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성장·증시 급등에도 자금·노동·전력 부족 부담
“中 대체 생산기지” 넘어 자체 성장모델 구축 시험대
“中 대체 생산기지” 넘어 자체 성장모델 구축 시험대
이미지 확대보기베트남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권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지만, 고소득 국가 진입까지는 자금 조달과 노동력, 전력 공급이라는 난제를 넘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은 16일(현지시각) 베트남 경제가 제조업과 인프라, 관광, 소비 확대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정부가 제시한 고성장 목표를 지속하려면 구조적 제약을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베트남 경제는 지난해 8% 성장했다. 이는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은 5270억달러(약 796조3000억원)로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을 이미 넘어섰고, 태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베트남 증시의 대표 지수인 VN지수도 최근 12개월 동안 35% 이상 올랐다.
오는 9월에는 FTSE러셀이 베트남을 2차 신흥시장으로 승격할 예정이다. 이 경우 글로벌 패시브 자금 유입이 확대될 수 있다.
베트남은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의 관계도 일단 안정시켰다. 지난해 10월 베트남은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대미 관세율을 20%로 정했다. 이는 2025년 4월 이른바 ‘해방의 날’에 미국이 위협했던 46%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며, 다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들에 부과된 관세율과 대체로 비슷하다. 매년 1900억달러(약 287조1000억원) 이상의 베트남산 제품이 미국 소비자에게 향한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의 목표는 이보다 훨씬 높다. 하노이는 2030년까지 연평균 10% 성장하고, 2045년까지 고소득 국가에 진입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1인당 국민총소득을 현재 약 4500달러(약 680만원)에서 1만4000달러(약 2115만원) 수준으로 거의 세 배 끌어올려야 한다.
◇ 제조업 호황과 소비시장 확대
베트남의 고성장은 도시 풍경에서도 드러난다. 호찌민시에서는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 가운데 하나인 빈그룹의 전기차 브랜드 빈패스트 차량이 택시로 운행되고 있다. 고급 호텔과 서구식 카페, 글로벌 소비재 브랜드도 빠르게 늘고 있다.
성장의 핵심축은 제조업이다. 베트남은 미중 갈등 이후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외 생산기지를 찾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의 최대 수혜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애플, 닌텐도 등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 공장에서 노트북과 TV, 헤드폰, 게임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이 단순히 외국 기업의 조립기지에 머무르지 않고 자국 기업과 내수 기반을 키워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 민간경제 키우고 인프라 투자 확대
베트남 정부는 최근 민간 부문을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끌어올리는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결의 68호’다. 이 결의는 민간 부문을 국가경제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규정하고, 기업가들을 ‘경제 전선의 새로운 전사’로 평가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민간기업 수를 200만개로 두 배 늘리고, 한국의 재벌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민간기업 20곳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인프라 투자도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베트남은 하노이와 호찌민시를 잇는 670억달러(약 101조2000억원) 규모의 고속철도 사업을 승인했다. 이 노선이 완공되면 30시간 걸리던 이동 시간이 5시간으로 줄어든다. 2030년까지 공항 확충에도 250억달러(약 37조80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첨단산업 육성도 병행되고 있다. 군 소유 통신기업 비엣텔은 지난 1월 베트남 첫 반도체 제조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이 공장은 2027년까지 32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호찌민시와 다낭을 연결하는 국제금융센터 구상도 추진 중이다. 이는 외국 금융기관이 자금을 이동시키고, 사무소를 세우며, 글로벌 자본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별도 규제 구역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 자금조달 부족이 최대 걸림돌
하지만 고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용은 막대하다. 세계은행은 베트남의 올해 성장률이 6.8%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6.2%로 더 낮게 봤다.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이지만, 이들도 올해 성장률을 7%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HSBC는 올해 베트남 성장률을 6.5%로 전망하면서 성장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베트남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인플레이션도 5.8%로 중앙은행의 상한선을 이미 넘어섰다. 이는 금리 인상 가능성을 키워 고성장 경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는 인프라 투자 재원이다. 외부 분석기관들은 베트남이 2030년까지 1600억달러(약 241조8000억원)의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베트남 대형 민간은행 테크콤뱅크의 옌스 로트너 CEO는 실제 자금 부족분이 2000억달러(약 302조2000억원)에 이를 수 있으며, 전체 투자 수요는 1조1000억달러(약 1662조1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로트너 CEO는 “이 모든 인프라 투자를 현지 은행 시스템만으로 조달할 방법은 없다”며 “베트남의 예금 창출 능력은 충분히 크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인 자금 유치도 쉽지만은 않다. 베트남에는 여전히 자본 통제가 남아 있고, 대규모 투자자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다. 피로 공동 CEO는 “베트남에 돈을 넣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문제는 돈을 빼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 노동력·전력·인재 부족도 부담
자금 부족만 문제가 아니다. 건설과 제조업이 동시에 팽창하면서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도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은 한때 1억명이 넘는 인구를 가장 큰 자산으로 여겼지만, 숙련·비숙련 노동자 임금이 모두 오르고 있다.
저부가가치 제조업은 이미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등 더 저렴한 생산기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부 전자 부품 업체들도 삼성전자 생산기지 인근으로 이전하고 싶어 하지만, 노동 비용과 인력 확보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구구조도 베트남에 시간 압박을 주고 있다. 베트남은 2015년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유엔은 2050년에는 베트남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60세를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독일이나 홍콩 같은 고령 경제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력 공급도 핵심 제약으로 꼽힌다. 베트남 북부에서는 이미 전력망 부담으로 순환 정전이 발생해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베트남 내 휘발유 가격도 전쟁 발발 후 몇 주 사이 약 50% 올랐다.
베트남은 유류세 인하와 가격 안정 조치로 충격을 일부 완화했지만, 장기적인 에너지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베트남의 전력 생산은 대부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고부가 제조업처럼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전력을 요구하는 산업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경영 인재 부족도 과제다. 크리스 프로인트 메콩캐피털 창업자는 “베트남의 가장 큰 문제는 훌륭한 경영 인재 부족”이라고 말했다. 베토레티 임원도 베트남 공장의 효율성이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중국이나 한국 공장보다 낮다며,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미중 사이 ‘대나무 외교’도 시험대
베트남은 외교적으로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하노이는 미국, 중국, 러시아와 모두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이른바 ‘대나무 외교’를 펼쳐왔다. 대나무처럼 뿌리는 강하고 줄기는 단단하지만 가지는 유연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중 경쟁이 더 격화할 경우 베트남의 균형 전략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는 중국산 제품을 우회 수출한 것으로 판단되는 상품에 40% 관세를 부과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해석이 넓어질 경우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베트남에서 조립한 제품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또 베트남을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이 산업 과잉생산 문제를 안고 있고, 지식재산권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베트남 기업들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포춘의 동남아 500대 기업 순위에 포함된 베트남 기업은 72곳으로, 이들의 지난해 매출은 1780억달러(약 269조원)였다. 전년보다 10.5% 늘어난 규모다.
베트남은 더 이상 단순한 저임금 생산기지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고소득 국가로 올라서려면 인프라 투자 재원과 노동력, 전력, 경영 인재라는 네 가지 병목을 동시에 풀어야 한다.
베트남 경제가 ‘차이나 플러스 원’의 수혜국을 넘어 독자적인 성장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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