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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리사 쿡 "트럼프와의 전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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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리사 쿡 "트럼프와의 전면전"

리사 쿡 연준 이사/사진=뉴시스  이미지 확대보기
리사 쿡 연준 이사/사진=뉴시스
[김대호의 인물 오디세이]

백악관과 미국 연준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리사 수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워싱턴 정가와 월스트리트의 시선이 집중된 교전의 최전선에는 한 흑인 여성 경제학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그가 바로 리사 쿡(Lisa D. Cook) 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어이 리사 쿡 이사에 대한 해임 절차를 재가동했다.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충분한 소명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제동이 걸렸음에도, 백악관에 전담 조사위원회를 전격 설치하고 비공개 청문회를 열어 해임의 명분을 완성하겠다고 벼르고 있다.리사 수에 대한 표면적인 혐의는 연준 합류 전 주택담보대출 서류에서의 허위 기재 의혹이다.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도덕성 시비나 행정 절차의 공방으로 읽는다면 그것은 워싱턴 권력 투쟁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리사 쿡은 지금 트럼프식 통화 포퓰리즘과 중앙은행의 100여년 독립성이 벌이는 가장 처절한 대리전의 최전방에 서 있다.

백악관의 칼날이 겨눈 '약한 고리' 트럼프는 왜 하필 리사 쿡을 지목했는가. 연준 이사회라는 거대한 철옹성을 허물기 위해 그가 찾아낸 가장 계산된 '약한 고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리사 쿡은 2022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연준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 이사라는 상징성을 안고 입성했다.
스펠만 칼리지와 옥스퍼드를 거쳐 UC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개발·거시경제학자이자, 소수자의 권리와 혁신 경제를 천명해 온 민주당 진영의 대표적 학자다.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보수 백인 노동자 계층과 공화당 강경파 시각에서 리사 쿡은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의 정점이며, 워싱턴 기득권 관료주의의 산물로 각인되어 있다.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을 직접 파면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메가톤급 충격을 줄 수 있는 데다 법적 명분도 턱없이 부족하다. 쿡 이사는 이사 취임 전 개인적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불거진 서류상 흠결이라는 사법적 꼬투리가 잡혔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공직자를 법에 따라 징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연준의 철옹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표적인 셈이다.

'모기지 사기' 프레임 뒤에 숨은 금리 인하 압박 백악관 조사위원회가 조사한다는 모기지 서류 허위 기재 혐의는 실상 핑계에 가깝다. 쿡 이사 측 변호인단의 주장대로 단순한 행정적 부주의나 오기에 불과한 사안을 두고, 대통령이 직접 조사위원회까지 꾸려 축출을 강행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연준의 금리 결정권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 인상과 감세를 주축으로 한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재발을 우려한 연준이 신중한 통화 기조를 고수하자 백악관의 조바심은 분노로 변질되었다.

"대통령의 명령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연준"을 향한 트럼프의 분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방준비제도법상 이사는 임기가 엄격히 보장되며, 오직 '정당한 사유(for cause)'가 있을 때만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다. 이 법적 방패막이야말로 정치 권력이 선거철마다 돈을 찍어내거나 금리를 억지로 낮추지 못하게 막아온 현대 자본주의의 주춧돌이다. 트럼프는 리사 쿡을 축출함으로써 이 방패막이를 깨부수려 한다. 쿡 한 사람을 몰아내고 충성파 인사를 앉힌다면 연준 내 표결 구도를 흔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월 의장을 비롯한 다른 이사들에게도 "누구든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면 옷을 벗을 수 있다"는 강력한 심리적 공포를 주입할 수 있다.

대법원이 쿡 이사의 손을 들어주었던 결정은 미국 헌정사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지켜낸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법원이 "충분한 반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절차적 하자를 지적하자,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을 포함한 백악관 조사위를 꾸려 형식적 청문회를 연 뒤 '적법 절차를 밟은 해임'이라는 외피를 씌우려 하고 있다. 행정부가 중앙은행 이사를 조사위원회에 세워 청문회를 진행한다는 발상 자체가 전례가 드문 초유의 일이다. 이는 삼권분립과 권력 제한이라는 미국 헌법 정신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다.
백악관이 임의로 징계위원회를 꾸려 독립기구의 수장을 심문할 수 있다면, 향후 연준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춤추는 행정부의 하부 부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쿡 이사 측이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닌 공정한 절차인지 따져보고 출석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것도 이 때문이다. 문명사적 시험대에 오른 통화 권력리사 쿡이라는 인물은 이제 한 명의 이코노미스트를 넘어, 법치주의와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제도가 권위주의적 정치 권력의 파도에 맞서 버텨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었다.

역사는 정치가 중앙은행을 굴복시켰을 때 어떤 참극이 빚어졌는지를 똑똑히 기억한다. 리처드 닉슨의 압박에 굴복해 금리를 낮췄다가 1970년대 대인플레이션을 촉발했던 아서 번즈 의장의 연준이 대표적이다. 트럼프가 리사 쿡을 흔드는 작금의 광경은 반세기 전의 그 위험천만한 유령을 다시 워싱턴으로 불러들이는 일과 다름없다. 리사 쿡은 백악관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자신의 직무와 헌법적 권리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의 눈엣가시가 된 그녀의 투쟁은, 단지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소송전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가 자본의 논리와 경제의 합리성을 집어삼키려는 시대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마지막 방파제를 지켜내기 위한 고독한 오디세이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이 기괴하고도 치열한 결투의 결말을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