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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43)] 요녕성 호로도시 태집둔 토성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43)] 요녕성 호로도시 태집둔 토성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봉니(封泥)란 대나무 죽간(竹簡) 등의 공문서를 상자에 넣어 묶은 끈을 봉하고 도장을 찍은 진흙 덩이를 뜻한다. 1997년 중국 랴오닝성 금서시(錦西市) 연산구(連山區) 옛 성터에서 발견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는 조작 시비가 일지 않는 유일한 봉니다. 길림대 고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복기대 박사는 ‘백산학보 61집’(2002)에 ‘임둔태수장 봉니를 통해 본 한사군의 위치’를 발표했다. 봉니 출토지는 물론 근처의 대니(大泥) 유적과 패묘(貝墓) 유적의 출토 유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논문이다. 그는 전국시대(서기전 475~221)에는 금서시 유적에서 고조선 계통의 유물들이 주로 발굴되다가 전한 중기부터 후한 시기에 이르면 고조선의 특징이 약해지고 중국 특징의 유물이 주류를 이룬다고 말하고 있다. 뒤의 시기는 한사군 설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 논문은 주류 사학계로부터 외면당했다. 임둔군은 함경남도쪽에 있어야지 랴오닝성 금서시에 있어서는 정설이 위협받기 때문이다.2017-01-02 06:49:37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42)] 요녕성 요양시 동경성벽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42)] 요녕성 요양시 동경성벽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다는 증거물을 보기 위해 요양 한켠에 있는 동경성으로 갔다. 요나라 때 쌓은 성이라 벽돌성이다. 그러나 제일 하단부를 보니 잘 다듬어진 돌로 기초가 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고구려식 돌솜씨다. 그런데 요양이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이 되려면 왕궁터가 나타나야 할텐데? 조선조 최덕중이 1701년 요양에 와서 다 무너진 고구려 왕궁터를 보고 “고구려의 흔적이 무너져 버린 게 안타깝다”고 서술한 역사적 문헌이 있다고 한다. 요양에는 태자하 라는 강이 흐르는데 이것이 실은 패수일 것이라 한다. 패수는 고구려와 백제가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싸웠다는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는 강이다. 다시 말해 고구려는 이 요양 패수 서쪽에 있었고 백제는 이 패수 동쪽 가까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2016-12-30 06:56:40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41)] 고구려·백제와 닮은 전통 석성 축조법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41)] 고구려·백제와 닮은 전통 석성 축조법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전형적인 초기 형식의 석성이네요. 기저석을 쌓고 수평으로 기저를 받친 뒤 ‘들여쌓기’를 하고 있어요.” 횡으로 쌓은 뒤 다음 단은 종을 쌓았다. 4000년 전에 이렇듯 성벽이 무너지지 않게 견고하게 쌓았다니 “주거지에 샤자덴 하층문화 때의 토기편들이 널려 있다”면서 “치가 촘촘하게 있다는 것은 육박전 같은 대규모 전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치는 5m 간격으로 서 있었다. 대각선을 뚫은 문지(門址)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은신하면서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이다. 성이 무너지지 않게 견치석을 적절하게 배치한 석성의 또 다른 특징은 아군의 추락을 막고 적병의 침입을 방어하려고 여장을 쌓았다는 것이다. 유적의 전체 면적은 1만4000㎡였고, 건물지 수십기와 석축원형제단, 적석총, 그리고 석축 저장공(13개)이 확인되었다. 석성은 츠펑 지구를 포함한 발해만 북부지역에서 발전한 축성술이다. 이 전통은 고구려와 백제로 그대로 이어진다. 또한 조선시대에 쌓은 수원 화성의 공심돈(치의 역할)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는 유서 깊은 한국 전통 축성술이다.2016-12-29 06:56:59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40)] 청동거울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40)] 청동거울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 요서지역 청동기문화와 한국 상고사와의 상관관계 전기 청동기문화 요서지역 전기 청동기문화의 모습을 알 수 있었던 것은 1960년 내몽고 적봉시 하가점마을을 발굴하면서부터다. 먼저 중국학계의 견해를 살펴보자. 처음 이 문화의 요소들이 알려지면서 중국 대부분의 학자들은 중원 용산문화(龍山文化)와 관련이 깊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는데 하내(夏鼐)가 대표적인 학자이다. 정소종(鄭紹宗)은 상(商)문화의 영향을 받은 변방 문화로 보았는데 이러한 견해는 큰 이견 없이 받아들어졌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그때까지 쌓인 자료들의 분석을 통해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다른 견해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복공(卜工)은 문헌기록과 질그릇의 형태에 따라 문화권을 나누었는데 연산남록(燕山南麓) 문화가 숙신족(肅愼族)일 것으로 추측하면서 그 북쪽은 동이계통의 문화로 보았다. 이러한 복공의 견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제시하고 있는 ‘東夷’가 한국문헌에 보이는 고조선계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현무(何玄武)는 이 문화를 당시 선대문화와 중원문화가 결합되어 발전된 새로운 문화로 보았다. 곽대순(郭大順)은 이 문화의 형성과 전파과정, 그리고 후대문화에 끼친 영향까지 고려해 종합적인 연구를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이 문화가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와 소하연문화의 문화요소들을 계승하고 동시에 인접한 이웃문화들의 문화요소까지 받아들여 발전시킨 문화로 인식하였다. 또한 이 문화가 발전하면서 인접 문화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는데 그 하나가 상문화이며 동북문화의 전통을 만든 문화로 인식하는 단계까지 발전하였다. 그가 말하고 있는 동북문화의 전통이란 후대에 나타난 산성 등을 말한다. 이어 한국학계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학계에서 처음 이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학자는 윤내현이다. 그는 하가점하층문화가 고조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한창균은 이 문화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고조선과 대입을 시켰는데 이 문화를 고조선 2기 문화에 편입시켰다. 복기대는 이 문화는 중원지역과 다른 중국 동북지역의 독자적인 청동기문화이며 한국 상고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문화임을 주장하였다. 송호정은 이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융적(戎狄)’또는‘융호(戎胡)’를 형성하는 선조들의 문화로 인식하였다.2016-12-28 07:12:51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9)] 제사용으로 사용된 삼족토기(三足土器)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9)] 제사용으로 사용된 삼족토기(三足土器)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세발이 달린 토기'라는 뜻은 이름인 '삼족토기(三足土器)'는 한반도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고대로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있었다는 삼족토기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중심한 지금의 중국지역과 소아시아, 이집트까지 널리 분포돼 있다. 주로 제사용으로 사용된 이 삼족토기의 근원은 삼족오로 불리는 태양새와도 연결돼 있다고 한다. 한반도의 삼족토기를 살펴보자.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백제의 전 지역에서 발견된 토기들의 공통점은 세 개의 발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삼족토기(三足土器: Tripod pottery)' 또는 '세발토기'라는 고대 토기들이다.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에서 출토된 높이 8.6㎝의 삼족토기와 높이 10.2㎝ 삼족배(三足杯)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1990년에는 총면적 5만8000평의 신봉동 백제고분군에서도 많은 삼족토기들을 발굴했다. 뿐만 아니라 높이 22.4㎝의 짧은 다리가 셋 달린 고구려시대의 토기 항아리인 삼족호가 있어 고구려시대에도 삼족토기가 유행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삼족호는 백제와 신라, 가야 지방에서도 출토됐다. 토기뿐만 아니라 산이나 야외에서 찻물을 끓일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청동으로 만든 '삼족 초두'라는 것도 있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삼족토기들은 그 특이한 모습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일상생활용이 아닌, 의례용이나 제사용 토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의기' 또는 '예기'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2016-12-27 06:31:13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7)] 아오한치(오한기) 대전자 유적 성벽터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7)] 아오한치(오한기) 대전자 유적 성벽터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대전자유적(大甸子遺蹟)은 1974년 처음 발견돼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내몽고공작대(內蒙古工作隊), 요녕성 박물관, 오한기 문화관 등이 그해 가을부터 1983년 봄까지 합동 발굴을 진행했다. 발굴결과 초기 청동기시대인 하가점하층문화의 성 유적과 주거지, 그리고 무덤이 총 804기 발견되었다 대전자유적은 직사각형의 토성벽으로 둘러져 있는데, 남북은 350m, 동서가 230m, 총 면적은 7만㎡이다. 벽은 무너지고 훼손되었지만 평균 3.2m 정도가 남아있고, 성벽의 너비는 6.15m이다. 성벽 밖으로 10m 떨어진 곳에는 환호가 발견되었다. 성벽의 남쪽에는 문 자리가 존재하는데, 너비가 1.2m이다. 동일한 형태의 문자리가 동북쪽에서도 발견되었다. 성 내에서는 사각형과 원형의 수혈식 주거지가 있고, 흙벽돌을 쌓아 올린 흔적이 보인다. 탄소연대측정 결과 유적의 연대는 BC 1600년으로 나타났다. 무덤은 유적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 길이 150m, 동서 길이 70m로 총 면적은 1만500㎡이다. 총 804기의 무덤들은 매우 밀집해 분포해 있는데, 배열된 방향이 거의 같고 규모만 다른 직사각형의 움무덤이다. 크기에 따라 대형, 중형, 소형 무덤으로 나뉜다. 대형 무덤은 143기로 깊이에서 차이가 크다. 앝은 것은 3m이고 깊은 것은 7~8m이다. 부장된 유물은 풍부한데, 대표적으로 술잔(爵), 세발솥(鬶)이 있다. 중형 무덤은 434기로 가장 많은데 길이가 2m, 깊이도 2m 정도이다. 소형 무덤은 227기로 길이 1.7m 이하, 깊이 2m 이하의 규모이며 부장품도 적다.2016-12-23 07:19:16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6)] 대전자유적(大甸子遺蹟)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6)] 대전자유적(大甸子遺蹟)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대전자유적(大甸子遺蹟)은 적봉시 오한기 대전자향 대자자촌 동남쪽에 위치한다. 하가점하층문화에 해당되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1976년과 1977년 두 차례에 걸쳐 220㎡에 달하는 면적이 발굴되었고, 성벽·환호·주거지·회갱에 대한 부분절개가 이루어졌다. 유적의 형태는 원각장방대이며 주위보다 2m이상 높다. 남북 약 350m, 동서 약 220m로 전체 성벽의 길이는 약 1000m 정도이다. 문화층 두께는 약 2~3m이다. 성벽은 항축법(夯築法)을 사용했고 향토층 두께는 약 10㎝이다. 성벽 밑 폭은 6.15m, 잔존높이는 2~3m이다. 성벽 외측에는 환호가 있으며 폭은 약 10m이다. 성문은 3개가 있다. 성문 양쪽에는 돌을 이용하여 쌓은 흔적이 있고, 문 안쪽에는 돌로 이용하여 길을 닦았음이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편과 석기가 다량 출토되었다. 토기는 승문현사회갈도가 많으며 기형은 언(甗), 력(鬲), 관(罐), 분(盆) 등이다.2016-12-22 07:15:19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5)] 적봉 지가영자 석성 동심원 암각화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5)] 적봉 지가영자 석성 동심원 암각화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한국형 암각화가 발견된 곳은 내몽골 적봉시(赤峰市)의 지가영자(遲家營子)와 상기방영자(上機房營子), 극십극등기(克什克騰旗) 각노영자 (閣老營子) 유적이다. 지가영자 유적은 음하(陰河) 유역에 위치한 하가점하층(夏家店下層) 문화의 석성(石城) 유적이다. 각노영자 유적은 암각화가 밀집해 있는 백차하(白岔河) 유역에 위치해 있다. 음하와 백차하는 모두 서요하(西遼河)로 유입돼 요동지역의 요하로 이어지는 요하의 상류다. 적봉 지가영자 유적은 기원전 20~15세기 무렵 조성된 청동기시대 석성이다. 산세와 성벽을 이용해 약 10만㎡의 면적에 걸쳐 조성돼 있다. 성 안에 집터 200여기가 남아있는 대규모 군사·취락 유적이다. 지가영자 유적의 남쪽 사면 바위 군락의 하단부에서 방패모양 암각화를 확인했다. 상단부에서 울산 천전리 암각화를 축소해 놓은 것과 같은 마름모모양, 동심원모양, 사람얼굴모양 등의 암각화를 찾았다. "지가영자, 상기방영자처럼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가진 석성 유적에서 암각화가 발견되는 점도 특징"이라고 특기했다. "제사유적에서 자주 확인되는 암각화가 석성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은 고대사회에서 제의와 군사가 결부돼 있었음을 말해주며 암각화는 바로 그 상징물"이라고 풀이했다.2016-12-21 06:46:26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4)] 내몽골 적봉 지가영자 암각화…천전리 암각화와 유사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4)] 내몽골 적봉 지가영자 암각화…천전리 암각화와 유사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길림성 집안지역에서 인물 모양의 암각화가 발견되면서 북한지역이나 요동지역에 암각화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뒤이어 함경북도 무산군 지초리에서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북한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동심원과 나선문양으로 천전리 암각화와 유사하여 동해안으로의 전파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었다. 그러다 지난 2008년 내몽골지역에서 한국형 암각화가 발견되면서 다시 몽골의 암각화와의 관련성이 주목을 받았다. 내몽골 적봉지역의 삼좌점 암각화는 동심원과 검파형 및 별자리 모양의 암각화로서 한국의 암각화와 매우 관련성이 높다. 그리고 적봉지역의 지가영자 암각화는 천전리 암각화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적봉지역에서 북쪽으로 200여㎞ 떨어진 각노영자에서 검파형 또는 방패형 암각화로 불리는 한국형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암각화가 몽골에서 내몽골을 거쳐 요하지역을 지나 한반도로 연결되는 전래과정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2016-12-20 07:12:10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3)] 적봉 지가영자 유적 석성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3)] 적봉 지가영자 유적 석성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농사를 지을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돌연장으로는 어깨삽·돌호미·돌칼 등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옥기가 많이 발견되었는데 도끼, 고리, 새 모양 등 다양하다. 옥기제작에 있어 대칭법을 이용하여 만든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점을 치는 관습이 있었는데 주로 짐승의 어깨뼈를 사용하였고 이것을 그슬려 길흉을 판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가점하층문화을 이룬 사람들에 관한 체질인류학적인 분석을 살펴보면 주로 고동북유형(古東北類型)과 고화북유형(古華北類型)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종족 가운데 고동북유형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연구 결과로 앞으로 중국 동북지역 역사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하가점하층문화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유적의 분포 관계이다. 유적의 밀집도는 문화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면 적봉시 오한기에서 조사된 하가점하층문화의 유적 수는 약 2200여 개로 집계되었다. 최근에 적봉시 반지전하(半支箭河) 중류지역에 분포하는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을 조사한 결과 140개에 달하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문화 유적의 분포 밀집도는 위에서 언급한 약 70개에 달하는 하가점하층문화의 성들과 함께 생각해 보면 대형 집단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2016-12-19 07:14:18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2)] 삼좌점 유적 집터

[김경상의 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32)] 삼좌점 유적 집터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민족의 시원-고조선 단군루트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로만 접했던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가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의 성(城)을 조사했는데, 토성(土城)이 있고 돌과 흙을 같이 사용한 혼축성(混築城)도 있다. 성들이 축조된 지역은 대부분 배후에 산을 등지고 앞에는 물을 바라보며 양 옆으로는 외부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계곡이 흐르는 지역이다. 조사된 성 중 큰 것은 약 3만평 정도에 이르고 작은 것은 몇 천 평 정도의 것도 있다. 성들의 분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큰 성 주위로 작은 성이나 또는 성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집단적으로 거주했던 형태의 거주지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하가점하층문화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로는 질그릇, 청동기, 옥기, 석기, 점뼈(卜骨) 등 다양하다. 질그릇은 세가랑이솥(鼎), 세발솥(鼎), 존(尊) 등이 많이 발견되었다. 특히 꺼묻거리 질그릇 중 채회도(彩繪陶)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 채회도는 하가점하층문화가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근거인 동시에 고유한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채회도의 무늬는 다양한데 기본 바탕이 기하무늬가 많은 게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채회도는 중원지역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고, 요동반도의 쌍타자(雙砣子) 2기 문화와 산동반도의 악석문화(岳石文化)에서 일부 발견된 예가 있다. 하가점하층문화의 채회도에서 사용한 색은 붉은색·검은색·흰색·주황색 등이 사용되었다. 청동기는 많이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주로 작은 그릇들이 발견되었고 합범(合範)을 사용하여 만든 큰 꺽창이 발견되기도 하였다.2016-12-16 06:5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