낳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유럽의 평균 첫 출산 연령은 여성 31세, 남성 34세다. 1975년에는 각각 26세와 30세였다.
◇ SNS도 새로운 출산 규범 형성
소셜미디어의 확산도 출산과 육아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안나 로트키르흐 핀란드 인구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 15년 동안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모성을 희생으로 바라보는 담론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젊은 층이 실제 가족과 주변 사람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서 만나는 유명인과 콘텐츠를 통해 출산에 대한 신호를 받는다는 것이다.
카벤디시는 아이가 사회에서 점차 눈에 덜 띄게 되면서 아이들의 소음과 행동에 대한 사회적 관용도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는 거리 등을 표시해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이용자 참여형 지도가 등장했고, 프랑스 파리 교외에서는 주민들의 소음 민원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이 폐쇄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은 가족 규모가 작아지고 친족 관계가 줄어들수록 가족이 사회적 역할을 떠받치는 능력도 약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롯데·TSMC는 반대 사례
FT는 사회적 네트워크 효과를 역으로 활용해 출산과 육아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사례로 한국의 롯데와 대만 TSMC를 들었다.
TSMC 직원은 대만 전체 인구의 약 0.3%에 불과하지만 2023년 대만에서 태어난 아기의 부모 가운데 TSMC 직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달했다.
TSMC 본사가 있는 신주현은 근로연령 인구 100명당 아동 수가 대만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FT는 TSMC가 사업장에 장시간 이용할 수 있는 보육시설을 마련하고 각 캠퍼스에 유치원을 운영해 직장에서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롯데도 가족친화적 기업문화의 사례로 소개됐다.
FT는 롯데의 사내 출생 지표가 2.05에 이르며 한국 전체 수준보다 크게 높다고 전했다. 롯데는 약 6만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남성 직원이 최소 한 달간 유급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 강력한 육아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산간마을 나기도 비슷한 사례다.
인구 감소로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통합할 위기에 처하자 출산장려금, 보육 지원, 어린이 의료비 지원을 확대하고 고령 주민들까지 육아를 돕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었다.
일본 전체에서는 외동자녀 가구가 절반가량이지만 나기에서는 세 자녀 이상을 둔 가구가 47%에 이른다.
카벤디시는 이러한 사례들이 출산율 하락을 경제적 지원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습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하고 부모가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저출생의 악순환을 끊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