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우리는 오랫동안 ‘부족함’과 싸워왔다. 먹을 것이 부족했고, 에너지가 부족했고, 물자가 부족했다. 자원은 유한한 반면,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경제학의 역사는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지 고민한 시간이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부족함과 유한함의 이중나선 속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빠르게 만들고, 더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경제의 중요한 목표이며, 그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 ‘희소성’이다.
그런데 기술이 이 오래된 전제를 흔들고 있다. 알루미늄의 추출과 정제 기술의 발달은, 국빈을 대접하는 최고급 식기에만 쓰던 알루미늄을 우리 일상 속 친숙한 소재로 그 지위를 끌어내렸다. 산업혁명 이후 계속된 기계화와 자동화는 노동의 생산성을 끌어올렸고, 태양광과 배터리 기술은 에너지의 생산과 저장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3D 프린팅은 제조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훨씬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미래학자 피터 디아만디스는 작금의 시대를 ‘초풍요의 시대’라 명명한다.
최근 펴낸 동명의 저서에서 그는 초풍요의 주요 현상을 산업, 의료, 교육, 교통, 통신, 콘텐츠, 뇌과학 등 각 분야별로 들여다보고, 그에 따른 이슈와 대응과제를 짚는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이 결핍을 덮어버린다. 결핍이 사라지면 과연 인간은 행복해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먹을 것이 많아지고, 에너지가 풍부해지고, 필요한 물건을 적은 비용을 치르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 나아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희소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기업들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왜 당신의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상품이 풍부해질수록 브랜드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콘텐츠가 풍부해질수록 큐레이션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정보가 넘칠수록 신뢰가 중요해진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복제될수록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경험과 관계의 가치가 커진다.
수많은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 수많은 정보 중 하나를 믿게 만드는 것. 수많은 콘텐츠 중 하나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것. 수많은 기업 중 하나와 거래하게 만드는 것. 더 이상 공급의 확대가 경쟁력이 아닌 지금, 진정한 경쟁력은 선택받을 이유를 갈고 닦는 것이다.
‘초풍요의 시대’는 단순히 “기술이 발전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모델을 개발했다, 더 값싸고 편리한 대고객 서비스로 개선했다는 테크 리더들에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누구에게나 알루미늄 식기가 제공되는 지금 시대에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식기 자체보다, 식사 자리에서 사람들 간의 대화, 감정의 교류, 이 모든 것을 합한 경험이 아닐까? 기술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능한 바로 그것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