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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신라와의 결혼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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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신라와의 결혼동맹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62)]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가야 당산유적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4세기 새모양토기, 함안박물관
가야 당산유적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4세기 새모양토기, 함안박물관


아라가야는 5~6세기에도 이전 시기처럼 여타 가야 소국들보다 우월한 지위로 인정을 받았는데, 이는 이전 시기부터 내려오던 변한의 우대국의 지위와 함께 국가적으로도 대가야 다음가는 국가체계를 정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리더십은 대가야가 백제에 의해 섬진강 유역을 상실하고, 이에 대응하여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었지만 모종의 사태로 동맹이 파탄나는 혼란이 가중되는 520년대, 530년대에 본격화 된다.


대가야는 섬진강 유역을 상실한 데 이어 중요 교역항인 다사진(지금의 경남 하동)을 백제에게 빼앗긴 후 이에 대응한 것이 신라와의 결혼동맹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야소국들이 불만을 품었고 종국적으로 신라와의 결혼동맹마저 파기되었다. 신라가 금관가야를 멸망시키고 낙동강 서안 지역으로의 침략을 노골화하면서 여타 가야소국들은 대가야보다는 아라가야를 중심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것이 고당회의와 웅진회의, 제1차, 제2차 사비회의로 묘사되는데 여타 가야소국들은 안라국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에 대해서 일본서기에서는 가야 소국들이 안라국을 형님처럼 모신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가야 말기에 안라국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안라국도 백제에 의해 반속국화 되며, 안라국을 중심으로 이뤄진 외교적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 탁순국이 신라에 멸망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대가야와 달리 안라국의 멸망은 사서에 나오지 않는데, 성산산성 출토 목간으로 보아 대가야 멸망 이전에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보인다.