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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21)] 노르웨이 여인숙 '멀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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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21)] 노르웨이 여인숙 '멀대' 아들

6월25일, 함메르페스트에서 알타로


주말 이틀동안 화창했던 날씨는 6월25일 월요일을 맞아 춥고 어두워졌다.

날씨 때문이기도 하고 함메르페스트를 떠나기 싫은 마음에 기분이 별로다. 아침 8시10분 알타로 떠나는 버스를 타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서둘렀기 때문인지 졸립고 짜증이 난다.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버스시간표를 보니 역시 지난해 것과는 달리 변경돼있었는데, 평일에는 하루 2차례 있다.

오후 4시15분 출발하는 차를 탈까, 잠시 망설였으나 함메르페스트에서의 찬란했던 한때를 그대로 간직한 채로 떠나기로 했다. 어제와 달리 한참 떨어진 기온에 다들 옷을 껴입고, 이쪽에서는 ‘소위’ 여름인데도 노르웨이식 털모자를 그대로 쓰고 다니는 현지인들이 아주 많다. 추위속에 살아도 추위에 강한 건 아닌가보다.

가슴 한가득 채워져왔던 청색의 향연에 한껏 취했던 때문인지 흐린 날씨에 보이는 버스 창밖 풍경은 그저 그랬다. 칙칙해보이기 시작하는 함메르페스트를 빨리 떠난 건 다행일거야, 심심해보이고 황량해보이는 산과 들판만 주로 드러났다. 함메르페스트가 있는 섬 지역을 벗어나는 터널과 다리를 지나, 왔던 길을 되돌아 스카이디에서 알타 행 버스를 갈아타야한다.

할아버지 버스기사만이 세심한 배려를 베풀었다. 내가 간간히 창밖 풍경에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걸 알고는 버스앞창을 가린 햇빛가리개를 올려준다. 가는 길에는 순록들이 철없이 뛰어 들곤 한다. 버스가 급정거하면 버스 안쪽으로 무구한 눈망울을 한번 향하고는 지나가버린다. 놀라기도 했지만, 귀엽기도 해서 내가 “어머나”하고 감탄사를 지를 때마다 기사 양반은 즐거워한다. 정말 반사신경이 좋아 버스를 순간순간 멈추기에 다행이지 안 그러면 순록 로드킬을 구경하게 생겼다. 길 막힐 일 없는 곳에서 버스가 급정거하는건 어디까지나 이놈의 천방지축 순록 녀석들 때문이다.

여행 시작 전 한국에서 노르웨이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을 봤는데, 열차기관사가 지난 겨울 뛰어든 순록 사체를 치우느라 제복에 묻은 피가 아직도 안 빠진다며 다음 겨울에는 꼭 태국에 가겠다고 춥고 긴 겨울을 불평하던 것이 생각난다. 순록들은 내가 놀란 사이 초식동물다운 가벼운 몸짓으로 순식간에 뛰어 사라져 버리곤 해서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노르웨이 버스기사들은 하나같이 친절해서 여행이 한결 즐겁다. “당신 덕분에 버스여행이 정말 즐거웠다”고 인사하니 노기사는 반색하며 ”캐리어, 버스에 기대놓고 기다리라”고 호응한다. 알타행 버스로 갈아탔는데, 젊은 버스기사는 내가 ‘보르스투아(Bårstua Gjestehus)’라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른다고 하니 버스정류소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길가에 있는 이 숙소 바로 옆에 버스를 세워준다.

작은 해프닝은 있었다. 기사가 “인사이드에 짐이 어쩌고, 내리기 힘드니까 정류장 지나서 내려줄게” 하길래 나는 버스 아래칸 안에 짐이 있느냐는 뜻으로 알고 그렇다고 했는데, 승객석 안에만 짐이 있느냐는 뜻이었나 보다. 그냥 출발하는 버스를 손을 흔들고 난리를 쳐서 세워 내 캐리어를 끄집어냈다.

▲ 알타의 암석화.

◇암석화 제외, 별다른 볼거리 없는 알타

그러고보니 오전 11시도 안 돼 숙소에 온 것이다. 친절이 몸에 밴 여주인은 지금은 청소 중이라며 오후 3시 이후에나 방을 쓸 수 있다고, 짐을 놓고 가면 2층에 있는 방으로 자기 아들이 옮겨놓을 거라고 장담했다. 아들 얘기를 할 때 상당히 흐뭇해하며 강조를 해 엄청 건실한 청년을 떠올리게 했다.

알타에서 그나마 싸게 묵을 수 있는 숙소인데다가 방 안에 작은 싱크대가 있을 정도로 널직한 방 8개가 있다. 한가로워 좋긴하다. 홈페이지에 있는 광고글들이 그럴 듯하다. 보르스투아는 2차대전 때 핀마르크주가 다 불탔을 때 이를 재건하러 온 일꾼들이 머무르던 집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서 뭔가 좀 역사적인 흔적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저 이름만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그저 큰 대로 곁, 별 멋대가리 없는 붉은색 2층 목조가옥이다. 바로 옆이 리셉션이 있는 주인집인데 뒷마당에는 바비큐를 해먹을 수 있는 사미식 작은 오두막을 지어놓아 가족단위로 즐기기엔 좋을 것 같다.

주인여자에게 받은 지도와 안내책을 보니, 이쪽 지대에서는 등산이나 낚시를 하지 않으면 석기시대 암석화가 있는 알타 박물관밖에 가볼 곳이 없다. 바닷가를 쭉 따라 북쪽으로부터 내려왔으니 보트타고 나가 바다낚시를 하는 레포츠가 가장 성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노르웨이 바다에서의 안전과 지켜야할 낚시 규칙에 대한 안내서도 따로 있다.

버스 한번 타는데 35 크로네(약 7000원 정도). 단자릿수라 감이 잘 안 왔는데, 계산해보면 잠깐 타기에는 ‘억수’ 비싼 가격이다. 노르웨이 북쪽을 잇는 주요 도로인 E6를 따라 알타 동쪽 끝에서 박물관이 있는 서쪽 끝까지 왕복하는 버스다. 숙소에서 시내까지는 차로 5분정도나 될까, 하지만 차가 막힐 일이 없으므로 걸어가기에는 꽤 되는 거리다. 이젠 걸어다니기에도 좀 힘들다.

중심가라고 할 것도 없는 곳은 레마1000, 키위 미니프리스 등 대형 슈퍼마켓과 쇼핑센터만 그득 찬 멋대가리가 하나 없는 장소다. 채석장에서 일하는 남자를 표현한 듯한 작은 동상 하나 서있는 곳 가까운데 이 동네 대표 음식점이라는 알파-오메가가 있는데 온 동네 아저씨들이 다 나와앉아있는 듯하다.

인근 단과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스튜던트후세트시티(Studenthuset city)에서 다 태운 빵으로 만든 클럽샌드위치를 비싼 가격에 먹고 암석화를 보러 알타박물관으로 향했다. 보통 동절기에는 오전 8시~오후 3시 여는데, 6월12일~8월12일만 오후 8시까지 연다고 해서 넉넉히 시간 잡고 둘러볼 참이었다. 근데 지역버스 시간이 문제였다. 주인여자에게 받은 버스스케줄표에는 오전 6시부터 저녁 8, 9시까지 버스가 다니는 걸로 돼있는데, 지금은 바뀌었다며 대충 형광펜마크를 해주는 걸 간과했던 것이다.

돌아가는 버스시간표를 확인해보니 ‘오마이갓’, 딱 오늘부터 막차가 오후 5시로 바뀌었다. 버스기사에게 확인차 다시 물어보니 “너 그거 못타면 택시 불러야하는데 그럼 수백 크로네 내야해”하고 안 해줘도 될 걱정까지 해준다. 노르웨이 관광청 사이트로 들어가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코너가 ‘값싸게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법’이다. 스웨덴에서만 와도 노르웨이 물가 비싸다고 혀를 내두르는데, 자기네들도 관광객들에게 여기 물가가 엄청 비싼 건 아나 보다.

할 수 없이 내일 한 번 더 오기로 하고 외부에 있는 암석화를 보기 전 내부 박물관부터 훑어보기로 했다. 티케팅을 하는,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오른 아주머니는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우울증이라도 왔는지 무척 불쾌해 보인다. 가이드북 좀 달랬더니 “중국어 줘? 일본어 줘?” 하면서 신경질적이다. 뭐 기대도 안 했지만 한국어는 당연히 없을거고. 영어로 된 안내서를 해석하는데 머리가 좀 아프다. 내용만은 무척 흥미롭다.

일단 박물관 한쪽은 확장공사 중이라는데, 왼쪽 전시관에서는 대형 엘크 박제 전시가 한창이다. 이곳에서는 박제를 만들어도 일부러 죽이지 않고 이미 사망한 것으로만 만든다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박제마다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주다. 1년생부터 10년까지 엘크 뿔이 자라는 순서대로 쭉 나열해놓은 것도 흥미로웠다.

여긴 야외에서 발굴된 암석화가 주이기 때문에 박물관 전시는 한가하다. 이쪽 말고도 카피요르드 쪽에서 발견된 암석화, 사미족의 생활상, 알타의 기독교가 전파된 후 흔적, 낚시, 스키, 오래된 오로라 촬영의 기록들 정도가 다다. 그래도 영어를 일일이 해석해 이해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잠깐 석기기대 흔적들을 보러 야외로 나갔다가 헤매기만 하다가 버스시간에 맞춰 다시 박물관 건물로 왔다. 협곡 일대에 모두 14개의 지점이 있는데 2.9㎞ 정도 걸어다니면서 봐야한다. 최소 1시간 30분은 돌아봐야한다고. 상냥하고 따뜻한 눈빛을 한 여직원에게 가이드투어에 대해 물어보니 예약을 해야하고 550 크로네(약 10만원 정도)나 한단다. 영어를 비롯 (북유럽에서들 영어를 잘하는 이유를 보니, 라틴어원을 근거로 엇비슷한 단어들이 대다수고 어순도 같은데다가, TV에서 주로 미국과 영국에서 제작된 프로그램들을 틀어주니 별달리 공부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영어들을 한다) 당연히 유럽언어로만 진행된다. 박물관 직원들은 다들 외국어 몇 개씩은 하는 인재들인거다.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가이드북을 보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준다. (다음날 다시 가니 그녀는 불어로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그 다음날 알타를 떠나는 버스정류소에서 만났는데 얼마나 반갑게 아는 척을 하던지, 그녀의 미소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섯시 막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여기서 나의 ‘건망증’의 강한 조짐이 시작됐다. 여행짐이 한 짐이다 보니 지금까지 방수재킷을 넣는 주머니 같은 그래도 사소한 것들은 하나씩 흘린 거 같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이동하고 있었는데 버스기사에게 숙소 이름이 적혀있는 여행안내서 페이지를 보여주고는 떨어뜨리고 그냥 내린 것이다. 마침 숙소에 묵는다는 무척 친절한 네덜란드인 노부부가 같은 버스에서 내리다가 주워서 나를 불러서 이를 건네줬다.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다니는 유럽인 노부부들이 많은데 하나같이 교양미가 넘치고 친절한 인품을 가진 이들이다) 때마침 비가 후둑후둑 내리기 시작한다. 일찍 들어오길 잘했다 싶어 숙소 문을 여니 내 짐더미는 여전히 계단 앞에 내팽겨쳐져 있다. 이집 아들 녀석은 어딜 간거야?

◇껄렁한 10대, 여인숙 주인 아들

아침에 여주인이 세탁기를 써도 된다고 해서 그동안 못했던 밀린 빨래나 하려고 보니 세탁실 문이 잠겨있다. 주인집으로 울리게 돼있는 벨을 누르니 한참 뒤에나 내리는 비에 후드재킷을 머리에 뒤집어쓴 이집 아들놈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난다. 눈에 장난기가 드글드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소년이다. 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 노르웨이인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 어찌나 키가 큰지 한참을 올려다보고 얘기하려니 목 꺾이겠다. 이 놈이 짐 올려다놓으라고 지네 엄마가 시켰을 텐데도 ‘쌩깐’ 그 놈이 분명하다.

“야, 나 세탁기 좀 쓸게”하고 문밖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니 못알아듣겠다는 시늉을 하며 귀에다 손을 대고 설렁설렁 걸어온다. “니네 엄마 어디갔냐? 세탁실 문 좀 열어봐” 했더니 “벤테(Bente)한테 물어봐야해” 한다. 목소리가 변성기 지난지 얼마 안 됐을 거 같은데, 그 짧은 세월동안 키가 참 무럭무럭 자랐다.
벤테가 누구냐 했더니 자기 엄마 이름이라면서 한참 뒤에나 온다고 한다. “너 세탁실 열쇠 없어? 니네 엄마가 아침에 써도 된다고 했단 말야” 했더니 미적미적 하며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어준다. 아침에 만났던 청소하는 흑인여인(나중에 대화를 나눠보니 르완다에서 온 난민이라고 한다)도 무조건 여주인한테 물어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게, 무척 ‘쎈’ 여인인듯 하다. 하긴 여인이 ‘여인숙’을 꾸려간다는게 보통 억척스럽지 않으면 안될듯. 뺀질거리는 듯해도 이 10대 아들녀석이 꼬박 자리를 지키는 것이 대견하다.

체크아웃할 때까지 여주인 얼굴은 한번도 못봤다. 카드기계가 안된다고 해 숙박비를 현금 선불로 지불 딱 하고 나니 볼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주인집을 향한 벨을 누를때 마다 좀 지연되기는 해도 이 녀석이 꼬박꼬박 나타나 세탁기, 건조기 작동법도 알려주고 다시 잠긴 세탁실 문도 열어주고 한다. 아마 이런 일까지 해보지 않은 듯 저도 헤매면서. “야, 니네 세탁기인데 왜 작동법도 몰라?” 하면 “난 그냥 리셉션에 앉아있기만 하는거야”하며 머리를 긁적이면서.

여기를 떠나면서 마지막날 방키를 주러 주인집에 갔더니 아침부터 주인여자는 또 어딜 가고, 이 녀석이 문을 열어준다. 혹시나 짐이라도 들어달라고 할까봐 그래서인지 키만 받고 냉큼 문을 닫는다. 그래도 한창 놀러 나가고 싶을 나이인데 꼬박 집을 지키며 엄마 일을 도와준다는게 기특하다. 사람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다 비슷한게 웃음이 난다.

별 일이 없는 한 이 게스트하우스는 저 아들 녀석이 이어가겠지. 오래 뒤 다시 와서 저 녀석이 여기 주인장 노릇을 하고 있는 ‘꼴’을 볼 수 있을까. ㅋㅋ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