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4대 그룹이 진행중인 대미 투자 규모는 560억달러(약 78조90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됐다.
현대차그룹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전기차와 배터리, 도심항공교통(UAM), 자율주행 등을 중심으로 105억달러(약 14조9800억원)의 투자 계획을 전격 발표한 바 있으며, LG그룹은 대미 투자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주력 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서 GM, 혼다와의 합작 공장 설립은 물론 단독 공장 신설을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준비 중이다.
문제는 원·달러 환율이다. 연초 1160원대였던 환율은 꾸준히 올라 4월 1200원대를 돌파하더니 8월 말부터 급등세를 타고 있다. 8월초 1300원대 언저리에 있던 환율은 두 달도 안돼 1400원을 돌파했다. 급기야 지난 26일에는 1430원을 뚫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대미투자 과정에서 현지 인력·자재 조달 비용이 급증하고, 해외 주요 자회사에 대한 자금지원 부담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2030년까지 8년간 총 250조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이중 해외 투자가 70조원"이라며 "원래 (계획했던 해외투자 규모는) 50조원쯤이었는데, 환율이 올라 70조원이 됐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해 기존 투자규모보다 40% 가량 자금 부담이 커진 것이다.
이같은 환율 상승 부담에 따라 재계에서는 주요 그룹들이 각자 기업 상황에 따라 투자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신규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을 진행중인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영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ARM 인수 가능성이 제기됐다. 영국 방문 전에 찾은 멕시코에서도 추가로 신규 반도체 공장 건립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계에선 삼성전자가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 설립을 제외한 신규 사업은 속도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ARM 인수 프로젝트 등의 경우 현재 확정된 계획이 아닌 만큼 시간을 두고 투자 여부와 시기, 규모를 정할 것이란 관측이다.
SK그룹은 당초 계획대로 대미 투자 속도를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은 지난 8월 최태원 회장이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뒤, 총 290억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 투자하는 기존 70억달러 규모 투자계획 외에 반도체·바이오·그린에너지 분야에 신규로 22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환율 급등으로 인해 SK그룹이 부담해야 할 투자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날 전망이다. 그럼에도 최 회장이 직접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을 통해 투자계획을 밝힌 만큼 당초 예정된 속도대로 투자될 것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현대차그룹은 오히려 대미투자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정부가 지난 8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나서면서 현대차그룹의 5대 권역 중 하나인 북미지역의 매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당초 2025년부터 운영하려 했던 조지아주 신규 자동차공장의 완공을 1년 앞당기고, 기존 기아차 현지공장의 라인도 일부 변경해 전기차를 현지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반면 LG그룹은 속도조절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LG그룹은 현재 주력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LG화학 등을 통해 2차전지 사업 분야와 관련한 대규모 대미 투자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공장 건설 과정에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기존 투자계획 및 일정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재계는 예상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