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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 자기의식의 주체적 표현…헤겔의 '자기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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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 자기의식의 주체적 표현…헤겔의 '자기의식'

[북 카페에서 띄우는 인문학 편지(32)]

홀로 고독의 공간과 시간을 할애하고

가꿀 때, 삶의 풍요를 느끼게 될 것
그루야,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가을에 선생님과 편지를 나눈 것 같은데 벌써 한 겨울이 왔구나.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감성에 젖을 수 있는 것, 선생님은 이것이 인생의 행복일 뿐만 아니라 삶의 여유라고 생각해. 만약 그루가 입시 준비로 바빠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면, 혹은 어떤 생각에 잠겨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면, 첫눈의 설렘에 기분이 들뜬 적이 없었다면, 그루는 가던 길을 멈추기 바란다. 그리고 의도적으로라도 홀로 고독의 공간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러나 그곳은 그루가 절대로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야.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시간이지. 그루가 의도적으로 그런 공간과 시간을 할애하고 가꿀 때, 삶의 풍요를 느끼게 될 거야.

선생님이 지난번에 키에르케고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원래 순서대로 한다면 헤겔을 먼저 소개했어야 했지. 시대적으로 볼 때, 헤겔이 키에르케고르보다 한 세대 정도 먼저 활동을 했어. 헤겔은 독일 사람으로 당대에 철학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 또한 그의 철학은 독해하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는 더욱 힘든 것으로 유명해. 그리고 그 당시에 헤겔 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무렵 그의 사상을 비판하고 공격한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면 키에르케고르야. 선생님은 이번 편지에 헤겔 사상의 중요한 지점에 대해 설명하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에 키에르케고르는 어떤 점을 비판하려고 했는지 나누어 보려고 해.

헤겔이 남긴 가장 유명한 저서를 소개하면 '정신 현상학'이야. 제목만 봐도 어렵지?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정신에 대한 이야기야. 간단하게 말한다면, 인간은 의식이 있고 의식이 어떻게 성장과정을 거쳐 정신이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어. 선생님은 그 중에서 이번 시간에는 특별히 '자기의식'에 대해서 그루에게 소개하고 싶다. 자기의식은 헤겔 사상에서 중요한 지점 중에 하나야. 동물을 생각해 봐. 동물은 자기의식이 있을까? 그루가 집에서 애완용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면 강아지 앞에 거울을 놔봐. 강아지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동물들은 아마도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자기의식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지. 인간은 불행하게도 자기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존심이 있고 자존심이 상해서 불행해지기도 해. 인간은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지. 이렇듯 헤겔은 인간이 자기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생기기도 하고 서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하기도 한다는 거야.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하기 위해 헤겔이 예로 들고 있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헤겔은 변증법이라는 철학 사상을 주장한 사람이기도 한데, 헤겔에 의하면 인류의 모든 정신의 발전과정을 정반합이라고 하는 변증법으로 설명해. 변증법을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있고 흰색이 있으면 검은 색이 있지? 그루야, 아래가 없는 위가 있을 수 있을까? 서쪽이 없는 동쪽, 검은 색이 없는 흰색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항상 양극이 대립하고 있어. 위가 정이라면 아래는 반이야. 위와 아래는 절대로 통합될 수 없는 양극일 뿐이지. 조금 비약적으로 설명한다면, 헤겔은 위와 아래처럼 정과 반은 절대로 통합될 수 없는 양극이지만 끊임없는 운동과정을 통해 언젠가는 정과 반이 통일 되는 날이 온다는 거야. 그는 역사의 발전도 이와 같은 원리로 설명하려고 했어. 이것을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주인과 노예와의 관계야.

그루가 생각할 때, 주인과 노예 중에서 누가 자유롭다고 생각해? 아마도 그루는 주인이 자유롭다고 생각할 거야. 물론 정(正)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이 자유롭지.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설명은 아니야. 우리는 자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해. 인간은 자유의 힘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어. 아마 인류의 발전이라는 것도 자유의 힘으로 세계를 변화시킨 것을 의미할거야.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 주인은 자유의 힘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해봐. 그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예만 부리고 있다고! 즉, 주인은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물을 지배하고 노예를 부림으로써만 자유롭다면 불완전한 자유일 뿐이야. 주인은 그저 노예만 일을 시키고 있고 삽질하고 땅을 파고 물건을 만들고 밭을 갈고 있는 것은 노예지.

스티브 매퀸의 '삶의 의미' 3부작의 마지막 편 '노예 12년'
스티브 매퀸의 '삶의 의미' 3부작의 마지막 편 '노예 12년'
그렇다면 반(反)의 입장에서 노예가 어떻게 주인보다 더 자유로운 주체가 될까? 예를 들어 노예가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만들었다고 생각해봐. 노예는 자신이 심혈을 들여 만든 바이올린을 주인께 바치게 되고 주인은 그것을 자신의 안방에 놓고 애지중지 하지. 주인은 행여나 바이올린이 상할까봐 조심스럽게 다루기도 해. 반면, 노예는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아. 그는 주인의 안방은커녕 개집과 같이 누추한 곳에서 잠을 청하지. 그때 노예는 “내가 만든 바이올린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는다니!”라고 생각하면서 노예는 주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하게 돼. 노예는 이렇게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하게 될 때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는 거야. 이것은 하나의 생사를 건 싸움이야. 또한 자기의식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투쟁이기도 해. 헤겔에 의하면, 이런 식으로 자기의식은 곧 주인의식이기도 해. 남에게 자기의식을 인정받는 자기 주인이 되는 거지.
아마 그루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웠을 거야. 거시적인 안목에서 볼 때, 그루는 역사가 어떻게 발전해 왔다고 생각해? 헤겔은 역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역사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처럼 주종관계의 끊임없는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거야. 이런 관계에서 때로는 주인은 노예가 되고 다시 노예가 주인이 되고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어 왔다는 거지. 정반합→정반합→정반합…. 이런 가운데 인간의 정신은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어.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서 언젠가 이런 인정받기 위한 투쟁 가운데 서로를 인정하는 날이 온다는 거야. 헤겔에 의하면, 이렇게 주인과 노예의 인정받기 위한 투쟁 가운데 상호인정 하는 단계가 오게 되면 역사는 종말이 온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상호인정의 마지막 단계로 해석하기도 해. 즉, 민주주의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거지.

그루야, 여기까지 헤겔의 사상에 대해 조금 소개 했는데 너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구나. 선생님이 생각할 때, 인간에게는 인정욕구가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아. 그루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 특히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에게 공부, 체육,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야. 심지어 그루를 알지 못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유명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거야.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이 인정욕구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설명한다면,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싶은 욕구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헤겔은 노예가 주인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죽음의 두려움도 물리치고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할 때 진정으로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고 했어.

그루야, 헤겔의 철학이 어렵지만 조금 더 우리 사회에 적용해보면 생각해볼 것들이 많이 있단다. 칭찬을 생각해봐. 학교에서 잘 한 일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것도 그 사람이 한 일을 인정해 주려는 행동이야. 위대한 사람이 되기 원하는 것도 인정받기 위한 욕구 아닐까? 혹은 명예, 존경, 성공 등을 얻기 위한 것도 인정받기 위한 욕구는 아닐까? 이런 면에서 본다면 정말로 헤겔이 말한 인정투쟁은 우리 삶의 곳곳에 존재하고 있어. 그루는 그동안 친구들이나 선후배 관계에서 그들이 잘한 일에 대하여 얼마나 인정을 하고 살았는지 점검해보기 바란다. 혹시 관계가 안 좋은 친구가 있다면 내가 그 친구를 인정해 주었는지 아니면 그를 무시하고 있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을 거야. 왜냐하면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있게 되면 다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처럼 인정투쟁이 발생하게 되거든.

추운 겨울, 만물은 모든 생명이 죽은 것처럼 조용하고, 차가운 겨울이 우리의 마음조차 얼어붙게 만들 것처럼 보이지만, 그루에게서 발산되는 삶의 에너지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고 생의 역동을 자극하고 인정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기를 축복한다. 그럼 이만.

2016년 1월 6일
달빛로에서 터기쌤| 이창우(그루터기 100년 학교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