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김미라 피카딜리&프로스트제이 대표] '줄무늬 티셔츠'를 떠올렸을 때 우리는 19세기 미국의 우스꽝스러운 죄수복이 아닌 세련되고 멋진 프렌치 걸들을 연상하게 된다. 이제 10대 소녀들도 '스트라이프'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처음 출시 된 직후부터 지난 시즌까지 연이어 메가히트를 기록 한 '자뎅 드 슈에뜨'를 필두로 국내 브랜드에서도 매 시즌마다 줄기차게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신상'으로 출시하고 있다. 온라인 여성의류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필자 역시 트렌드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지만 시즌마다 다양한 컬러와 소재의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업데이트 리스트에서 빠진 적이 없을 만큼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아이템이다.
줄무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흔히 '세일러 스트라이프'라고 부르는 줄무늬가 사실은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 지방의 어부들의 옷에서 유래 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어부나 선원들은 물에 장시간 노출되는 작업 환경에서 물이 쉽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견고한 원단으로 탄탄하게 잘 짜여 진 줄무늬 스웨터를 입었다. 또한 가로 줄무늬가 바다에 빠진 선원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안전한 구조를 위해 입었다는 속설도 있다. 이후 프랑스의 해군복으로 낙점되어 오랜 시간 제복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도 했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시그니쳐 모델로 내세우고 있는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와 '아모럭스(Armor Lux)'가 모두 브르타뉴 출신의 전통적인 브랜드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화이트 컬러의 바탕에 선명한 푸른 빛 줄무늬 티셔츠에서 완연한 '프렌치 무드'를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디자이너와 셀러브리티, 아티스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미 너무나 유명한 장 폴 고티에의 심벌인 '브레통 피셔맨 스웨터(Breton fisherman sweater)'는 말 그 대로 처음에 언급했던 브르타뉴 지방 어부들의 옷을 남성적이고 섹슈얼하게 재해석 한 작품이다. 게다가 그는 일상적인 룩에서도 자주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 줄무늬에 대한 강한 애정을 과시했다.
[패션]봄, 만개한 줄무늬 티셔츠의 향연
이미지 확대보기▲그림을그릴때줄무늬티셔츠를자주입었다는천재화가파블로피카소▲줄무늬티셔츠를우아하게연출한가브리엘샤넬
프랑스에 활동 기반을 두고 작업을 했던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줄무늬 티셔츠를 입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자주 입었으며, 프랑스를 여행하던 가브리엘 샤넬 역시 해변가에서 일하는 어부들의 줄무늬 옷에서 영감을 받아 1917년 그녀의 컬렉션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노동을 위한 작업복에서 시작 된 이 가벼운 면직물은 걸출한 하이패션 거장들의 비호 아래 변화를 거듭하며, 지금 우리가 흔히 부르는 마린 룩 혹은 세일러 룩으로 완성 되어져 왔다.
2014 s/s 컬렉션에서도 다채로운 컬러와 패턴의 스트라이프가 눈에 띄었다. 줄무늬가 메인 컨셉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인 룩을 위해 혹은 대중의 호감을 사기 위해 스트라이프를 활용한 몇몇 컬렉션이 기억에 남는다. 모스키노는 획일적인 간격의 줄무늬가 아닌 각각 다른 너비의 줄무늬를 봉긋한 퍼프소매의 원피스에 녹여 걸리시한 마린 룩을 선보였다. 타이트한 레더 스커트, 번쩍번쩍 메탈릭한 소재의 크롭 재킷 안에 레드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매치한 생 로랑의 의상은 리네임과 함께 부활한 브랜드의 젊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룩이었다. 또한 상의는 굵은 줄무늬, 하의는 아주 가는 줄무늬에 대비되는 패턴 플레이를 선보인 아크네 스튜디오의 작품에서는 디렉터 조니 요한슨의 넘치는 위트가 엿보이기도 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약간 거친 텍스쳐의 아이보리 면 원단에 블랙 컬러 줄무늬가 가슴 아래부터 시작되는 디자인을 가장 좋아한다. 비비드한 원색 계열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클래식하고 얌전한 느낌이 들어서인데, 사실 줄무늬 티셔츠는 컬러 별로, 소재 별로 소장해 두어야 직성이 풀린다. 깨끗한 화이트 바탕에 블루나 레드 컬러의 줄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는 통통 튀고 상큼하고, 시원하며 발랄한 분위기가 느껴져서인지 여름에 특히 더 사랑 받는다. 요즘에는 굵직한 간격으로 스포티한 매력을 발산하는 와이드 스트라이프나 비즈니스룩으로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느다란 라인의 펜슬 스트라이프 혹은 핀 스트라이프까지 다양한 줄무늬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올해는 지난 해 보다 봄꽃이 2주 먼저 개화했다는 소식과 함께 조금 더 빨리 봄이 찾아온 듯하다. 얼굴에 닿는 바람의 온도에서 가장 먼저 봄을 느끼지만 그 전에 나는 두터운 겨울옷을 옷장 깊숙한 곳에 넣고, 가볍고 산뜻한 옷들을 맨 앞줄에 진열함으로써 봄맞이를 한다. 제일 먼저 꺼낸 옷 역시 리넨 원단의 줄무늬 티셔츠였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정갈한 베이지 컬러의 트렌치코트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르 스모킹 수트의 블랙 재킷이나 도도한 샤넬의 2.55 클래식 백과 함께 매치해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오히려 강하게 짓눌린 무게감과 격식에 얽매인 스타일을 한 층 더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묘한 기운이 있다. 줄무늬 티셔츠에 뭐 그리 지나치게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가 처녀 시절 즐겨 하던 오래 된 진주 목걸이마저 줄무늬 티셔츠와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사실을 눈치 챈 순간, 4월에는 '스트라이프'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은 하나의 패션 아이템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풀어가는 ‘옷 이야기’입니다. 하이 패션부터 스트리트 패션까지 옷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단, 글 속에 묻어나는 필자의 주관적인 취향과 감성은 덤!
필자 김미라는 매일 아침 꽉 찬 옷장 앞에서 ‘입을 게 하나도 없어’라고 외치는 옷과 동물을 사랑하는 평범한 30대 싱글녀다.(www.prostj.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