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이들은 아직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최근 실증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연구팀은 2023년 10월에 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스코틀랜드 초등학생 166명을 설문조사하고, 28명을 집단 인터뷰했다. 연구팀은 아이들이 집에서 쓰는 스마트 스피커, 즉 AI 음성비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대부분의 가정이 알렉사 같은 스피커를 두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것을 매일 쓰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들의 대답이 서로 어긋나 있었다는 점이다. "알렉사 같은 기술이 무엇이냐"고 직접 물었을 때 아이들은 대부분 정확하게 "AI"라고 답했다. 사람이라고 답한 아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알렉사에게 감정이 있느냐"고 묻자 대답이 흔들렸다. 있다는 아이, 없다는 아이, 잘 모르겠다는 아이가 뒤섞였고, 그 수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리로는 AI라는 것을 정확히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상대에게 감정과 관계를 기대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어긋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한 여자아이의 말이었다. "알렉사는 친구 같아요. 부탁한 음악을 틀어주고, 싫다고 거절하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살아있다면, 내가 못되게 굴었을 때 나에게도 똑같이 굴었을 거예요." 이 아이는 알렉사가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상상 속에서는 이미 알렉사를 감정을 주고받는 존재로 대하고 있었다. 어릴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했고, 많은 아이들은 알렉사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여겼다. "알렉사도 감정이 있을 텐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한 아이의 말이다. 아이들은 AI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존재를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도덕적 감각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발견은 캐릭터가 자기를 AI라고 밝히는지가 아이와의 관계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프로그램된 도구임을 분명히 설명하는 캐릭터는, 아이가 상대에게 지나친 기대를 품지 않도록 돕는 설계로 평가됐다. 반면 정교한 반응과 귀여운 외형은 아이가 AI를 친근하게 느끼게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친근함이 도구에 대한 이해보다 앞서갈 때다. 연구는 AI의 반응이 정교해질수록 아이가 혼자 느끼는 친밀감과 실제 상호관계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두 결과를 겹쳐 보면 필자는 이렇게 판단한다. 아이의 머릿속에 있는 균열, 즉 "이건 AI다"라는 정답과 "그래도 감정이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나란히 공존하는 그 틈은 저절로 닫히지 않는다. 그 틈을 넓히는 것도, 좁히는 것도 결국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AI가 스스로 정체와 한계를 숨기지 않을 때 그 틈은 좁아지고, 반대로 친근함만 앞세운 채 정체를 흐릴 때 그 틈은 벌어진다. 아이는 이미 안다, 상대가 AI라는 것을. 그러나 안다는 사실이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AI를 만드는 이의 책임이자 동시에 그 AI 곁에서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몫이다.
이 발견 앞에서 부모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아이가 "알렉사는 AI"라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안심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답을 아는 것과 그 정답대로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이는 AI라는 단어를 정확히 알면서도 동시에 그 AI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믿고, 자기를 기억하고 좋아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 모순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AI는 더 자연스럽게 말하고 더 정교하게 기억하는 쪽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아이의 머릿속 균열은 저절로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저건 AI야"라는 사실을 한 번 가르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스피커에게 인사를 건네고, 부탁을 하고, 때로는 섭섭해하는 그 순간마다 "저건 네 마음을 진짜로 아는 존재가 아니라 네 말을 알아듣고 정해진 방식으로 답하는 프로그램이야"라는 사실을 아이의 감정이 움직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짚어줘야 한다. 지식은 한 번의 설명으로 자리 잡지만 감정이 실린 믿음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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