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등급을 결정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는 지난달 10일 '12세 이용가'였던 넷마블게임즈의‘리니지2 레볼루션’을 ‘청불’로 재분류했다. 유료재화인 '블루 다이아몬드'로 게임 내 아이템을 거래하는 '거래소' 콘텐츠가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모사했다는 것이다. 게임위의 밝힌 판정 근거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1조와 등급분류 규정 제7조 제4호였다. 하지만 이 판정을 이해하려면 게임위가 든 근거 뿐 아니라 청소년 보호법과 여가부 고시 등을 숙지해야 한다.
이어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분류 규정을 살펴보면 사행성 관련 '청불' 판정 사유는 “게임법 제2조 제1의2호 각 목에 해당하나 재산상이익 또는 손실을 주지 않는 게임물로서 18세 미만의 사람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임물”이다. 게임법 제2조 제1의2호는 ▲베팅이나 배당을 내용으로 하는 게임물 ▲우연적인 방법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게임물 ▲한국마사회법에서 규율하는 경마와 이를 모사한 게임물 ▲경륜·경정법에서 규율하는 경륜·경정과 이를 모사한 게임물 ▲관광진흥법에서 규율하는 카지노와 이를 모사한 게임물 등으로 규정한다.
공은 다시 청소년 보호법으로 건너간다. 청소년 보호법은 7조는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ㆍ결정은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하도록 명시했다. 동법 제9조(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 기준) 4항은 ‘도박과 사행심을 조장하는 등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것’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한다고 돼 있다. 9조의 청소년유해물매체 심의 기준은 동법 별표2에서 찾을 수 있는데 2항 개별심의 기준에 따르면 카목에 ‘도박과 사행심 조장 등 건전한 생활 태도를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기재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료 재화를 이용한 거래소 시스템의 사행성 여부에는 모호성이 남는다. 거래소는 경마, 경정, 경륜, 카지노, 소싸움, 복권, 현상업, 추첨, 경품 등에 포함되지 않는다. 베팅이나 배당의 요소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통념상’ 과다한 비용이 소요되는지 여부는 개개인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게임의 환전성 정도는 거래소 시스템보다는 개인 간의 거래가 자유로운 자율경제시스템에서 더 빈번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현저하게’, ‘과도하게’, ‘도박과 사행성을 조장하는’, ‘건전한 생활’, ‘현저히 해칠 우려’ 등의 문구는 법의 선명성이 떨어져 판단주체에 따라 제각각인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청불 판정을 받은 ‘리니지2 레볼루션’은 전 세계 50%에 해당하는 지역의 게임 콘텐츠 등급을 매기는 국제등급분류연합(IARC)에서 12세 이용 판정을 받았다. 북미, 유럽, 호주, 브라질, 러시아 등의 전 세계 15억 명 인구는 해당 게임을 12세부터 이용할 할 수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거래소 ‘청불’ 사유는 여성가족부 고시 ‘제 2013-45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당 고시는 게임이용을 위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제외한 '게임아이템거래중개사이트' 전부를 사실상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했다. 고시에 따르면 현재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아이템, 계정 등 유무형의 결과물을 거래하거나 거래‧알선하는 행위가 있으면 ‘청불’ 판정을 받는다. 게임 내에서 캐릭터 간의 거래는 청소년이 이용하기 적합하지만 게임을 벗어난 거래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해석이다. 게임위는 여가부 고시를 인용해 유료 재화를 이용한 게임 내 거래소가 청소년유해매체와 닮았다는 이유로 청불 판정을 내리고 있다.
원칙적으로 행정기관 내부의 규범에 지나지 않아 법규성이 없는 고시가 게임업계의 생존을 좌우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제2항은 “법령의 위임에 따라 정하는 고시 등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서 법규성이 인정되지만, 전문적·기술적 사항 등 그 업무의 성질상 고시 등에 위임이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위임하기로 한다”고 명시했다. 많은 상위 법령‧규칙 등을 검토해 ‘사행성’ 요소를 피해가도 고시에서 규정한 '청소년유해매체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발목이 잡혀 청불 판정을 받는 ‘규제 지뢰밭’이다.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의 경우 애플 앱스토어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애플 앱스토어는 게임 매출의 약 20~25%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불’ 재등급 분류시 기존에 게임을 즐기던 청소년의 피해도 우려된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캐릭터와 아이템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구제할 방법은 방법은 마련돼 있지 않다. 게임 내 계정‧아이템 등을 이용할 수 없게 된 청소년들이 게임사를 상대로 집단소송 등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오는 21일 출시되는 엔씨소프트의 기대작 ‘리니지M’도 게임 내 거래소를 채택할 것으로 알려져 내부에서 ‘청불 리스크’를 놓고 고심 중이다. 현재까지 ‘리니지M’ 사전예약등록인원은 500만명 이상으로 이중 상당수가 청소년일 것으로 예상된다. ‘리니지M'이 ‘청불’ 판정을 받을 경우 애플 앱스토어 사용자와 청소년의 사전예약등록은 헛수고가 된다. 특히 ‘리니지M'의 경우 출시 전 운영중인 미니게임 점수에 따라 출시당일 유저들에게 게임 내 재화를 제공하기로 돼 있어 '청불' 판정시 유저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