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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브라질 대통령 룰라-보우소나루 "운명의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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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브라질 대통령 룰라-보우소나루 "운명의 승부"

룰라 브라질 대통령/ 사진=브라질 대통령실이미지 확대보기
룰라 브라질 대통령/ 사진=브라질 대통령실
브라질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4선에 도전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장남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맞붙는다. 4년 전 룰라와 보우소나루가 벌였던 승부가 아들로 대를 바꿔 재연되는 셈이다. 지난 4일 1차 투표에서는 플라비우가 47.03%를 얻어 45.16%에 그친 룰라를 1.87%포인트 차로 앞섰다. 여론조사 선두였던 현직 대통령이 1차에서 2위로 밀린 것은 처음이다. 결선을 앞둔 최근 조사들도 대부분 오차범위 안의 접전을 가리키고 있다.

룰라의 생애는 그 자체로 브라질 현대사다. 1945년 북동부 페르남부쿠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상파울루로 이주해 구두닦이와 행상을 거쳐 금속 노동자가 됐다. 공장 사고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은 그는 1970년대 후반 금속노조 위원장으로서 군사정권에 맞선 대규모 파업을 이끌며 전국적 인물로 떠올랐다. 1980년 노동자당 창당을 주도했고, 세 번의 대선 낙선 끝에 2002년 대통령에 올라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빈곤층 현금지원 프로그램 '보우사 파밀리아'와 원자재 호황에 힘입은 성장으로 퇴임 당시 지지율은 80%를 넘었다.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권 중 여당의 의원 매수 스캔들 '멘살랑'이 터졌고, 퇴임 후에는 대형 부패수사 '라바 자투(세차 작전)'의 칼날이 그를 겨눴다. 2017년 부패·돈세탁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2018년 4월부터 약 580일간 수감됐고, 그해 대선 출마도 좌절됐다. 반전은 2021년에 찾아왔다. 연방대법원이 재판 관할 문제와 담당 판사 세르지우 모루의 편파성을 인정해 유죄 판결을 무효화한 것이다. 정치적 권리를 되찾은 룰라는 2022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를 50.9% 대 49.1%라는 역대 최소 격차로 꺾고 대통령궁에 복귀했다.

브라질 헌법은 대통령의 연속 재임을 두 번까지만 허용하지만, 한 차례 쉬었다가 다시 출마하는 것은 막지 않는다. 12년 공백 끝에 복귀한 룰라의 이번 도전이 합법인 이유다. 당선되면 브라질 최초의 4선 대통령이 되지만, 81세를 앞둔 고령과 국민 절반가량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토 여론은 그가 넘어야 할 벽이다. 룰라 스스로도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고 공언했다.
이번 선거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사법'이다. 브라질 정치에서 선거 패배는 종종 법정으로 이어졌다. 룰라 자신이 퇴임 후 수감됐고,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27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플라비우는 당선되면 아버지를 사면하겠다고 공약했다. 그 역시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은행가로부터 아버지를 다룬 영화 제작비 명목으로 6,100만 헤알을 받은 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결선 TV토론은 이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룰라는 플라비우에게 25일 이후 면책특권을 잃고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플라비우는 룰라의 아들을 둘러싼 의혹과 과거 '룰라 연구소' 뇌물 혐의를 꺼내 들며 맞섰다. 현직 대통령이 상대 후보에게 수사를 예고한 장면을 두고 보수 진영에서는 '정치보복 예고'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다만 대선에서 진다고 현직 상원의원의 특권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룰라가 패배하면 그 역시 보복의 대상이 될까. 현재까지 보도된 바로는 룰라 본인을 겨냥해 진행 중인 형사 사건은 확인되지 않는다. 과거 라바 자투 판결도 이미 무효화됐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 새로운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까지 배제하기는 어렵다. 전직 대통령의 수사와 수감이 되풀이돼 온 브라질 정치사가 그 불안을 키운다. 승자가 패자를 법정에 세우고, 다음 선거에서 처지가 뒤바뀌는 악순환이 이어져 온 것이다.
결국 이번 결선은 단순히 좌우 정권의 교체 여부를 가르는 선거가 아니다. 승자가 패자를 법정으로 끌어내는 고리를 끊을 수 있느냐를 묻는 브라질 민주주의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사법이 정치의 도구가 되는 순간 법치는 승자의 전리품으로 전락한다. 누가 이기든 브라질에 필요한 것은 보복이 아니라 통합이다. 남미 최대국이 일요일 내릴 선택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