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14일(현지 시간) 유럽 핵심원자재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CRMA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CRMA는 IRA와 같이 기업이 EU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생산하는 제품의 원자재 일정 부분을 역내에서 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략물자 수요의 최소 40%를 자체 처리하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한다.
더불어 지난해 미국 IRA로 인해 주요 완성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 기업들이 미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폭스바겐은 동유럽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을 보류하고 북미에 새 공장을 짓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CRMA에는 전보다 강화된 환경 기준을 기업에 요구하고 현지에서 원자재를 생산·처리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특정 국가(중국)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를 낮춰 공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크다.
실제 2020년 기준 EU가 선정한 핵심 원자재 30개 중 배터리에 사용되는 코발트, 희토류, 천연흑연, 리튬 등의 수입 의존도는 각각 86%, 100%, 98%, 100%로 알려져 있다. 이 중 희토류는 98%, 천연흑연은 47%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커짐에 따라 배터리 광물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업계는 핵심 원자재에 대한 EU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를 두고 국내 산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업계는 공통적으로 "아직 정확한 법안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친환경 투자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CRMA의 전반적인 방향이 한국으로서는 나쁘지 않다"며 "친환경, 중국을 제외한 것이 핵심 골자이기 때문에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배터리 3사는 동유럽을 중심으로 생산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16년 폴란드 브로츠와프시에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했다. 현재 연 70GWh 규모로 유럽 전기차 시장 수요에 대응하는 핵심 거점으로 오는 2025년 생산 능력을 85GWh로 늘리기 위한 증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시에 1공장, 2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SK온은 헝가리 코바롬에 1~2공장을, 이반차에 3공장을 두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세계 각국의 보조금 패권 경쟁에 낀 한국 기업들은 현지 생산 압박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CRMA는 애초 미국 IRA에 대응, EU의 자동차 업체가 역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침의 일환이었지만, 이외 국가의 자동차 제조사에는 유럽산 광물 비율이 낮은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보조금 지급을 제한할 수 있다. 이 경우 유럽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에도 상당한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유럽에서 하이브리드와 순수전기차 등을 28만9774대 판매하며 18만2627대를 판매한 미국보다 월등히 앞섰다.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10%를 넘어섰다.
CRMA가 만약 IRA와 비슷한 효력을 갖는다면, 판매에 더욱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이지만, 아이오닉5와 EV6 등 주력 전기차 모델은 주로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현대차 체코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 모델은 코나밖에 없으며,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은 2025년부터 소형과 중형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육동윤 김정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h13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