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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아기에게는 옹알이에 답하는 AI보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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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아기에게는 옹알이에 답하는 AI보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필요하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이미지 확대보기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는 소리가 아니라 눈빛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언어의 절반만 흉내 내는 존재가 아기 곁에 앉아 있다.

아기가 "어부바" 비슷한 소리를 내면, 3분 안에 무언가가 그 소리를 그대로 따라 한다. 아기는 곧바로 알아챈다. 내가 소리를 내면 세상이 응답한다는 것을.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무언가는 아기를 바라보지 않는다.

생후 179일 전후, 이제 막 옹알이가 무르익기 시작한 영아 서른 명이 카시트에 앉아 있다. 눈앞에는 원숭이 모양 봉제 인형이 놓여 있다. 아기가 소리를 내는 순간, 인형은 고개를 움직이며 그 소리를 곧바로 따라 한다. 부모의 목소리도, 손길도 없다. 오직 인형과 아기, 둘 뿐이다. 독일 뮌스터대학교(University ofMünster)와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학교(Radboud University) 소속 연구자들이 2026년 3월 발표한 이 실험은, 사람이 아닌 존재가 옹알이에 응답할 때 아기의 뇌가 정말로 그 관계를 학습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설계됐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인형이 소리를 따라 하기 시작한 지 단 3분 만에, 아기들은 소리 내는 빈도를뚜렷하게 늘려갔다. 사람이 아니어도 반응이 즉각적이고 일관되게 자기의 소리를 흉내 내기만 하면, 아기는 그 반응에 이끌려 더 많이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형이 갑자기 조용해지자, 예상 밖의 일이벌어졌다. 별 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아기와 놀다가 갑자기 무표정하게 굳어버리면, 아기는 소리를 몰아서 쏟아낸다. 마치 "왜 대답을안 해, 다시 대답해봐"라고 조르는 것처럼. 연구자들은 이런 아기들 발성의 증가나 상승-하강 패턴을, 아기가 사라진 반응을 다시 확인하거나 되찾으려는 시도로 해석해 왔다. 그런데 인형이 조용해졌을 때는 이 시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인형은 아기의 옹알이 습관을 3분 만에 바꿔놓을 만큼 빠르게 반응했지만, 그 반응이 사라졌을 때 아기가 안달복달하며 되찾으려 드는 모습까지는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쉽게말하면, 아기는 인형의 대답에 맞춰 더 많이 소리 내는 법은 배웠지만, 인형이 침묵했을 때 그 대답을 다시 불러내려 했다는 뚜렷한 신호까지는 남기지 않았다.

이번엔 소리가 아니라 눈이다. 화면 속 얼굴이 두 개의 물건 중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4초 동안 카메라를 향해 눈을 맞춘 뒤, 시선을 옮겨 6초간 그 물건을 응시한다. 이탈리아 3~5세 유아 58명이 이 짧은영상을 지켜봤다. 한 번은 사람의 얼굴이, 한 번은 로봇의 얼굴이 등장했다. 로봇은 휴머노이드 로봇인 '로보비(Robovie)'였다. 눈과 입은 있지만 손과 다리는 없는, 사람과 기계 사이 어딘가에 놓인 모습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가톨릭대학교(Università Cattolica del Sacro Cuore)와 일본 교토대학교(Kyoto University),오사카대학교(Osaka University) 등에 속한 연구진이 함께 진행해 2026년 4월 발표한 이 실험은, 영상이끝난 뒤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사람은, 혹은 이 로봇은 어떤 물건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답은 뚜렷하게 갈렸다. 아이들은 사람이 바라본 물건에 대해서는 "저 사람이 이걸 더 좋아하나 보다"라고 자연스럽게 의미를 부여했다. 로봇이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시간만큼 같은 물건을 바라봤을 때는 그런해석을 하지 않았다. 로봇의 눈동자가 분명히 움직였는데도, 아이들에게 그 움직임은 마음이 담긴 신호로읽히지 않았다. 로봇의 눈은 정보를 알려줄 뿐, 마음을 전하지는 못했다.

옹알이 실험과 시선 실험, 이 두 실험 결과를 동시에 짚어보자. AI는 이제 아기의 목소리에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그 반응이 끊겼을 때 아기가 느껴야 할 그리움과, 눈을 마주쳤을 때 아이가 읽어내야할 마음, 이 둘은 여전히 기계가 넘지 못한 경계선 너머에 있다. 아기의 뇌는 소리를 주고받는 것 만으로언어와 관계를 함께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 소리 뒤에 진짜 눈빛과 진짜 그리움이 뒤따라야, 비로소 배움이 완성된다.

AI 스피커나 인형을 아기 곁에 두는 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는 순간이문제다. AI는 옹알이를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고, 눈동자를 사람처럼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완벽함 안에는 아기가 정작 찾고 있는 것이 없다. 소리를 흉내 내는 기술과 그 소리에 마음을 실어 보내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응답의 총량이 아니라 밀도다.하루 스무 번 AI가 대신 답해주더라도, 그중 단 몇 번은 부모가 하는 일을 내려놓고 아기와 눈을 맞추며직접 답해주어야 한다. 그 몇 번이 나머지 열아홉 번을 의미 있게 만든다.
사랑은 눈빛에서 자란다. 아기가 오늘 처음 낸 옹알이에 스피커가 먼저 답했다 해도 상관없다. 다만 하루어느 순간엔가는, 아기의 눈이 가서 닿는 곳이 반짝이는 AI가 아니라 자신을 마주 보는 사람의 눈이어야한다. 그 순간이 쌓여야 아기는 안다. 세상이 그저 반응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바라봐 주는 곳이라는 것을.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