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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혁신으로 포장된 원가절감...스크린에 갇힌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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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혁신으로 포장된 원가절감...스크린에 갇힌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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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인 기자
최근 출시되는 신차 운전석에 앉으면 마치 거대한 태블릿 PC 앞에 앉은 듯한 착각이 든다. 센터페시아를 빼곡히 채우던 다이얼과 스위치들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매끈하고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차지했다. 공조기 조절부터 사이드미러 각도 변경, 주행 모드 설정, 심지어 글러브박스를 여는 것까지 화면 속 메뉴를 이리저리 터치해야 한다. 이른바 '터치스크린 만능주의'다.

제조사들은 이를 두고 "미래지향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UX)"이라고 치켜세운다. 물리적인 부품을 줄여 실내 공간을 넓게 뽑아낼 수 있다는 장점도 내세운다. 하지만 화려한 브로슈어의 문구와 달리, 실제 도로 위에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혁신보다 공포에 가깝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고속도로를 상상해 보자.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와이퍼 속도를 높이거나, 성에가 낀 유리를 닦기 위해 에어컨을 켜야 할 때가 있다. 과거엔 시선은 전방에 둔 채 손의 감각만으로 버튼을 누르거나 다이얼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디스플레이를 쳐다보고, 하위 메뉴로 들어가 정확한 아이콘을 찾아 탭해야 한다. 단 2~3초만 화면으로 시선을 돌려도 차는 수십 미터를 눈 감고 질주하게 되는 셈이다. 직관성의 상실이 곧장 대형 사고의 위험으로 직결되는 순간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제조사들이 터치스크린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를 '원가 절감'에서 찾는다. 수십 개의 아날로그 스위치와 배선을 일일이 설계하고 조립하는 것보다, 커다란 패널 하나를 박아 넣고 소프트웨어로 통제하는 것이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지향적 디자인이라는 매력적인 포장지 속에는 기업의 수익 극대화라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맹목적인 터치스크린 도입에 제동을 거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 신차 안전도 평가 기관(Euro NCAP)은 2026년부터 방향지시등, 비상등, 와이퍼, 경적 등 핵심 안전 기능에 반드시 독립적인 물리 버튼을 적용해야만 최고 안전 등급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기능성과 안전을 도외시한 무분별한 스크린화는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분명한 경고다.

자동차는 거실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고를 때 쓰는 스마트 디바이스가 아니다. 찰나의 조작 실수가 탑승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2톤짜리 육중한 기계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원가 절감의 유혹도 좋지만, 운전자가 도로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기계를 통제할 수 있는 직관적인 '아날로그의 안전함'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다.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디자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최태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choiti1991@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