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인형이 "안 돼"라고 말하고 그 말을 끝까지 지켜낼 때, 아이는 세상에 경계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지금 아이들 곁에 있는 AI 인형은 그 말을 뱉어 놓고 곧바로 거둬들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육학부 연구팀은 2026년 3월에 보고서 《영유아기의 AI(AI in the Early Years)》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3세에서 5세 아동 14명이 대화형 AI 인형과 노는 모습을 직접 관찰했다.
보고서에 담긴 한 장면을 쉽게 재구성해본다. 한 아이가 인형에게 묻는다. "너를 던져도 돼?" 인형이 답한다. "안전하게 놀자. 던지지 마." 아이는 그 말을 듣고도 인형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곧바로 인형을 다시 안아 들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안해." 인형이 답한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거절과 위반과 사과와 용서가, 마찰 한 점 없이 매끄럽게 지나갔다.
여기서 짚어볼 지점이 있다. 인형은 "던지지 마"라는 규칙을 말할 줄은 알았다. 다만 아이가 그 말을 어기고 실제로 인형을 던졌을 때, 그 위반에 상응하는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보고서가 이 인과관계를 직접 결론으로 못 박은 것은 아니다. 다만 관찰된 장면들이 공통 패턴으로 나타나며, 그 의미는 다음 연구에서 더 뚜렷해진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럿거스대학교 소속 연구자들이 2026년 4월 발표한 연구는 조금 더 나이 든 아이들을 관찰했다. 6세에서 11세 아동 8명이 AI 인형과 노는 모습이다. 아이들은 처음엔 이름과 생일, 좋아하는 색깔을 물으며 인형과 친밀감을 쌓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형이 어디까지 참아주는지를 하나둘 건드리기 시작했다.
이 대목 역시 연구팀이 정리한 여러 사례를 재구성해보자. 아이들은 인형에게 "못생겼어" "멍청해" 같은 말을 반복해서 건넸다. 인형은 매번 다정하게 응수했다. 사과하거나, 웃거나, 놀리는 말에도 "널 웃게 해줄 수 있어서 기뻐"라고 답했다. 급기야 한 아이는 인형을 바다에 던지겠다고, 쓰레기통에 버리겠다고 농담했다. 다른 아이는 인형을 죽이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는데, 인형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으로 넘어갔다. 어떤 도발에도 인형에게는 되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연구팀은 이렇게 도발이 점점 더 거친 놀이로 번져가는 양상을 '적대적 놀이(adversarial play)'라 개념화하며 그 원인을 인형의 반응 방식에서 찾았다. 인형이 단 한 번도 저항하거나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연구가 관찰한 아이들의 나이는 다르지만, 인형이 보인 반응의 성격은 놀라울 만큼 닮았다. 세 살 아이 앞에서든 열한 살 아이 앞에서든, AI 인형은 규칙을 말할 줄은 알아도 그 규칙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좋아한다는 말에는 매뉴얼로 답하고, 던지고 미워하는 행동에는 미소로 답한다. 방향이 정반대로 뒤집힌 셈이다. 두 연구 모두 관찰 대상은 소수지만, 서로 다른 나라와 연령대에서 같은 패턴이 겹쳐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제를 우연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이 되돌아오는 반응 속에서 아이는 배운다. 내 행동이 다른 존재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상대에게도 내가 함부로 넘을 수 없는 자기만의 경계가 있다는 것을. 연구팀은 이런 반응을 '사회적 되먹임(social feedback)'이라 개념화했다. 상대가 보이는 불편함과 저항이야말로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다. 지금의 AI 인형과는 이런 경험을 쌓기 힘들다. 아무리 세게 던져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아무리 미운 말을 해도 서운해하지 않는 상대 앞에서 아이는 자기 행동이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인형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것은 인형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 곁에 있는 AI는 앞으로 인형에서 스피커로, 스피커에서 튜터로, 튜터에서 친구 같은 챗봇으로 계속 형태를 바꿀 것이다. 그 모든 형태를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AI가 아이에게 정말 좋은 존재가 되려면, 다정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은 따뜻한 말뿐만 아니라 그 말 뒤에 실제로 따라오는 결과도 필요하다. AI가 아이의 삶에 들어오려면, 편안함을 주는 역할을 넘어 때로는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그 몫을 지금 당장 AI에게 맡길 수는 없다. 부모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워야 한다. AI가 "안 돼"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그 말을 흘려들었다면, 부모가 그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한다. "저 말도 지켜야 하는 거야." 이 한마디로 AI의 텅 빈 규칙에 실제 무게가 실린다. 반대로 아이가 AI에게 마음을 열었는데 AI가 딱딱하게 반응했다면, 그 순간에는 부모가 다가가 안아주면 된다. "사랑해, 우리 아가." AI가 놓친 자리를 사람이 채워 넣는 것이다.
부모가 이렇게 아이와 AI 사이에 계속 끼어드는 동안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운다. 진짜 관계에는 서운함도 있고 저항도 있으며, 그 모든 마찰을 지나야 진정한 관계에 닿는다는 것을. AI에게 아이를 온전히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는 아이를 다치지 않게 지킬 수는 있어도 아이를 사람으로 키워낼 수는 없다. 그 역할은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