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아이가 AI(인공지능)와 함께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표정이 밝다. 막힌 문제가 풀리고, 몰랐던 개념을 설명하는 아이를 보며 흐뭇하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AI가 옆에 있다는 것. 숙제도, 과제도, 플랫폼 안의 연습 문제도 AI와 함께 통과한 것이다. 문제는 시험장이다. 아이 혼자, AI 없이,처음 보는 문제 앞에 앉아야 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드러난다. AI와 함께 쌓은 것이 실력인지, 아니면 AI가 있어야만 작동하는 능력인지.
지난달 카네기멜런대학교·옥스퍼드대학교·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공동 연구팀이 이 구조를 실험으로 증명했다. 그레이스 류(Grace Liu) 외 연구팀은 세 차례의 무작위대조 실험을 통해 천 명이 넘는 성인 참가자를 모집했다. 수학 추론과 독해 과제를 AI의 도움을 받으며푼 집단과, 아무 도움 없이 혼자 푼 집단을 비교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점에 두 집단 모두에서 AI를 걷어내고 같은 유형의 문제를 혼자 풀게 했다.
결과는 냉정했다. AI를 써온 집단은 혼자 풀어야 하는 순간, 처음부터 혼자 써온 집단보다 문제를 눈에 띄게 적게 풀었다. 그런데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풀어보지도 않고 넘기는 비율이 처음부터 혼자푼 집단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버티려는 의지 자체가 꺾여 있었다. 이 결과는 독해 과제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AI에 기대는 습관이 만드는 것은 실력의 저하만이 아니었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경향이 아니라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밝혔다는 점이다. 기존 연구들은대부분 AI를 많이 쓰는 학생의 사고력이 낮다는 정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원래 실력이 낮은 학생이 AI를더 많이 쓴 것일 수도 있다는 반론이 가능했다. 이 연구는 처음부터 무작위로 집단을 나눠 AI를 투입한뒤 결과를 비교했다. AI 사용이 원인이고 실력 저하가 결과라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준 것이다. 더 놀라운것은 속도다. 이 변화는 단 10~15분의 AI 사용 만으로도 나타났다. 연구팀은 결론에서 이 효과가 누적될경우 특히 학습 자원이 부족한 학생들이 가장 취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매일 AI와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결과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연구팀이 이 결과를 통해 짚어낸 것은 두 가지다. 첫째, AI에 익숙해지면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얼마나걸려야 하는 지에 대한 감각 자체가 달라진다. AI가 즉시 답을 내놓는 것에 익숙해진 뇌는, 혼자 푸는 시간이 실제보다 훨씬 더 길고 버겁게 느껴지게 된다. 그 감각이 반복될수록 포기는 점점 자연스러운 선택이된다. 둘째, AI는 스스로 버텨보는 경험 자체를 빼앗는다. 막힌 채로 씨름 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AI가 그 과정을 대신할수록,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가늠하는 힘을 기를기회를 잃는다.
이것이 AI가 어떤 나쁜 의도 없이,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력을 조용히 갉아먹는 방식이다. AI는 당장은 탁월한 조력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에는 무관심한 도구다. 얼마나 성장했는 지에 관심이 없다. 막혔을때 버티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거절하는 법을 모른다. AI와 함께할 때 아이의 모습이 밝아 보이는 이유가,실은 AI가 모든 걸림돌을 치워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모는 잊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연구팀의 데이터가 이미 답을 가리키고 있다. 직접 답을 받아 쓴 집단의 수행 능력이 가장 낮았지만, 힌트나 풀이 방향을 물은 집단은 혼자 푼 집단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AI를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결과를 가른다.
그리고 주기로 확인해야 한다. AI 없이 같은 유형의 문제를 혼자 풀 수 있는지. 성적표가 아니라 이것이 실력의 진짜 계기판이다. AI와 함께 풀 때와 혼자 풀 때의 결과가 크게 다르다면, 그것은 실력이 아니라 도구에 기대고 있다는 신호다. 이 간극을 부모가 먼저 알아야 한다. AI와 함께할 때만 빛나는 능력은아이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간극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그 둘이 같아야 한다. AI와 함께할 때만 빛나는 능력은, 결국 아이의 것이 아니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