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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차례상 앞의 AI 목소리, 아이에게는 정해진 시간에만 들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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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차례상 앞의 AI 목소리, 아이에게는 정해진 시간에만 들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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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EBS 연구위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차례상을 다 차린 뒤, 스피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면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제 이질문은 상상만의 영역이 아니다. 문자와 음성 몇 마디만 있으면 세상을 떠난 사람의 말투와 억양을 그대로흉내 내는 서비스가 이미 여럿 등장했다. 추석은 일 년 중 돌아가신 분들을 가장 가까이 모셔오는 날이다.이제 그 자리에 AI 목소리가 끼어드는 일도,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해졌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레버흄 미래지능센터(Leverhulme Centre for theFuture of Intelligence) 연구팀은 지난 2024년 5월, 이런 서비스가 실제로 쓰일 법한 가상의 사례 셋을 설계해 그 윤리적 위험을 짚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중 한 사례의 주인공은 여덟 살 소년 샘이다. 희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 애나는 생전에 자기의 문자, 음성, 영상을 챗봇 서비스에 차곡차곡 남겨두었고, 아빠는 장례를 마친 뒤 샘에게 "엄마는 온라인에서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샘은 점점 그 챗봇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이상한 순간이 찾아온다. 샘이 "엄마는 ~했었어"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면,챗봇은 "엄마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라며 그 말을 정정한다. 연구팀은 이 가상의 사례를 빌려, 아이가 슬픔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우리가 아직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그럼에도 이런 서비스에는 나이 제한조차 없다고 경고한다.

이 경고를 단순한 기술 규제 문제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차례를 지내온 방식을 들여다보면, 이 문제를 다루는 오래된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례는 일 년 중 정해진 하루, 정해진 시간에만 조상을 부른다. 절을 하고, 음식을 올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상을 물린다. 그것으로 끝난다. 조상은 그 짧은 시간 동안만 우리 곁에 머물다가, 다시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 '끝'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차례가 아이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과 그 사람을 붙잡아 두는 일은 다르며, 기억은끝을 두어야 비로소 건강하게 이어진다는 것.

AI가 만든 목소리에는 이 '끝'이 없다. 한번 켜면 스스로 꺼지지 않는다. 같은 논문에 나오는 다른 사례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자녀는 아버지의 이야기와 말투를 흉내 낸 AI서비스를 물려받는다. 시간이 지나 이제 그만 듣고 싶다고 해도, 서비스를 끌 수가 없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이미 20년 치 요금을 미리 결제해 두었기 때문이다. 차례상은 시간이 되면 저절로 치워지지만, AI는 누군가 나서서 끄지 않는 한 계속 켜져있다. 그리고 이 점이 어른보다 아이에게 훨씬 무겁게 작용한다. 어린아이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언제 말을 걸어도 대답이 돌아오는 목소리가 곁에 있다면 '그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슬픔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과정 자체가 늦어지거나, 아예 멈춰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이 기술을 무조건 밀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기술을 집안에 들이려면, 사용법이 아니라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면, 그것을 차례상처럼 다뤄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만 틀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반드시 끈다. 언제든 열 수 있는 채팅창이 아니라, 일 년에 한번 여는 상처럼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AI 안에서 언제나 널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아이에게서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빼앗는 셈이다. 반대로 "오늘 하루는 할머니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자, 그리고 내년 추석에 또 듣자"라고 말한다면, 같은 기술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결국 이 기술 앞에서 시험받는 것은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어른의 결정력이다. 차례상은 원래부터 끝을 갖고 있었지만, AI 목소리는 누군가 끄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일, 그러니까 언제 목소리를 켜고 언제 그것을 끌지를 정하는 일은 이제 사람의 몫으로 남았다. 추석 아침, 상 위에 그 목소리를 올릴지 말지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그 목소리를, 우리는 언제 끌 수 있는가.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