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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4)] 조문국 고분군 출토 청동방울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4)] 조문국 고분군 출토 청동방울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금성산 고분군이 분포되어 있는 금성면 일대는 쌍계천과 금성산 사이에 넓은 곡간 평야가 펼쳐져 있어 경작지와 용수 확보 등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이는 이 일대의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초전리·학미리·수전리 지석묘군의 분포에서도 알 수 있다. 고분군의 분포는 군위군 우보면에서 의성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과 중앙선 철도로 구분되므로 국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대리리 고분군, 동쪽은 고분군의 능선을 중심으로 북쪽은 학미리 고분군, 남쪽은 탑리리 고분군(塔里里 古墳群)으로 불리다가 1998년 4월 13일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면서 의성 금성산 고분군으로 통합되었다. 1. 탑리리 고분군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142-1 일대에 있는 고분군이다. 금성산 기슭에서부터 서북쪽으로 뻗은 낮은 산줄기는 탑리리 북동쪽 약 2㎞ 지점에 이르러 동서로 길게 누운 구릉(높이 160m)이 된다. 고분군은 북서쪽으로 연이어진 능선 상에 다수 분포한다. 고분을 가로지르는 국도 28호선을 경계로 대리리와 탑리리로 구분되나 사실은 탑리리 고분군 능선 말단부가 대리리 고분군까지 연장되어 있다. 고분군 서쪽으로 넓은 하상 평야가 있으며, 평야 사이로 쌍계천(雙溪川)이 북서~남동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쌍계천은 미천(眉川)과 만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중요한 하천이다. 고분은 원대리 마을 북동쪽이자 전 경덕왕릉(傳 景德王陵) 동쪽 능선에 130여 기가 확인된다. 2. 대리리 고분군 의성군 금성면금성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높이 112.2m인 구릉 능선부와 높이 106.5m인 구릉부, 그 사이의 계곡부 등 3구역으로 나누어져 40여 기의 고분이 조영되어 있다. 3. 학미리 고분군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 산 101번지깐창골 마을 북동쪽 능선에 수십 기가 분포한다. 원형 또는 타원형 봉토분으로 봉분 장축은 북동~남서향이며 저면에는 호석으로 추정되는 돌이 드러나 있다.2017-02-08 06:50:00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3)] 조문국의 칼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3)] 조문국의 칼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조문국이 위치하였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신라가 영남 일원에서 북쪽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소백산맥 안팎을 연결하는 계립령과 죽령의 두 교통로가 하나로 합쳐 경상북도 경주로 들어가는 최단 거리에 위치하는 곳으로 군사적으로 절대 요충지였다. 신라는 이에 따라 의성 지역에 대하여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고,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문국을 정벌하였다. 신라는 이 지역을 조문군으로 명칭을 바꾸었을 것이다. 신라는 김해의 금관가야나 고령의 대가야의 예를 통해 볼 때 한 나라를 병합한 뒤, 그 국명을 지방 행정명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신라는 이 지역을 장악하여 조문군으로 삼으면서 일단 소백산맥 방향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고, 북방에서 정치변동 등의 이유로 이곳으로 남하하여 내려오는 유이민과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조문성이 축성되었다는 것은 이곳이 곧 조문군의 군치로서 당시 이 지역의 중심지임을 알려준다.2017-02-07 06:43:58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2)] 조문국 금동관의 유래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2)] 조문국 금동관의 유래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조문국 금동관은 5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전하는 의성 탑리리 고분Ⅰ 덧널에서 출토된 금동관이다.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꼬아 새의 깃털 모양으로 만든 세움 장식 세 개를 부착하여 ‘조우형(鳥羽形)’이라고 부른다. 신라 금관 또는 금동관이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나뭇가지를 간략하게 도안화한 ‘출(出)’자 모양의 장식을 겹쳐 올린 장식을 세 개 세우고, 뒤쪽에는 사슴뿔 장식을 세운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조우형’ 금동관의 모습은 경주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제관이 있으며,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과 쌍영총 벽화, 우즈베키스탄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 그려진 사람에게서도 발견된다.2017-02-06 06:43:25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1)] 신라 왕실의 숨은 주역, 왕비족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1)] 신라 왕실의 숨은 주역, 왕비족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조문국은 신라 왕비족이었다. 조문국 공주 ‘운모’와 ‘아비’치의 사랑이 움트는 가운데 날로 강성해져가는 사로국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조문국을 침공한다. 조문국의 왕은 마지막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운모’ 공주는 신라와 화친을 맺고 신라의 왕비가 된다. 이후 신라의 왕비는 조문국에서 배출되어 신라왕들의 어머니 나라가 된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으나 신라 왕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존재가 있다. 바로 왕비족이다. 신라에서는 왕의 혈통뿐 아니라 왕비의 혈통도 세습되었다. 《삼국사기》와 필사본 《화랑세기》 등의 사료에 따르면, 초기 신라의 왕비 자리는 제1대 왕비 알영의 후손이나 가까운 혈족으로 채워졌다. 아울러 신라 왕실은 외래 세력을 포섭해 왕실을 보전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왕비의 혈통에 변화를 줌으로써 대외 환경의 변화에 대응했다. 2세기경 신라가 북방으로 영토를 팽창하는 데 조력한 조문국의 공주를 왕실로 받아들여 진골정통이라는 왕비족을 세웠고, 5세기경 고구려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던 때에는 고구려 여성 보미를 받아들임으로써 대원신통이라는 왕비족을 세웠던 것이다. 왕비족은 신라의 국운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신라에서 여성의 정치적인 지위가 높았음을 시사한다.2017-02-03 06:46:19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0)] 존재조차 모를 뻔했던 소국 조문국(召文國)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0)] 존재조차 모를 뻔했던 소국 조문국(召文國)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조문국(召文國) 또는 소문국은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부족국가의 하나로, 현재의 의성(義城)이다. 의성(義城)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중앙부(中央部)에 위치한 고장으로 삼한(三韓)시대에 조문국(召文國)이라는 나라가 세력을 떨치고 있던 곳이었다. 금성산 일대는 부족국가의 수준을 넘지 못하던 삼한시대 때 185년 신라에 병합되어 문소군(聞韶郡)이 되었고, 그후 신라에 병합되어 757년(경덕왕 16) 문소(聞韶)로 개칭되었다가 고려대에 이르러 현재의 이름인 의성이 되었다. 의성을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가 삼국시대 때 신라에 부속된 소왕국이다. 172년(아달라왕 19) 구도는 파진찬(波珍)에 오르고, 185년(벌휴왕 2) 좌군주(左軍主)가 되고 조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벌휴왕 2년(185년)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해를 좌우 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벌했다."는 이 한 조항이 전부인 조문국은 다만 5세기 말경에 멸망한 것으로 추정될 뿐 어쩌면 존재조차도 모를 뻔 했던 소국이었다.2017-02-02 07:27:31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9)] 조문국 경덕왕릉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9)] 조문국 경덕왕릉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옛 조문국(召文國) 경덕왕릉(景德王陵)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古墳)으로서 봉 아래 화강석 비석(碑石)과 상석(床石)이 있다. 능(陵)의 둘레가 74m이며 능의 전면(前面)에는 가로 42㎝, 세로 22㎝, 높이 1.6m의 비석이 서 있다. 그런데 이 왕릉이 발견되기에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으니 조선 숙종(肅宗) 때 허미수 문집에 실려 있다. 먼 옛날에 한 농부가 외밭(瓜田)을 마련하기 위하여 작은 언덕을 갈던 도중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큼직한 구멍이 나타났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들어가 보니 돌로 쌓은 석실(石室)이 나타났다. 석실의 둘레에는 금칠을 하였고 가운데는 금소상(金塑像)이 있는데 그 머리에 쓴 금관(金冠)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농부가 욕심이 나서 금관을 벗기려 하였더니 그만 농부의 손이 금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날 밤에 의성군수(義城郡守)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나는 경덕왕(景德王)이다. 아무 곳 아무 데 와서 살펴보고 이 무덤을 개수 봉안토록 하여라”고 현몽하였으므로 이튿날 곧 이곳을 발견하여 봉을 쌓고 관리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지방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게도 전해온다. 현재의 능지(陵地)는 약 500년 전에 오극겸(吳克謙)의 외밭(瓜田)이었는데, 외를 지키던 어느 날 밤 꿈에 금관(金冠)을 쓰고 조복(朝服)을 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서 “내가 신라시대(新羅時代) 조문국(召文國)의 경덕왕(景德王)인데 너의 원두막이 나의 능(陵) 위이니 속히 철거를 하라” 고 이르고는 외지기 등에다 한 줄의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에 놀란 외밭 주인은 일어나 보니 꿈속에 노인이 써준 글이 그대로 자기 등에 씌어 있어 현령(縣令)께 고(告)하고 지방의 유지들과 의논하여 봉분(封墳)을 만들고 매년 춘계 향사를 올렸으며 지금도 제례(祭禮) 행사는 계속되고 있다.2017-02-01 06:51:50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8)] 조문국을 아시나요?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8)] 조문국을 아시나요?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이(卷二) 신라본기(新羅本紀) 제이(第二)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조에 「二年 春正月 親祀始祖廟 大赦 二月 拜波珍飡 仇道 一吉飡 仇須兮 爲左右軍主 伐召文國 軍主之名始於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벌휴이사금 2년, 1월에 왕이 친히 시조사당에 제사 지내고 죄수를 크게 사면했으며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로서 좌우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정벌했는데 군주라는 이름이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벌휴이사금은 신라 9대왕으로 동왕 2년은 서기 185년에 해당되므로 조문국이 신라에 복속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830여년 전의 일이다. 의성군 금성면이 조문국 도읍지로 지금까지 규모가 매우 큰 고분군(古墳群) 100여기 등 모두 고분군 374여기(2015년 4월 의성 금성산고분군 일원 문화재 지표조사)가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 몇 세기에 걸쳐 고분이 조성됐으며 삼한의 초기부터 존재하던 부족국가라 추정할 수 있다.2017-01-31 07:10:27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7)] 강릉 단오제 관노 가면극은 동예국에서 유래(?)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7)] 강릉 단오제 관노 가면극은 동예국에서 유래(?)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강릉 관노 가면극은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제 때 행해지는 전통민속극으로 우리나라에 분포된 가면극 중 하회탈놀이와 함께 서낭제탈놀이에 속하고 있다. 강릉 관노 가면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예로부터 강릉의 명주지방은 동예국으로 무천이라는 제천의식을 10월에 거행했는데, 이 때에 가면극 형태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강릉 관노 가면극은 마을축제에서 연희되는 서낭신제 탈놀이로 그 기원과 역사성이 충실하며 내용상 해학성과 신앙성이 강조된 전승민속이라고 할 수 있다.2017-01-26 06:47:42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6)] 『삼국유사』 권1 기이1 마한편에 언급된 동예국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6)] 『삼국유사』 권1 기이1 마한편에 언급된 동예국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마한(馬韓) 위지(魏志)에 이르기를, “위만(魏滿)이 조선을 공격하자 조선왕 준(準)은 궁인과 측근 신하들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한(韓)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했다.”고 하였다. 견훤(甄萱)이 고려 태조에게 올린 글에 “옛적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혁거세(赫世)가 발흥하였으며, 이즈음에 백제가 금마산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 최치원이 말하기를 “마한은 고구려이고, 진한은 신라”라고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 의하면 신라가 먼저 갑자(기원전 57)에 일어나고, 고구려는 그 후 갑신(기원전 37)에 일어났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것은 조선왕 준을 두고 말한 것이다. 이로써 동명왕(東明)이 일어난 것은 이미 마한을 아울렀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고구려를 일컬어 마한이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더러 금마산(金馬山)을 인정하여 마한이 백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대체로 잘못된 것이다. 고구려 땅에는 본래 마읍산(馬邑山)이 있으므로 마한이라고 이름 한 것이다. 사이(四夷)는 구이(九夷) 구한(九韓) 예맥(穢貊)이니 주례(周禮)에 직방씨(職方氏)가 사이와 구맥을 관장하였다고 하는 것은 동이(東夷)의 종족으로 곧 구이를 말하는 것이다. 『삼국사』에는 “명주는 옛 예국인데 야인이 밭을 갈다가 예왕(穢王)의 인장을 얻어 바치었다.”고 하였다. 또 “춘주는 옛 (고구려 때의) 우수주로서 옛 맥국이다.”라고 하였다. 또는 “오늘날의 삭주는 맥국이고, 혹은 평양성이 맥국이다.”고 하였다. 『회남자(淮南子)』의 주에는 “동방의 오랑캐는 9종족이다.”고 하였으며, 『논어정의(論語正義)』에는 “구이(九夷)는 1 현도(玄菟), 2 낙랑(樂浪), 3 고려(高麗), 4 만식(滿飾), 5 부유(鳧臾), 6 색가(素家), 7 동도(東屠), 8 왜인(倭人), 9 천비(天鄙)이다.”라고 하였고,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에는 “구한(九韓)은 1 일본(日本), 2 중화(中華), 3 오월(吳越), 4 탁라(乇羅), 5 응유(鷹遊), 6 말갈(靺鞨), 7 단국(丹國), 8 여진(女眞), 9 예맥(穢貊)이다.”라고 하였다.2017-01-25 06:00:21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5)] 동예는 호랑이를 신(神)으로 여겨 제사했다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5)] 동예는 호랑이를 신(神)으로 여겨 제사했다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예전(濊傳)은 동예의 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이 실려 있다. 동예인들은 “스스로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其耆老舊自謂與句麗同種).” 이 때문인지 고구려와 같은 10월에 제천행사인 ‘무천(舞天)’을 열었다. 무천은 가을에 여러 곡식의 결실을 맞이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수확의례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또한 책화(責禍)라는 것이 있어 다른 부락을 함부로 침범하면 벌로써 생구(生口:포로나 가축)와 소·말을 부과하였다. 특산물로는 반어피(班魚皮)·과하마(果下馬)·단궁(檀弓) 등이 있었다. 종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록도 있는데, 동예에서 “호랑이를 신(神)으로 여겨 제사했다.(祭虎以爲神)”는 것이다. 이것은 호랑이 보다는 곰 숭배가 부각된 단군신화와 대비되는 것으로, 여기서 호랑이 신은 읍락을 보호하는 산신(山神)으로 이해된다. 예전(濊傳)에 나타난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랑이 숭배는 오늘날의 민속종교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호랑이의 옛 말인 “범”은 그 자체가 신(神)을 뜻하기도 한다.2017-01-24 06:54:42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4)] 동예왕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았다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4)] 동예왕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았다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동예가 고구려와 같은 고대국가 단계로 성장하지 못하고 주변 국가에 복속된 이유 중 하나는 동예 지배세력의 정치력이 크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예전(濊傳)에 따르면 “대군장이 없었다. 정시(正始) 8년(247)에 위(魏) 조정에 와서 조공하므로 불내예왕(不耐濊王)으로 책봉하였다. 왕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았다.” 즉, 동예는 처음에 왕이 없고 대군장이 다스리는 사회였다. 비록 3세기에 와서 중국의 필요에 의해 왕으로 임명되었으나, 왕은 일반 백성과 구분되지 않은 곳에 살았을 정도로 정치력이 미약했던 것이다.2017-01-23 06:55:43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3)] 동예국의 기원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동예(東濊)는 한반도 동북지역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문화를 기반으로 동해안 지역의 예족이 세운 사회이다. 『삼국지』에서는 동예의 위치를 한반도의 동해안 지역으로 막연히 기록하고 있으나,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남해 차차웅 16년조에는 오늘날의 강원도 강릉 혹은 함경남도 안변으로 추정되는 “북명(北溟) 지역의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인장을 얻어 바쳤다.(春二月 北溟人耕田 得濊王印獻之)”는 기사가 나와 동예의 보다 구체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가 발견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에서는 “진솔선예백장(晉率善穢佰長)”이 새겨진 도장(銅印)이 발견된 바 있다. 이를 통해 예족의 분포지역이 의외로 넓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이들이 형질학적으로 같은 종족인지는 논란이 있다. 동예가 처음부터 위만조선에 속해 있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기원전 2세기 초에는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 108년에 한사군이 설치된 이후 현토군과 낙랑군에 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1958년 평양 정백동 목곽묘에서 발견된 “부조예군(夫租薉君)”이라는 도장(銀印)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동예는 313년에 낙랑군이 고구려에게 멸망된 뒤부터 고구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2017-01-20 0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