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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AI 시대, 아이를 오히려 막히고 틀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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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AI 시대, 아이를 오히려 막히고 틀리게 하라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이미지 확대보기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아이가 틀렸다. 부모가 재빨리 고쳐준다. 다시 틀렸다. AI가 깔끔하게 해결해준다. 이제 아이는 더 이상 틀리지 않는다. 이 장면을 교육의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틀림을 없애는 것이 가르침이라는 착각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매끄럽게 통과한 경험을 기억하지 않는다. 걸리고, 막히고, 되돌아가는 마찰의 순간에 뇌는 비로소 깊은 각인을 새긴다. AI는 바로 그 마찰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아이에게 편안한 그 도구가, 배움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조용히 지워가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부설 국립교육연구원(National Institute of Education)의 마누 카푸르(Manu Kapur)는 2015년 논문 〈생산적 실패로부터 배우기(Learning from Productive Failure)〉에서 이 역설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먼저 문제 해결에 부딪혀 본 학생들이 직접 설명식 수업을 먼저 받은 학생들보다 개념 이해와 전이에서 더 높은 성취를 보였다. 카푸르는 이를 '생산적 실패(Productive Failure)'라는 학습 설계로 설명했다. 실패가 학습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야말로 학습이 시작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문제는 AI가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클로드(Claude)를 만든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의 연구원 알렉스 탐킨(Alex Tamkin)과 이 회사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디 한원 션(Judy Hanwen Shen)이 그 답을 실험으로 보여줬다. 2026년 1월 발표한 논문〈AI가 기술 형성에 미치는 영향(How AI Impacts Skill Formation)〉이다. 연구팀은 파이썬은 이미 다룰 줄 알지만 특정 라이브러리는 써 본 적 없는 프로그래머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에만 AI 어시스턴트를 제공했다. AI를 사용한 집단은 사용하지 않은 집단보다 이후 평가 점수가 약 17%, 2등급 차이로 낮았다. 반면 과제 수행 시간에는 차이가 없었다. AI를 썼다고 더 빠르지도 않았고, 오직 이해의 깊이만 달랐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연구진은 이렇게 해석한다. AI를 사용한 집단은 오류를 덜 겪었고, AI 없이 혼자 씨름 한 집단은 오류를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이해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진은 특히 초보 개발자·신입 인력의 기술 형성에 미칠 영향을 중요한 후속 연구과제로 제시한다.

두 연구의 결론은 하나로 모인다. AI가 막힘을 대신 처리할수록, 아이는 막힘을 버텨내는 경험을 잃는다. 그 경험이 쌓였어야 할 자리에서, 실패 내성은 끝내 자라지 못한다.

실패 내성이란 거창한 능력이 아니다. 막막함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힘,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방향을 잡는 힘, 정답이 보이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힘. 이것들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기위한 기초 체력이다. 그리고 이 체력은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길러진다. 실패를 직접, 반복해서 통과하는 것.
더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막힘을 견딜 수 있는가.

아이가 문제 앞에서 멈춰 있는 시간은 부모에게도 불편하다. 도와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고, 빨리 해결해주고 싶다. 그 충동이 AI와 닮았다. AI가 마찰을 제거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부모도 본능으로 아이의 마찰을 없애려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마찰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의 뇌가 개념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리고 AI가 그 시간을 끊어버리는 순간, 아이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길을 익히지 못한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막히는 시간 곁에 있는 것이다. "왜 막혔어?"가 아니라 "뭘 시도해봤어?"라고 묻는 것. 틀린 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어떻게 생각했어?"라고 그 사고의 경로를 들여다보는 것. 이 작은 차이가 아이가 실패를 두려움으로 기억하는 지, 디딤돌로 기억하는 지를 가른다.

AI를 쓰더라도 순서가 있다. 충분히 막혀본 뒤 AI에게 묻는 것과, 막히자마자 AI에게 묻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AI에게 자기의 틀린 풀이를 먼저 보여주고 "내 논리에서 어디가 잘못됐어?"라고 묻는 것과 "이거 어떻게 풀어?"라고 묻는 것도 다르다. 전자는 실패를 디딤돌로 삼는 방식이고, 후자는 실패 자체를 없애는 방식이다. AI 시대에 부모가 가르쳐야 할 것은 AI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막혀본 다음에 AI를 쓰는 것이다.

막힘 없이 자란 아이가 막히는 세상을 만나는 순간, 그때의 무너짐은 되돌리기 어렵다. 실패 내성은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오늘 아이가 문제 앞에서 혼자 씨름하는 그 10분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틀리게 두어라.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가 틀리고, 막히고,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는 힘이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