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섞인 황토 위에 형태를 먼저 그리고 흙을 파낸다. 시간이 담긴 퇴적암이나 칠보석 등의 파편들을 깔고 시멘트를 채운다. 흙을 덮고 며칠을 기다렸다가 다시 파내는 방식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18세기의 금사리 가마터에서 가져온 조선시대 대표가마인 백자파편과 번치리 등지의 가마터에서 가져온 15~16세기 분청자 파편을 접목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과거와 현대의 소통이 느껴지는 동시에 투박한 듯하면서도 세련된 한국적인 미가 돋보인다.
이영섭 작가는 "계속 이어지는 전시회로 작품이 모자라 눈만 뜨면 작업을 했다"면서 "전국을 떠돌며 몸으로 체험했던 한국의 미가 이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조각의 정수는 여백에 있다. 서양의 형상은 명암대비가 강렬하지만 한국 조각은 형상이 어렴풋하다. 대표적인 예가 마애불이다. 상체는 입체지만 하체는 암각화 같은 평면그림처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가 그토록 탐구해왔던 한국 조각의 특징이 그대로 녹아 있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멀리하고 오로지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 파묻혀 작업에만 몰두해왔던 이영섭 작가의 장인정신이 기대된다.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