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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칼럼] 중국 요하 문명에서 고조선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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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칼럼] 중국 요하 문명에서 고조선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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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원구원 이사장
중국 중화사상은 황하 문명, 장강 문명에 걸친 문명들을 기반으로 하는 한(漢)족의 황제문화공동체를 역사의 시작으로 했다. 그 외 북방지역의 민족은 항상 동쪽의 오랑캐로 불렸다.

1984년 중국 요하강 우하량에서 여신상과 신전 제단, 벽화, 돌무덤(석총) 등이 발견되었다. 요하(遼河)는 동북지역 큰 강으로 허베이(河北), 내몽골(内蒙古), 지린(吉林)에 걸쳐있다.
중화사상으로 뭉친 한족들은 평소 오랑캐라고 무시했던 만리장성 북쪽과 동쪽에서 시대적으로 앞서고 문명적으로도 훨씬 발달한 문명들이 출토되면서, 중국의 사학자들은 당황했다.

중국은 근대개화기를 겪으면서 외세 침입과 약탈, 항일전쟁과 국공 내전, 광란의 문화대혁명 등의 참화로 인해, 고대사 유적과 유물은 물론, 엄청난 문화유산을 처절하게 파괴되었다.
중국은 중화사상으로 영토 욕심으로 인해 무너진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정리하면서, 이 민족들의 문명도 중국 문명으로 끌어들이고 중국 공식지도에도 편입시키는 등 분쟁을 자초한다.

중국 황하문명은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 문명에 비해 늦었지만,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이다. 중국은 과거 기존 홍산 문화를 몰아내고 독창적 언어·문자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4대 문명보다 수천 년 앞선 스메르 문명에 이어, 고고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요하문명(辽河文明)은 한족 역사관과 배치되지만, 중국은 눈물을 감추고 역사권에 편입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중국은 요하문명이 발견되면서 1개 집단에서 염제 신농씨 화족과 산동반도 동이족과 남부를 하족, 요동·요서를 황제족으로 하는 3대 집단으로 재편했다고 한다.

기원 6,000년 전 한민족 생활문화로 찬란하게 꽃을 피운 세계 최고 최초 문명인 홍산 문화는 요서·요동지역 일대를 두고 여러 나라와 전쟁을 했던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로 이어졌다.

신용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고조선 문명의 사회사'에서 고조선 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으로 봤다.

요하(辽河) 동북지역인 요동은 예맥족을 포함한 고조선과 홍산문화의 거점으로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가 동북아 최대 시장을 형성했던 당시 중국 동쪽 유주 지역이 최대 근거지였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부터 일본강점기까지 ‘만주’는 동북 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 러시아 동쪽 끝까지는 한민족의 터전이었고, 항일독립운동이 펼쳐진 주요 활동무대였다.

만주는 우리가 살았던 기간이 잃어버린 기간보다 훨씬 길어, 엄청난 우리의 유적과 유물들이 있으며, 5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처 말하지 못한 한민족의 기상들이 전해지고 있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 주변에는 고조선 유적과 유물들이 잇따라 발굴되고 있지만, 중국은 만주에서 펼쳐진 한민족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복속하려는 공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계는 분명 홍산 문화와 요하 문화는 고조선과 연관되어 있음에도 식민사관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한국 역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국 강단사학계는 대한민국 고대사가 한반도에서만 존재했다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조상신 모시듯 감싸고 있지만, 후세 젊은이들의 인공지능 검색엔진에 의해 파괴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고대사의 정립은 구전과 전설보다, 기록과 유물이 정사로 인정되기에, 다양한 사료들과 장착물들이 공개되어, 토론되어야 한다.

​우리 연구가들의 작업과 연구는 사학계만의 문제가 아닌, 민족의 자존심이자, 의무감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북한·중국을 포함한 지식인들의 동참이 요구된다.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원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