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광석 유출 막고 금괴로 비축"… 亞 신흥국, '금 자원 민족주의' 확산

글로벌이코노믹

"광석 유출 막고 금괴로 비축"… 亞 신흥국, '금 자원 민족주의' 확산

온스당 4,000달러 고공행진 속 라오스·인도네시아·중국 등 수출통제 및 국산 정련 총력
라오스, '불리온 뱅크' 설립해 외환보유고 확충… 인니 최대 15% 수출세·中 22개월 연속 순매입
美 달러화 무기화·자산 동결 공포가 기폭제… "글로벌 공급 통제로 장기 금값 상승 압력 가중"
직원들은 우간다 공화국의 아프리카 금 정제소에서 정제 과정에서 잉곳 생산을 위해 액체 금을 몰드에 부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직원들은 우간다 공화국의 아프리카 금 정제소에서 정제 과정에서 잉곳 생산을 위해 액체 금을 몰드에 부었다. 사진=로이터
국제 금 가격이 역사적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신흥 자원국들이 자국 영토에서 채굴된 금의 국외 유출을 차단하고 부가가치를 내재화하는 이른바 '금 자원 민족주의(Gold Resource Nationalism)'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동안 저부가가치 미정제 광석 형태로 헐값에 밀수출되거나 해외 제련소로 빠져나가던 금을 자국 내에서 직접 골드바(금괴)로 정련해 국고 외환보유고로 편입하거나, 고율의 수출 관세와 중앙은행의 의무 매입제를 동원해 국내에 틀어막는 움직임이 아시아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러시아 외환보유액 동결 조치를 지켜본 글로벌 남반구 신흥국들이 기축통화로서의 '미국 달러화'에 대한 구조적 신뢰 위기를 겪으면서, 그 어떤 국가의 정치적 제재나 금융 제재로부터도 독립된 실물 자산인 금을 국가 주권의 핵심 방파제로 삼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10월 5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신흥국들의 자국 내 금 비축 및 정련 인프라 확충은 런던과 뉴욕 중심의 전통적 글로벌 유통망에 유입되는 물리적 금 공급을 구조적으로 옥죄어 중장기 금 가격 상승을 견인할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라오스, '불리온 뱅크' 앞세워 국산 정련 체제 구축… 日 협력 타진


대표적인 국가는 아시아 6위 금 생산국(2025년 기준 연간 약 12톤 채굴)인 라오스다.

추정 매장량이 500~1,000톤에 달함에도 자체 정련 기술이 없어 상당량을 비공식 밀수나 저가 광석 형태로 유출해 왔던 라오스는 국가 차원의 전략을 180도 바꿨다.

소넥사이 시판돈(Sonexay Siphandone) 라오스 총리는 9월 초 공식 행사에서 "금 산업 육성은 국가 경제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최우선 국책 과제"라고 천명했다.

라오스는 2024년 현지 기업들의 공동 출자로 전문 금 금융기관인 '라오스 불리온 뱅크(LBB)'를 설립하고, 자국에서 캔 금을 자체 정련해 공식 금괴로 주조하는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민간의 안전한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한편 국가 외환보유고 내 금 비중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LBB는 지난 1월 일본금괴시장협회(JBMA)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일본의 선진 귀금속 시장 운영 노하우를 도입하기로 했다.

찬톤 시티사이 LBB 최고경영자(CEO)는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정련 및 금융 거래 표준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인니 최대 15% 수출세 신설·中 22개월 연속 순매입… 아프리카로 연쇄 확산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 아시아 주요 경제국들의 빗장 걸어 잠그기도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 10위 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연간 100톤 이상을 채굴함에도 폭발하는 국내 투자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금의 무분별한 국외 유출을 막기 위해 2026년부터 최대 15%의 금 수출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생산국(연간 약 380톤·글로벌 생산량의 10%)이자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움직임은 더욱 공격적이다.

중국은 개인과 기업의 금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가운데,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이 지난 8월에도 20톤을 추가 매입하며 1999년 12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록인 '22개월 연속 금 순매입' 행진을 이어갔다.

이 같은 흐름은 아프리카로도 번지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중앙은행은 공식 채널을 구축해 국내 채굴 금을 외환보유고 다각화 명목으로 전량 흡수하는 '국내 금 구매 프로그램(DPP)'을 가동 중이다.

아프리카 2위이자 세계 6위 금 생산국인 가나 역시 지난 7월 세계금위원회(WGC)와 손잡고 불법 채굴 단속과 함께 국내 공급망 투명성을 높여 국부의 해외 유출을 차단하고 있다.

"달러 무기화가 부른 역풍"… 런던·뉴욕 유통 물량 고갈 경고


신흥국들이 금 자원 빗장을 걸어 잠그는 근본 배경에는 미국 달러화 패권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서방이 지정학적 충돌 국면에서 상대국의 달러 자산을 손쉽게 동결·몰수하는 선례를 남기자, 달러 표시 채권이나 현금 자산에 국가 재정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치명적인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다국적 은행 ANZ의 염 궐(Yum Gwol) 이사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달러 편중 구조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특정 국가의 정치적 결단이나 제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유일한 자산인 금의 전략적 위상이 절대적으로 높아졌다"고 짚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서방 귀금속 정련 및 유통 허브들은 실물 조달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과거 식민지 광산의 금이 런던으로 집중 유입되어 대영제국의 금본위제를 지탱했던 구조가 완전히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귀금속 컨설팅사 메탈스 포커스(Metals Focus)의 니코스 카발리스(Nikos Kavalis) 전무는 "신흥국들이 정련과 비축을 국산화할수록 글로벌 대형 정유·제련업체들의 원료 조달 역량은 구조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美 금리 인상에 단기 조정… "장기적으로는 생산국 민족주의가 가격 지지"


국제 금 시장은 단기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긴축 기조에 눌려 숨고르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연준이 지난 9월 3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자, 런던 현물 금 가격은 지난 9월 28일 트로이 온스당 4,110달러로 내려앉으며 8월 말 고점(4,700달러 선) 대비 약 12% 조정을 받았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1월 사상 최고가인 5,500달러를 돌파했던 금 시장의 장기 상승 동력이 꺾이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최종 정책금리 수준이 윤곽을 드러내면, 공급 측면의 제약과 탈달러화 수요가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단순한 채굴 기지를 벗어나 금융과 정련 주권을 선언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자원 국유화' 조치가 달러화 중심의 글로벌 금융 질서에 균열을 내며 금 시장의 판도를 장기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